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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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이츠'가 꼽은 2019. 휴가 때 읽기 좋은 책으로 선정되고, '버락 오바마'의 2017 올해의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중 하나로 꼽힌, [모스크바의 신사], 제목만으로는 러시아 문학인 줄 알았고, 읽으면서 내내 이 책이 러시아 작가의 책이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는데,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는 미국 작가의 시선으로, 쓸 수 있어서 다행인 책이었음을 수긍하게 되었다.

벽돌 같은 양장본이지만, 가독성이 너무 좋아서, 문체가 너무 세련되어서, 작가의 유머가 너무 격조 있어서, 그리고 이 책 전반에 흐르는 신사의 품위에 대한 독자로서의 예의를 저절로 갖추게 되어서 매우 흐뭇하고, 행복한 독서였다.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은 성안드레아 훈장의 수훈자이며 경마 클럽 회원이고 사냥의 명인이다.

1922년 6월, 내무 인민 위원회 소속 긴급 위원회에 출두한 그는 자신이 1913년도에 발표했던 시,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 덕분에

혁명 이후 차르가 처형되고, 귀족들 역시 특권이 박탈되고 처형되는 분위기 속에서 그가 4년간 머물고 있던 호텔 '메트로폴'에서 평생 연금형을 받게 된다.

시는 1905년의 봉기 실패 이후 볼셰비키들에게 행동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1918년 차르의 처형 소식을 듣고 파리에서 돌아온 백작은, 가문의 곤경과 맞닥뜨린다. 가문의 사유지와 저택을 폐쇄하고 백작 부인인, 할머니를 피신시키고 자신은 이 호텔 스위트룸에서 4년을 지냈었는데, 호텔 유배령이 떨어지면서, 집사또는 하녀들의 숙소였던 방으로 옮기게 된다.

신사는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식사와 토론을 즐기고 독서와 사색을 하면서 일상 잡다한 일들을 즐겼던 그는 '로빈슨 크루소' 처럼, 실질적인 일을 통해 자신의 환경을 이겨내고자 헌신하게 된다.

난 호텔 생활 동안, 그를 각하라고 부르며 깍듯이 대우하던 호텔의 사람들(웨이터, 재봉사, 주방장, 잡역부)과 이제는 다른 신분이지만 우정을 쌓아가고, 9세의 꼬마 숙녀 '니나'와도 친구가 되는데..

백작에게 공주가 되는 규칙을 물으며 접근했던 '니나'를 통해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와 호텔 안에서 노는 법을 학습한 그는' 니나'와 함께 보일러 실부터, 전기실, 창고방 등을 탐험했고, 마스터키도 입수한다.

한편 자신이 머물던 좁은 방과 옷장을 통해서 이어지는 방을 발견한 백작은 이곳을 서재로 꾸며, 비밀스런 방으로 사용한다.

그곳에서 아버지가 읽던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고 여동생 '엘레네'와 고향을 추억하기도 한다.

그의 고향 니즈니노브 고로드는 수많은 명문가들이 모여있었고, 사과 꽃이 눈처럼 떨어지던 곳이다.

국 대학 시절부터 형제처럼 지내던 친구 '미시카'가 모교에 부임하여 호텔로 찾아온다. 백작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미시카'는 시대에 발맞추어 사는 사람으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의 일원으로 '카테리나'라는 여인과 교제를 한다.

- 중간 생략-

 

제목의 대부분이 연도 이다. 그 연도를 러시아 혁명과 전쟁등을 잘 유추하면서 읽어두어야 한다.

1922년 부터, 1954년.. 33세의 백작이 64세가 될 때까지..

1905년 러일 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에 혁명운동이 일어나고, 귀족이 아닌 보통사람, 그것도 호텔에서 평생 연금형에 처해진 백작이

호텔의 직원들과 혹은 손님들과 관계를 맺으며 실질적인 삶을 사는 이야기인데, 그속에서 피어나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부성애..

이 매력 넘치는 백작님, 모스크바의 신사는 읽는 내내, 묘하게 반하고 입꼬리를 올리는 미소를 띄게 한다.

주제는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준다.

름답고 유익하고 품위있는 책이다. 게다가 작가의 품격 있는 유머에 한번씩 빠질 때마다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있다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존재한 곳에서는 언제나 추방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원시 부족에서 가장 앞선 사회에 이르기까지, 같은 구성원들로부터 짐을 꾸려 변경을 넘어가서 다시는 자신이 살던 땅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일 터였다. 추방은 인간 희극의 제1장에서 하느님이 아담에게 내린 형벌이었다. 그리고 몇 페이지 뒤에서 하느님은 카인에게도 그 벌을 내렸다. 그렇다 추방은 인류의 탄생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그런데 러시아인들은 국외가 아니라 자국 땅으로 추방하는 개념을 터득한 최초의 민족이었다. 일찍이 18세기에 차르는, 적들을 나라 밖으로 내쫓는 것을 그만두고 대신 시베리아로 보내는 형벌을 택했다. 왜?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이 아담을 에덴동산 밖으로 추방한 것처럼 어떤 사람을 러시아 밖으로 추방하는 형벌로서 충분히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로 보내면 추방당한 자가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일해서 집을 짓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추방당한 자가 자신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66-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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