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부를 못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쿠니 가오리 작품에 이어 야마다 에이미의 작품을 처음 접한다. 이어서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이 대기 중이다. 이 소설은 성장소설류에 속한다. 십칠 세 소년 도키다 히데미는 결손가정의, 외모와 이성과 연애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아직 무엇이 될지 모르고, 공부의 필요성도 못 느끼는 소년이다.

그의 가족은 출판사를 다니는 미혼모인 엄마 진코와 외할아버지 류이치로가 전부이다. 엄마는 여전히 연애 중이고, 최근 유부남 동료에게 빠져있다고 자신의 아버지와 아들에게 말한다. 그 할아버지는 여전히 이쁜 할머니들을 쫓아다니다가 퇴짜 맞은 이야기도 손주에게 한다. 얼핏 그 가족의 대화를 듣다 보면 콩가루 집안인가 하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런 탓에 그 역시 도발적이고 자유분방한 성격이고 물장사하는 연상녀 모모코와 애인관계이고, 그 관계 또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오픈한다. 그 또래 다른 아이들과는 사뭇 많이 다른 소년이다. 그러나 읽어갈수록 그 가족은 매우 따뜻하게 연결되어 있고 건강한 가족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범치 않은 가정에서 자라는 그에게, 그리고 미혼모인 엄마와 아내가 없는 할아버지 모두에게 열려 있는 애정관과 그 애정을 둘러싼 것들을 서로 존중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함께 성장해간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세상에 완벽한 사람도, 이미 성숙한 사람도, 그런 사랑도 없는 것 아닌가. 십 대의 소년이나 사십 대의 엄마나 칠십 대의 할아버지나, 나이만큼 살아오면서 겪은 이벤트만큼 성숙하는 건 아니고, 죽을 때까지 인간은 계속 성장하다가, 계속 철이 들다가 그러한 과정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가족의 대화를 엿보다가 한 번씩 웃음이 나오고 갸우뚱거리다가도 끄덕이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소년에게 사쿠라이라는 담임샘이자 축구 동호회 담당 샘이 있다. 그 소년의 쿨한 외조부와 모친만큼 그 담임샘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물론 그 소년의 과거에는 융통성 없고 편견과 권위가 가득한 오쿠무라라는 샘도 있었으나, 지금의 그 담임샘과 나누는 대화나 나누는 친밀감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소년은 비록 자기가 공부를 못한다고 당당히 외치고 친구 중에는 공부를 해야 할 이유가, 소음이나 쓰레기 때문에 정치가, 생태학 연구가 가 되어야 한다는 친구, 또 중이 되겠다는 친구,  물장사를 하겠다는 외모만 가꾸는 일에 열중인 소녀 친구도 있다. 그리고 어른들한테 암묵적으로 배운 권위 때문에 열공만 하는 친구도 있으며 인간의 하루가 원래 25시간인데 다들 시간을 나누어서 적응하고 살지만 유난한 사람들은 불면증 등의 시차 적응을 못해서 괴롭다 하며 자신 역시 그것이 괴롭다고 하다가 자살해 버린  친구도 있다.

그런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깊은 관찰과 제멋대로인 듯하지만 깊은 사유 속에서, 가족이나 선생님으로부터 억압받지 않으며 자신의 갈 길을 찾으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중 이 소년, 도키다 히데미를 특별히 마음에 두는 주인공이라고 한다.  그녀 자신도 학교라는 제도가 주는 억압 속에서 예술가로서의 싹이 파란 존재로 자라면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었으리라 추측된다. 작가는 어쩌면 불편한 것들, 그 나이, 그 또래 남자아이들의 관심사와 방황사에 대하여 다분히 도전적이고 발칙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문제 가정, 문제 아이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도 집고 넘어가는 듯하다.  그리고 어른의 역할, 가족과 선생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읽으면서 저  발칙한 소년이 잘 성장하고 있고 따뜻한 결말이 너무 사랑스럽고, 그리고 그의 매력적이고 화려한 엄마나 할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태도와 각자의 삶을 존중해주고 억압하지 않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바가 많았다.

그녀는 순수하게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진짜로 순수한 존재 따위가 있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건 대부분 가공된 것이다. 하얀 셔츠는 하얀색으로 물들였기 때문에 하얗다. 맑은 물은 소독되었기 때문에 마실 수 있다. 소녀의 순정은 그것이 가치 있다고 세뇌 받았기 때문에 지켜지는 것이다.

인간 자체보다는 그 인간이 만들어낸 공기의 힘이 내게는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웃음이나 분노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공기의 흐름은 타인의 피부에 절절히 와닿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그걸 잃는 게 슬퍼서 죽음을 아파하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시키지 않아도 좋은 그런 영역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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