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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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한강은,  흰 것에 대해서 쓰겠다고 별렀다 한다.

흰 것, 그것을 쓰는 과정이 무엇인가를 변화시켜 줄 것 같다고 느껴졌고, 환부에 바른 흰 연고나 환부를 덮을 흰 거즈 같은 무엇..

지구 반대편의 어떤 도시에 겨울부터 머물기로 했던 그녀는, 오염된, 한때 희었을 철문과, 깨끗했을 벽을 흰 페인트로 칠한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나치에 저항하여 봉기를 일으켰던 그 도시는, 전쟁으로 도시의 95%가 파괴되었던 역사를 간직한, 일 년의 절반 동안 눈이 내린다는 곳이다. 그녀는 겨울이 유난히 혹독한 이 도시로 도망치듯 찾아들었지만, 결국 그녀 내부 한가운데였을지도 모르는 곳이었다고 한다.

리고 그녀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따라 내려간 시골의 사택에서 홀로 조산했던 달떡같이 희었다는 그녀의 언니가 두 시간 만에 죽고, 또 칠삭둥이의 남자아이도 조산으로 잃었다 한다.

태어나자마자 하얀 강보에 동여매놓은 채 그대로 다시 한번 흰 천으로 겹겹이 쌓여 산에 묻힌, 배내옷이 수의가 되고, 강보가 관이 되어야 했던 그녀의 형제들..

 

그리하여 평생 병약하고 예민하지만, 그 덕에 빛을 본 그녀와 남동생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머니는 임종 직전까지 그 아이들에 대한, 부스러진 기억들을 꺼내보았고,

남동생 결혼 전에 운명한 어머니를 위해 예단으로 산사람에게 선물하는 비단 옷 대신, 무명 옷을 지어 태워야 했던 이야기..

머니는 하얀 재로 남고

흰 눈은 내리고

파도는 하얗게 부서지고,

달은 하얗고..

각설탕

안개

흰 개

입김

눈보라

백목련

소화제 당의정

백열전구

엑스레이 사진

고요함

쌀, 밥

백지

작별

렇게 하얀 것들이 소재가 된다.

차분하게 읽고 있으려니,

고즈넉하고 침잠해 있는 그녀 '한 강'의 눈빛과

그녀의 내면이 전해져 온다.

읽고 나서 생각해본다.

곧 닥쳐올 겨울은

희다.

눈이 아니어도 겨울은 희다.

흰 것이 차갑다는 이미지를 떠올리게도 한다.

아니, 눈 때문이려나?

눈이 아니어도 겨울은 희다.

희다는 것은 차갑다.

악, 호빵은 흰 것이 오리지널이고

흰 호빵은 따스함의 대명사인데..ㅎㅎ

달도 희다. 달도 차다

- 아무도 밟지 않은 첫서리는 고운 소금 같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부터 태양의 빛은 조금 더 창백해진다. 사람들의 입에서 흰 입김이 흘러나온다. 나무들이 잎을 떨어뜨리며 차츰 가벼워진다. 돌이나 건물 같은 단단한 사물들은 미묘하게 더 무거워 보인다. 외투를 꺼내 입은 남자들과 여자들의 뒷모습에, 무엇인가 견디기 시작한 사람들의 묵묵한 예감이 배어 있다. 48



자신을 버린 적 있는 사람을 무람없이 다시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그녀가 삶을 다시 사랑하는 일은 그때마다 길고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했다.

왜냐하면 당신은 언젠가 반드시 나를 버릴 테니까

내가 가장 약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돌이킬 수없이 서늘하게 등을 돌릴 테니까.

그걸 나는 투명하게 알고 있으니까.

그걸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으니까. 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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