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2 세계문학의 숲 18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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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의 '제르베르즈', 「테레즈 라캥」의 '테레즈'.. 이 숙명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는 여인들을 읽으면서, '에밀 졸라'의 캐릭터들에 대해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특히나 세탁부 '제르베르즈'의 삶은 너무도 비참했기에 엄청난 관심에도 불구하고 「나나」 읽기를 미루고 미룰 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밀 졸라'의 묘사나, 스토리의 힘은 위대함을 넘어 거룩하기까지 했고, 인간의 본질과 본성을 이야기하는 고전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존재이다.

이 책,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목로주점」의 성공에 힘입어 발표한 작품으로, 그의 소설들 중 유일하게 해피엔딩이라 한다. 「목로주점」을 읽으면서, '졸라'는 결혼과 여성의 혐오자이던가 했던 적도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자유로운 독신주의 주인공이 결국 소중한 여인과 결혼이라는 결말을 암시하면서 맺는다.

화 같은 이야기라고도 하는데

책은 진짜 재미있고, 경이롭고, 가독성도 좋다.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면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좋을 듯

1860년대의 프랑스 파리, 백화점을 둘러싼 여인들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주인공 '드니즈'는 '키이라 나이틀리'를 떠올렸는데..

암튼 '졸라'도 불행한 자신의 캐릭터들을 제치고 '드니즈'를 자신의 딸이름으로 지었다한다.

발로뉴 지방에서 살다가 부모를 잃고, 큰아버지를 찾아 검은 상복을 입고 무작정 파리로 상경한 삼 남매. 20세의 순박한 시골처녀 '드니즈'는 고향에서 알아주는 신상품점에서 2년간 일한 경력이 있다. 그녀의 남동생 16세의 '장'은 잘생겼지만 애정행각으로 인해 더 이상 고향에 살 수 없는 원인 제공자이다. 그리고 막내 남동생 '페퍼'는 귀여운 다섯 살이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란, 건물과 쇼윈도, 진열된 상품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거대함과 화려함..

건물의 바로 앞에서, 옹색한 나사 상점을 운영하는 큰아버지는 그들의 방문을 반기지 않는다.

큰아버지를 비롯한 백화점 주변의 상인들은 이어져 내려온 정직하고 순박한 방식으로 전통적인 상업 방식으로 장사했던 사람들로, 백화점의 등장으로 파산 위험에 처해있었다.

그들은 백화점을 괴물로 보고 있고, 혐오하고 있었다.

주변의 건물들을 사들여서 백화점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백화점의 사장, '무레'

'무레'는 매력적인 대담함을 지닌 모험가의 기질로 온갖 여자들의 문제에 쌓여있다. 자신의 부인이었던 '에두엥'의 죽음으로 백화점을 물려받고는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자신의 사무실에 아내의 초상화를 걸어놓고는 귀족 부인들과 백화점 판매원들과 연애를 즐긴다.

그런 그의 눈에

기성복 매장 판매원이 된 깡마르고 촌스러운 '드니즈'가 들어온다.

'드니즈'는 백화점의 기숙사에서 살면서, 수습으로 일하게 되었지만, 다른 판매원들의 왕따와 무시를 견뎌야 했다. 그러나 판매 실적이 없어서, 돈을 벌지 못하는데 동생 '장'은 여전히 여자들 문제로, 때로는 애원과 협박과 강요로 그녀의 얼마 안 되는 돈들을 가져가고 막냇동생을 맡겨 놓은 집에 보낼 돈도 없어서 자신의 망가진 신발 하나 바꿔 신지 못한다.

허약해 보이고 우울한 낯빛을 가진 '드니즈'는 따돌림과 모함에도 올곧고 건전한 심성을 간직했다. 두 동생을 향한 모성적인 헌신으로 자신을 꾸미지도 못하고 살지만, 그런 그녀를 선머슴 대하듯 보던 '무레'는 한 번씩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지배당한다.

'무레'는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백화점 영업 확장에 정열을 쏟는다. 그의 새로운 상업은 끊임없이 자본을 굴려 거대하고 화려한 백화점 왕국에서 여성이 여왕으로 군림할 수 있도록 그녀들의 욕망 충족을 설계해나간다. 그리고 그런 욕망의 여성을 정복하고 싶어 한다.

화점의 매출은 점점 높아지고 몸집은 점점 커져 가는데 거리의 소상인들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파산해간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는, 중독된 여인들의 소비행태는 참으로 각양각색이다.

유혹에 사로잡혀 충동구매를 하는 여인, 사 갔다가 매일 반품하러 오는 여인, 자신을 위해서는 차마 못 사고 아이들을 데려와 그들의 용품만 사는 여인, 품위로 무장되었지만, 슬쩍 물건을 훔쳐대는 여인들..

- 중간생략-

 

1860년대에 이런 백화점이 있었다니, 1800년대에 이런 소설을 썼다니..

사시사철 바겐세일의 덫으로 여성을 유혹하고, 그 유혹을 여성의 육체 속에 새로운 욕망으로 주입하려던 상업의 기술.

백화점의 메커니즘, 소비의 메커니즘, 그리고 욕망의 덫..

오늘날 백화점을 드나드는 여인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한 '졸라'의 위대함에 다시 한번 놀란다.

싼 가격으로 고객을 유혹하고 상품에 정가 표시로 믿음을 주고 그 모든 것이 여성이 필연적으로 굴복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유혹이 된다.

처음엔 알뜰한 주부로서 구매를 시작하지만 점차 허영심이 발동하고 유혹에 홀딱 넘어가게 되는..

백화점의 엄청난 물량 판매를 통해 호화스러움을 대중화시키고 무시무시한 세력으로 인한 소비의 촉진은 결국 가정을 황폐화 시키지만

날로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하는 유행의 광기에 여성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게끔 부추길 줄 아는 남자 '무레'. 그는 여자의 마음을 얻을 줄 알고,

그의 백화점은 여성을 소진시키는 시스템을 충분히 갖춘다.

1860년대 귀족이 아닌 여성들은 백화점의 판매원이 되어

부유한 고객을 상대하면서 우아한 몸짓이 몸에 배고, 노동자와 부르주아 계층 사이를 오가는 모호한 부류에 속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시대에 이 책의 내용처럼 백화점 경영자가 일개 판매원과 결혼한 경우도 실제로 종종 있었다고 한다.

백화점 상품들 중 일본 매장도 나오는데, 1860년대 도자기, 부채 등이 '런던 만국 박람회'와 '파리 만국 박람회'를 통해 유럽에 진출하여, 자포니즘, 즉 일본 스타일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고전소설속 평면적인 인물 묘사는 때론 관념적이고 또 입체적인 현대 소설 속 캐릭터보다 진솔하고 적나라한 매력이 있다.

그 시대 바겐세일과, 충동구매를 부추기는 물건 진열방법, 그리고 이벤트 중 백색 전시회는 정말 어마 무시하다.

국 '졸라'는 여성들의 구매욕과 소비욕구를 성욕과 식욕에 견주어 관능적인 쾌락의 원천으로 묘사한다.

여성의 욕망 외에도, 주인공들의 해피엔딩 외에도 그 당시 백화점의 정경, 판매원들의 경쟁, 영업, 성과급, 처우, 소상인들의 파산, 그들의 고집, 전통, 정직..

소비의 변화, 사랑, 배신, 많은 이야깃 거리가 있다.

'졸라'의 묘사는 언제나 두 손, 두발을 들게 만든다. 천재적인 이야기꾼, 천상 이야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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