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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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란 쿤데라' 만큼이나 이름이 와닿지 않는 '보후밀 흐라발', 내게는 자꾸, 보리밭, 호밀밭으로 연상이 되는 이름이다. '보후밀 흐라발'도 '밀란 쿤데라'처럼 체코 사람이다. 단지 '밀란 쿤데라'는 기품 있는 집에서 태어나 아직까지 현존하고 있고, 프랑스에 살면서 프랑스어로 작품을 썼다면, 그는 계속 체코에서 살았고, 체코어로 작품을 썼으므로 공산권 통치 아래서 감시와 검열, 금서 조치 등으로 지하 출판 등을 하였으므로 작품이 많지 않다는 것, 그리고 83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쿤데라'보다 '흐라발'의 나이가 15세 연상인데, 동시대의 체코를 빛내는 작가로 우뚝서있다고 한다.

 

인공인 나 '한탸'는 35년째 깊은 지하실의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리와 쥐는 늘 가까이 있고, 하수구 냄새, 그리고 폐지와 함께 들어오는 온갖 오염된 것들, 잔소리쟁이 소장까지, 역겹기도 하지만

 

수 리터의 맥주를 마시며 고된 노동을 견디며, 자신의 작업이 신께서 축복하는 작업이라고, 그 일이 온전한 러브스토리라고까지 한다.

잉크와 얼룩 속에서 일하면서도, 더럽고 냄새나는 폐지 더미 속 선물과도 같은 멋진 책 한 권을 찾아낼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매 순간 살고 있다.

 

는 폐지 더미 속 진귀한 책들을 만날 때면 혼탁한 강물 속 반짝이는 아름다운 물고기를 만난듯하다고 한다. 폐지 더미 속 희귀한 서적의 발견 순간은 언제나 축제의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런 책들을 건져서 읽으며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되는데, 그에게 있어 독서는 기분전환이나 소일거리가 아닌 독서로 인해 영원히 잠을 방해받고, 독서로 인해 섬망증에 걸리기를 바란다.

 

때론 정치 비평 관련 서적을 어느 철학교수에게 찾아다 주기도 하고, 나치 문학을 만나기도 하고, 복제화들로 꾸러미 포장도 하면서, 그의 작업실에서 '예수'와 '노자'를 만나고, 집시여인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너무 시끄러운 고독 탓에 나름 머리가 어질어질하기도 하다.

 

신의 일이 파괴의 행위이자, 도살자로 일종의 암살이며 무고한 생명을 학살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서 오물과 함께 던져진 책들을 압축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압축해 가는지도 모를 일..

 

그에게는 5년 후 은퇴할 때, 자신의 압축기를 사가지고 나가서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은 소망도 있다.

혼자 사는 그의 집은 건져낸 책들이 쌓여져서 언제 쓰러질지도 모르는 지경으로 그는 잠조차 의자에서 웅크리고 잔다. 사실은 그 책들이 불러일으키는 상상의 무게에 짓눌려 몸이 구부정해지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중 프로이센 왕실 도서관 인장이 찍힌 책들이 군용 트럭에 실려오고, 빗물에 젖어서 잉크 물이 흐르는 광경에 자신이, 인륜을 거스르는 사람이라고 울부짖기도 했지만, 이념 갈등으로 인한 부르주아 정책 등의 장서들 또한 화물차에 실려가는 광경에 적응한다.

어머니가 죽자, 화장터에서의 시신 처리가, 자신이 하는일과 같은 일임을 실감하기도 한다.

더러운 환경 속에서 자신의 일에만 빠져 지내다 보니, 신선한 공기를 못 견뎌서, 짬이 날 때면 다른 지하실을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자신의 몸을 씻기조차 꺼리고 있다.

런 그도 한때는 바지 주름을 잡고 씻고 멋을 내던 때가 있었다. 무도회에서 '만차'라고 하는 소녀로부터 춤 제의를 받고, 사랑고백을 듣던 시절, 더러운 에피소드로 그녀는 떠나버렸지만 5년 뒤 모라비아에서 재회를 하게 되는데 그때도 역시 더러운 에피소드만 남긴 채 그녀가 떠나간다. 이에피소드는 직접 읽어봐야 재밌다.

철도원이었던 외삼촌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시신을 직접 처리하게 되었는데, '한탸'는 지하실의 종이더미를 처리하듯이 그 일 해냈다.

그런 그에게도 한때 사랑했고 밤을 보내던 여인이 있었다. 불을 안고 있던 어린 집시 여자였다. 어느 날 돌아오지 않던 그녀가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죽었다는 소식도 듣는다. 이제는 그녀의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중간 생략-

 

1960년대 공산주의 체제하의 체코 프라하가 배경이다. 공산주의 체제 감시하에 글을 써야 했던 파란만장 한 삶을 산 작가 '보후밀 흐라발', 우화 같기도 하고, 명상 같기도 한 책의 세계로 빠지게 된다. 책은 부조리, 모순, 폭력, 고독으로 부터의 위안이다. 그는 이 작품이 자신의 삶과 작품 전체를 상징하고,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고 했다 한다. 그가 세상에 온 건 이 책'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쓰기 위해서였다고..

그는 비둘기에 먹이를 주려다가 5층 창문에서 떨어져 사망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가 5층에서 살았고, 책 중에 5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내용이 등장했다고 하는 바 그의 죽음에 관한 의혹도 있다고 하는데 그때 그의 나이가 83세였던 것이다.

무도 짧은 책, 화려한 기교의 문장은 아니지만, 또 놓치기가 아까워서 부러 한번 씩 끊어 읽어야 했다. 책의 소중함, 책이 주는 위안, 그리고 체코 작품의 애잔함을 을 맛보고 싶은 분들은 도전해 보시길, 독서하는 이웃이라면 강추입니다. 그리고 이책을 알게해 주신 '지우개'님께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이 작가의 또다른 책들도 기웃거려 본다.

 

 

사실 내 독서는 딱히 읽는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9-10



- 진정한 생각들은 바깥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국수 그릇처럼 여기, 우리 곁에 놓여 있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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