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2 민음사 모던 클래식 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은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다. 문명 간의 충돌, 이슬람과 세속화된 민족주의 간의 관계 등을 주제로 작품을 써왔다는 인상 좋은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 시간, 아름답고 슬픈 독서를 마친 후의 여운을 음미하며 잔잔하면서도 벅차오르는 행복을 느끼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 책이 인생 책이라고까지 극찬을 했다.

나는 '오르한 파묵'을 내가 관심 있어 하고 꾸준히 읽게 될 작가들의 명단에 올려본다.

책은 추리소설이고 역사소설이다. 그런데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예술과 러브스토리이다.

이슬람 국가의 세밀 화가라는, 개성이 드러나서도 안되고, 자신만의 화풍이 있어서도 안 되는, 그리하여 자신의 작품에 서명도 할 수 없는 예술가들의 운명, 유럽의 그림과 그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신에 대한 순종과 인간적인 것 사이에서의 불안과 갈등이 전반적으로 차분하게,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그들은 종교 안에서, 신 안에서 그리고 통치자인 술탄의 지배 아래서 가난하고 불행하지만 순종하고 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세밀 화가들은 평생 신념을 갖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면 자연스럽게 장님이 되고 그것이 과도한 열정의 징표이고, 노력과 기예에 대한 신의 은총이라고 여기며 눈이 멀지 않음을 부끄러이 여겨 스스로 장님이 되게 하기도 한다.

'오스만'이라는 화원장의 제자들 '나비', '황새', '올리브', 그리고 '엘레강스'는 한때 베네치아의 사신이었던 '에니시테'가 서양화가들의 그림에 반해 술탄에게 건의하여 베네치아 총독에게 선물할 책(축제의 서)을 만드는 일에 비밀리에 동원된다. 그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이 화가들에게도 가려진 채로 자신의 영역만 그리게 되는데 그 그림의 마지막 페이지를 보게 된 금박공 '엘레강스'는 충격과 불안에 휩싸인 채로 살해당한다.

이 책 ‘축제의 서’는 같은 이야기와 소재를 서로 다른 화풍으로 제작되고 있었다. 하나는 술탄의 밀서로 '에니시테'와 세밀 화가들에게, 다른 하나는 화원장 '오스만'과 그의 화공들에게.

전통적인 화풍으로 그리고 있는 '오스만'은 '에니시테'를 미워하고 어리석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리고 '에니시테' 역시 살해된다.

'엘레강스'가 죽기 전에 보았던 마지막 페이지의 그림은 원근법을 사용한 (원근법은 서양화가들의 기법으로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을 뜻한다. 그러나 이슬람 국가의 세밀 화가들의 그림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평면적이고 투시적인 그림으로 신의 관점이다.)것으로 사물이 신의 마음속 중요성을 따르지 않고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졌고, 이슬람의 칼리프인 술탄을 개와 같은 크기고 그리고, 악마를 사랑스럽게 그리고, 유럽인의 관점을 수용해서 술탄의 얼굴을 크고 실물처럼 세세하게 그린 초상화는 모욕적이고 비종교적이고 불경스러움으로 인해 이단적인 의미를 지닌다.

'엘레강스'의 살인자는 이 비밀 작업에 동원된 남은 세밀 화가들 '나비', '황새, '올리브' 중에 있다. 불안해하면서도 가난과 복종 속에서 작업을 해왔던 그들은 '엘레강스'의 폭로, 혹은 살인자의 폭로와 마지막 페이지를 보게 된 후 술탄과 '에니시테'의 서양에 대한 모종의 선망과, 전통을 지키는 것과 새로운 화풍 사이에서, 그리고 신성모독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 사이에서, 어려서부터 함께 해온 자신들의 경쟁자이자, 형제이고, 연인 같은 동료들 중 살인자를 추적해 가면서 갈등의 최고조에 달한다.

원장 '오스만'은 술탄의 허락으로 철통 보안중인 궁궐의 국고를 '카라'와 함께 들어가서, 그곳에 보관된 아주 오래된 그림과 책들을 보면서 전율을 느끼고 오래된 이야기들을 추억해내며 전통을 고수해 왔지만, 실은 변화하여 왔음을 깨닫고 아끼는 자식과도 같은 세 제자들 중 살인자를 유추해 내면서 스스로 눈이 먼다.

한편 죽은 '에니시테'에게는 절세미인인 딸 '세큐레'가 있다. 전쟁에 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중, 두 아들을 데리고 시댁에서 지내는 동안 그녀에게 연정을 품은 시동생 '하산'이 집적대자 친정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살게 되며 제2의 결혼을 꿈꾸는 그녀는 '엘레강스'가 행방불명이 된 이후 아버지를 도우러 오게 된 열두 살 연상의 사촌 '카라'(오래전 그녀를 사랑했고, 주체할 수 없어 추방되었던)와 해후하게 된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전개된다.

의 구성이 매우 독특하고 신선하다. 일종의 가전체 소설 마냥, 사물이 독자에게 고백을 한다. 그래서 독자의 역할이 또한 크다. 그림 속의 개와, 빨간색과 말과 악마, 그리고 각 주인공들과 죽은 자들도 말을 하고 동의를 구하고 질문을 한다. 절세미인이 몇 나오고, 미소년에 대한 사랑도 언급되고 사랑의 행위에 대한 구구절절한 묘사는 아니지만, 과감한 표현들이 재치를 위장하고 신의 은총이라는 변명 아래 동의를 구하며 지나간다. 그리고 마치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역사 속의 사랑 이야기, 전쟁 이야기들이 중간중간 등장한다.

* 살인자를 가려내기 위한 그리고 두 남녀의 사랑이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작가의 여러 장치들에 매력적인 힘이 있다.

* 이 책의 제목 빨강- 그때 당시(시대적 배경 1591년)는 붉은색 물감을 만드는 것도 절차가 복잡했던 시대, 살인자가 붉은 물감이 담긴 청동 물병으로 '에니시테'를 여러 차례 가격하여 살해함, 화원장 '오스만'은 '에니시테'의 그림에 적용된 빨간색의 정렬 방식에 두려움을 느낌, 술탄의 국고는 대체적으로 붉은색이 돔, 붉은색은 신, 죽음의 세계. 희열, 예술가들의 열정, 살인. 피...

 

"그는 원근법들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 베네치아 화가들의 화풍을 모방하는 것은 악마의 유혹에 빠지는 거라고 말했답니다. 마지막 그림에서 우리가 서양인들이 사용하는 기법으로 그린 인간의 얼굴은 마치 진짜 같았답니다. 그래서 그 그림을 본 사람들이 교회의 우상 앞에서 그렇게 하듯, 엎드려 경배하고 싶어질 정도라고요, 엘레강스의 말에 의하면 원근법은 그림을 신의 시선으로부터 거리를 쏘다니는 개의 시선으로 격하시켰고, 베네치아인들의 기법을 모방하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화풍을 이교도의 화풍과 뒤섞어 우리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겁니다. 그는 우리가 한 일이 우리를 서양인들의 노예로 전락시키려는 악마의 꾐에 빠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p287

수많은 고통을 마감한 나는 마음이 평안해졌다. 죽는다는 것은 두려워했던 것과는 달리, 고통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편안했다. 이 상태는 영원한 것이며, 살면서 느꼈던 모든 답답함은 찰나에 불과했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이제 모든 것은 수 세기 동안 영원히, 종말의 그날까지 이렇게 계속될 것이다. 그 상태가 불만스럽지도, 만족스럽지도 않다. 한때 내가 견뎌야 했던, 끊임없이 휘몰아쳤던 모든 사건들은 이제 무한한 공간으로 퍼져 나갔으며 동시에 거기 있었다. p314

작가 에니시테는 어떤 결함이 재능이 없거나 기예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화가의 영혼 깊은 곳에서 나온 거라면, 그것은 이미 결함이 아니라 개성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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