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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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국민작가 '소세키'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원래는 단편으로 출간됐는데 반응이 너무도 좋아서 장편의 분량으로 연재하게 되었다는 이 책은 '열린책들' 판으로 구입했다가 안 그래도 두꺼운 책의 글자 간 간격이 너무도 피곤한 나열이라 되팔고, '현암사' 판으로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두 권의 분량을 한 권으로 들고 다니려니, 북파우치에도 끼이고, 들고 읽기에도 무거웠다.

러나 내용은 참으로 재미나다.

이름도 없고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도둑고양이 출신의 고양이 한 마리가 선생 '구샤미'집에 기거하면서 주인만큼 무료한 시간을 주인과 주인의 가족, 그리고 주인의 서재에 드나드는 인간들을 관찰하며 지낸다.

주인 '구샤미'는 신경성 위염을 앓고 있는 중학교 영어 선생이다. 소극적이고, 무기력하고 무능하기도 하고 암튼 약아빠지지 못한 위인이다.

료한 시간, 서재에 틀어박혀 사생도 하고, 수채화도 그리지만 영 소질이 없는 주인의 생활 습관, 취향, 취미, 허세를 면밀하게 관찰해내는 이 고양이는 주인의 일기도 엿보고 독심술도 터득하여 그의 마음도 읽는다. 아니 아예 인간을 연구하는 것같다.

이웃집에 사는 고양이들과 교류하기도 하는데, 그 고양이들이 주인의 품위나 직업에 따라 성향이 다르기도 하다. 학자의 집에 사는 이 고양이는 일반 고양이와는 다르다고, 고양이로서의 진화 단계 중 최고의 단계에 도달했다고 스스로 자부하며 두뇌의 발달도 중3 학생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매우 유식하고 사색적인 고양이다. 자기가 면도만 잘하면 인간의 얼굴이 될 수도 있다고 착각하며 그만큼 인간에 가깝다고 느끼는 발칙하고도 당돌한 면이 있다.

미모의 고양이 '얼룩이'에게 반하지만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다.

책의 시대적 배경은 러일 전쟁에서의 이어지는 승전보에 한껏 고양된 사회로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대국민'이라 여기고 서구적인 것을 부러워하고 수용하기를 앞다투던 때이다. '구샤미'의 서재에 드나드는 공부 꾀나 한 벗들(미학자, 이학자, 철학자 등)과 평범한 소재로 말장난같이 나누는 대화가, 그 대화를 풍자하는 고양이의 관점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구문물과 가치의 수용에 무기력한 지식인, 약삭빠르게 대처하는 사업가, 허풍쟁이 추종자 등이 있지만 '구샤미'는 뭐든 까다롭게 해석하는 구식의 사람이다.

학생들에게도 놀림을 당하고 선생질도 재미없어 하지만, 사업가 따위는 천박하다고 무시하며 쓸데없는 것에 고집불통으로 아내를 힘들게 하기도 하고 벗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한다. 융통성 없고, 순수하고 맹한 고집쟁이인 그는 그 시대의 요즘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구샤미'와 그의 벗들, 인간들을 맘껏 우롱하던 고양이는 맥주를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해서는 독에 빠져 죽게 된다. 어이없는 죽음에 웃음도 날법하지만, 살려는 발버둥 없이 태평함의 경지에 이르러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고상한 최후를 맞이한다.

인간을 관찰하는 고양이에게 반했는데, 결국엔 고양이를 관찰한 인간 '소세키'에게 반해 버렸다. 책의 주인공 '구샤미'처럼 영어교사로 있었던 '소세키'는 고양이의 눈을 빌어 자기의 찌질하고도 나약한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구샤미'에 투영시켰다고 보여진다.

110년도 더 된 책인데, 그리고 니힐리즘과 탐미주의로 점철된 일본 문학인데, 그리하여 읽을 때 또 긴 호흡이 필요한 것인데... 그런 염려와 긴장이 전혀 필요 없는 재미있고 밝은 독서였다.

'도련님', '마음'에 이어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일본 근대문학의 정수라 일컫는 '소세키'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다.

* 일본의 문호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중산층 사람들의 인생을 가장 면밀하게 검증한다고 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세상 이치를 알게 된다. 세상 이치를 알게 된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나날이 위험이 많아져 방심할 수 없게 된다. 교활해지는 것도 비열해지는 것도, 표리 두 겹으로 된 호신용 옷을 걸치는 것도 모두 세상 이치를 아는 결과이며, 세상 이치를 안다는 것은 결국 나이를 먹는 죗값이다. 노인 중에 변변한 자가 없다는 것도 같은 이치다. 250-251

휴식은 만물이 하늘에 마땅히 요구해야 할 권리다. 이 세상에서 살아 숨 쉬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움직이는 자는 그의 무를 다하기 우해 휴식을 취해야 한다. 가령 신이 있어 너희는 일하기 위해 태어났지 잠자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는 그 말씀대로 일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러므로 일하기 위해 휴식을 원하는 거라고. 257

그 이유를 물어도 아무 대답도 못한다. 단지 서양인이 입으니까 입는다고 할 뿐이다. 서양인은 강하니까 무리해서라도, 바보 같긴 행도 흉내 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일게다. 긴 것에는 감겨라, 감한 것에는 굽혀라, 무거운 것에는 눌려라, 이런 명령을 다 따라 하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 아닌가. 촌스럽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제발 부탁이니 일본인을 훌륭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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