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과 그가 예측하거나 혹은 희망하는 후보자 및 작품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블로거 이웃님의 소개로 읽게 된 작품이다. '뭇 산들의 꼭대기' 이후 관심을 갖게 된 중국 소설 중 세 번째 작품, 세 번째 작가이다. 모옌, 위화, 옌레커, 류전, 츠쯔젠 등이 우리나라에 좀 알려진 작가들이라고하는데. '모옌의 개구리'와 '위화의 인생'도 책장에 대기중이다.

'옌레커'는 중국 문단의 이단아로서 시대와 불화하는 작가라고 불린다 한다. 나름 반역의 글쓰기를 통해 중국 문단의 실천적 목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이 책은 신처럼 여겨지는 '마오쩌뚱'에 대한 모욕으로 2005년 발간 당시 많은 부분을 삭제하고 출판되었음에도 긴급명령으로 인해 책 전부를 회수하는 금서 조치도 있었다고 한다.

28세의 '우다왕'은 중졸, 농촌 출신으로 사단장 집에서 취사를 담당하는 고참 공무 분대장이다. 그는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를 도와 생계를 이어가다가 병든 어머니가 자신이 죽으면 상복 입은 며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자신에게 호감을 가졌던 인민공사 회계담당자였던 '자오'씨의 딸과 결혼을 결심한다.

'자오'씨는 그를 군에 입대시키고 당에 입당하여 공을 세우고 간부로 발탁되어야 딸을 내주겠다고 한다. 어머니가 위독해지자 다시 '자오'를 찾은 '우다왕'은 그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각서를 쓰고 결혼을 한다. 뜻한 바가 이루어지자 미소를 머금고 죽은 어머니와 아내를 뒤로하고 부대로 돌아온 '우다왕'은 특유의 성실함과 충직함으로 열심히 공을 세우려 하지만 입당도 하지 못한 채 절망한다. 그러나 지도원의 눈에 띄도록 노력한 덕분에 취사 분대 부분대장으로 임명됐다가 사단장의 사택으로 전출된다. 사단장은 혁명정부의 위대한 군인으로서 부지런하고 혁신적인 일꾼이다. 오십이 넘은 그에게는 17-8세 연하의 꽃다운 부인 '류렌'이있는데 그녀는 사단 군 병원의 간호사 출신으로, 결혼 이후 출근하지 않고 5년 동안 사택의 안주인으로 지내고 있다.

그런 그녀가 식사시간이나 마당에서 채소를 뜯는 '우다왕'에게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내는 사실을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식탁에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나무팻말이 놓여있는데 사단장이 중요한 회의 참석차 두달간 베이징으로 간 이후 '우다왕'과 식사를 마친 '류렌'이 그에게 "이 나무 팻말이 원래 있던 자리에 없으면 자기가 볼일이 있어 우다왕을 찾는다는 뜻으로 알고 그녀가 기거하는 2층으로 올라오라"고 명령을 한다.

녀의 대담하고도 노골적인 유혹 앞에서 실랑이 끝, 두려움을 느낀 '우다왕'은 부대로 피신을 했는데 지도원이 '류렌'에게 전화가 왔었다며 '충실하게 근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취사관 교체를 요구한다며 '사단장의 가정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명령에 충실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사택으로 돌아온 '우다왕'은 아름다운 얼굴, 세련되고 고혹적인 몸매의 '류렌'을 보며 기회를 얻고자 그녀의 유혹을 받아들인다.

'류렌'의 남편 사단장은 남자로서의 삶을 살수 없는 사람으로 전처와도 그 이유로 이혼한 이후, '류렌'이 마음에 들어 결혼하지만, 자신의 그러함을 눈물로 고백하고 보통사람과 다른 부부의 삶을 산다. '우다왕'은 장인에게 서약하고 결혼을 해서 아들도 낳았지만 사랑이 빠진 결혼생활에 신혼 초부터 혼인의 무의미함을 느꼈던 터라, 시도 때도 없이 팻말을 치워버리는 '류렌'에게 향하면서 두 달 동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그들의 사랑행각은 점점더 대담해 지면서 비로소 성애에 눈뜬다.

그녀는 '우다왕'에게 진급도 시켜주고 그의 아내와 아들이 도시로 나와 살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한다.

야만적이고 원초적인 사랑의 행각에 지치고 피로를 느끼던 '우다왕'은 격정의 사랑 끝, '류렌'을 향한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끼기도 하는 데 '마오 주석'의 전신 석고상을 실수(류렌의 고의이기도 한)로 산산조각 낸 후 그녀와 누구의 사랑이 더 큰지를 내기하면서 '마오 주석'과 관련된 물품들을 파괴해 간다. 액자를 깨뜨리고, 쟁반을 깨고 초상화를 앞다투어 망가뜨리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기도 하고, 지속될 수 없는 사랑 앞에 불안해하고,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으로 괴로워 하던 끝, 사단장이 돌아오기로 한 전날, '류렌'은 임신한 것 같다는 고백을 하고는 '우다왕'에게 고향으로 내려가서 연락이 갈 때까지는 돌아오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다.

 

-중간 생략​-

레커의 남성다움이 느껴졌다. 남성작가다운 소설, 그리고 짓궂은 작가의 개입, 풍자와 해학, 특히나 해학이 넘친다는게 이런거구나 했던 ..그리구 매우 야하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색계'같은 반향을 일으킬수도 있겠다. 중국도 벌써 두명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옌레커 또한 후보로 주목된다는데 가까운 일본은 말할것도 없고, 우리나라의 소설가들을 생각해 본다. 일본은 패전국 딜레마, 중국은 문화혁명과 공산주의 딜레마, 우리도 만만찮은 일본식민지와 6.25전쟁, 그리고 휘황찬란한 근대민주화의 딜레마가 있는데 충분히 세계적인 관심거리가 될 명확한 테마가 있는데도, 왜 주목받지를 못하는지 ....배가아프다.

 

 

- 소설은 삶의 많은 진실을 유일하게 대변한다. 그렇다면 소설의 방식으로 이를 표현하기로 하자. 어떤 진실한 삶의 모습은 허구라는 교량을 통해서만 비로소 확실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15



- 그렇게 시간은 동쪽으로 흐르는 물처럼, 세월은 서쪽으로 지는 해처럼 조용히 흘러갔다. 23



사건의 결말은 이미 엄숙함에서 황당함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 황당함의 정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고 우다왕의 상상도 넘어섰지만 여전히 질탕한 이야기 한가운데 있었다. 그때 두 사람은 자신들의 행위가 터무니없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어쩌면 특수한 정경속에서 바로 그 황당함 때문에 한 가지 진실을 실증해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황당하지 않고서는 오히려 허위를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의 감정세계에서 황당함은 모든 일의 귀착점인지도 모른다. 황당한 결말이 있어야만 과정의 가치를 경험적으로 실증해낼 수 있다. 결말이 황당하지 않으면 그 핍진한 과정들은 아무리 그럴듯하다고 해도 결국에는 유희 같은 허상과 무의미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1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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