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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지난 3월에 '루이스 세풀베다'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사망했다는 이웃님 블로그를 보면서, 그의 책을 담아두었다. 그는 칠레 출신으로 고국 군사정권에 대해 반독재, 반체제 운동에 참여하다가 수감되었고, 석방된 이후 망명하여 독일,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에 정착하였다. 환경 운동가이기도 한 그는 아마존과 남극의 오지 여행을 많이 하였다고 하는데 이 책은 살해당한 브라질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를 기리는 소설이라고..
'가브리엘 가브리아 마르케스'이후 가장 많이 읽히는 라틴아메리카 작가로 마술적 리얼리즘 경향을 띠지 않았다고는 하나, 나에게 이 책은 지극히 남미스러운 수선과, 수다와 어찌할 수 없는 마술적 리얼리즘이 보였다. 인간, 자연, 선과 악에 대한 작가의 철학을 바탕으로 단순하고 짧은 내용의 책을 썼다고 하는데, 환경이나 생태계 문제를 흥미 있게 다루는 환경 소설가로, 최초의 환경 소설로 평가받는 작품( 세상 끝의 세상, 1989) 외 다른 작품들도 기웃거리게 된다.
'엘 이딜리오'는 밀림의 오지이다. 적도 지방으로 원주민인 수아르족 인디오들이 살던 곳으로, 백인들은 이곳에도, 개발의 깃발을 꽂았다.
치과의사 '루비콘도 로아차민'은 배를 타고 우편집배원과 함께 이 마을에 정기적으로 드나든다.
온갖 기이한 방법으로 구강 마취를 한 후 이를 빼는 이 의사는 독특한 사람으로, 입에는 욕을 달고 사는 욕쟁이요, 정부 증오 주의자이다.
무시무시한 치통도 다 정부 탓이라고 욕을 해대면서 이빨을 뽑는다.
이 마을에 사는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야노'란 70대 노인은 가끔씩 드나드는 이 치과의사로부터 소설책을 두 권씩 건네받는다.
노인은 틀니가 닳을까 아까워서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만 착용하고,
연애소설을 특히 좋아하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고통과 불행을 겪다가 결국은 행복해지는 내용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이다.
이 마을에 유일한 공무원인 뚱보 읍장은 권력의 대변자로 원주민 여자와 살면서 손찌검도 한다는 나쁜 사람이다. 전임 읍장은 밀림에서는 누구에게나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했다는데..
마을에 인디오들이 금발의 시체를 카누로 실어 온다. 뚱보 읍장은 야만인 원주민들의 짓이라며 시체를 운반해온 인디오들을 몰아세운다.
노인은 살쾡이의 공격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새끼와 수컷을 잃은 암 살쾡이가 분노의 복수로 인간을 공격한 것이라고..
노인 '안토니오 호세 블리바르 프로야노(이하' 호세 블리바르')는 글을 읽을 줄은 알지만, 쓰지는 못한다.
그는 13세에 '돌로레스 엔카르나시온 델 산타시모 사크라멘토 에스투리냔 오타발로'와 결혼을 약속하고 2년 후에 결혼을 하지만, 불임이었다.
사육제 때 아내를 혼자 보내서 사생아를 갖도록 하자는 제안을 거절한 후 함께 마을을 떠나서, 아마존 유역의 개발 소식으로 페루와 마찰을 빚는 지역 으로의 이주민에게 기술원조를 한다는 말을 듣고 '엘 이딜리오'에 오게 된다. 약속의 땅으로 .. 숲을 개간하면서 척박한 땅과 무지막지한 우기를 넘기며 많은 이주민들의 죽음을 본다. 이름 모를 열매를 따먹다 죽고, 열병으로 죽고, 보아 뱀의 먹이가 되기도 하는.. 그리고 우기에 맞설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인디오들의 도움을 받게 되고 친구가 되어간다. 그들에게 사냥하는 법, 물고기 잡는 법, 폭우에 견딜 수 있는 오두막, 먹을 수 있는 과일을 고르는 법, 즉, 밀림의 세계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기술을 터득해 나간다.
그러나 아내는 말라리아에 걸려 고열로 시달리다가 죽음을 맞는다.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그는 실패한 채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사라진 기억들을 보듬고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원주민들과 함께 산다.
언어도 배우고 함께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에게 밀림은 푸른 지옥의 세계였다. 그러나 차츰 그 푸른 세계에 매료되어 증오도 사라져 버렸다.
-중간생략-
환경 소설이니, 환경운동가를 기리는 소설이니를 떠나 짧지만 재밌고 감동의 포인트가 있는 소설이다. 위대한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메시지도 있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조국, 칠레는 그에 대해 여전히 인색하고 냉담한 반응을 보이지만, 일찌감치 환경과 생태계 문제를 흥미 있게 다룬 작품들로 유럽 독자들을 사로잡아, 21세기 소설문학을 이끌어가는 중요 작가 중 하나라고 옮긴이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