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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의 무희.천 마리 학.호수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39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신인섭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12월
평점 :
이 책에는 이즈의 무희외에도 천 마리 학과, 호수라는 작품이 담겨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우리나라의 일본 문학 수용사의 원점이라고 하는데 일본 문학을 '미의식'이라는 틀로 바라보게 만든 장본인이라 한다.
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으로 70대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다. 우리나라 문화계 인사들과도 교류가 있었다 하는데 '앙드레김이' 그의 작품 '설국'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흰옷만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오래전 설국을 읽으려다가 포기한 채로 책꽂이에 있는데, 다시 한번 읽어보기로 맘도 먹는다.
이즈의 무희는 고아의 근성으로 비뚤어진 스무 살의 학생 '나'가 이즈반도를 혼자 여행하면서 가족으로 이루어진( 한 명을 제외한), 천한 유랑 가무단과 여관이나 온천 등에서 마주치며, 그중 14세짜리 아름다운 무희에게 호감을 갖지만 수줍어하면서 스쳐가는 이야기이다. 서로 비슷한 여정에서 때로는 빨리 만나려, 때로는 일부러 늦추며 우연인 듯, 또 같이 길을 나서기도 하는 여행길에서의 그들과의 조우, 어린 소녀 무희는 '나'를 설레게 하고 '나'의 마음을 잔잔히 흔든다. '나'는 여행하듯이 어떤 작위적인 노력 없이 그냥 흘러가고, 흘러온다. 귀갓길에 만난 소년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고, 흘려보내면서 상쾌해진다.
천 마리 학, 25세가량의 미타니 기쿠지가 3,4년 전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고 나서 아버지 집에 머물면서 아버지가 좋아하던 '다도'와 관련된 여인 구리모토 지카코의 다회 초청을 받는다. 어린 기억에 유방에 푸른 반점이 있던 그녀 지카코를 매우 불결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한때 아버지의 여자였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기쿠지에게 이나무라 댁 아가씨 유키코를 선보인다. 마음에 들지만, 결혼엔 아직 관심이 없고 그런 다회에도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 자리에 초대받지 않은 한때 아버지의 여자였던 오타 부인과 그녀의 딸 후미코가 등장한다. 오타 부인은 아버지 친구의 미망인으로 역시 아버지와 다도로 연결된 사람이었다. 시노 찻잔으로 연결된 부부와 내연관계와 오타 부인의 딸 후미코와 기쿠지.. 잔잔하게 이어가는 패륜의 이야기이나, 미학적으로 잘 그려나간다. 놓쳐 버린 유키코가 차를 만드는 모습을 묘사했는데 다도란 것이 이렇게 관능적일 수가 있는 거구나 하면서 읽었던 대목
호수, 마성을 풍기는 아름다운 소녀의 뒤를 밟는 모모이 긴페이는 무좀균도 피해 가는 매우 못생긴 발을 가진 34세의 남성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어머니의 고향마을 호수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후 외사촌 누이 야요이를 보며 이성에 눈이 뜬다.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 다마키 히사코와 부적절한 사랑을 나누다가 해직된다. 25세가량의 미르키 미야코도 미행 중에 그녀가 던진 20만 엔이 든 핸드백을 주어 들고는 범죄자가 되었다고 느낀다. 한편 미야코는 70이 다 된 노인 아리타의 첩으로 자기의 젊음을 바치는 대신 게으르고 풍요로운 삶을 산다. 그 노인 아리타는 질투로 자살한 아내에 대한 상처로 첩들끼리의 질투를 몹시 싫어하며, 공포증 같은 것을 지니고 있어 그녀들에게 모성의 사랑을 요구한다. 긴페이는 다시 마치에라는 소녀의 뒤를 밟는다. 그 소녀에게는 양가에서 반대하는 미즈노라는 애인이 있고...
온천과 다도 등 일본스러운 광경의 묘사가 매우 서정적이다. 불편한 소재이기도 하나, 그다지 노골적이진 않다. 작품 해설에서는 이 작품에 세속적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심미적 장치가 곳곳에 놓여 있어 독자들은 통속성보다는 예술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