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굴레에서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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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의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하는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는 그의 자서전적인 소설이다. 원래는 [스티븐 케어리의 예술가적 기질]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었으나 실패를 맛보고, 원숙하게 다듬어 '인간의 굴레'라는 타이틀로 출판했다고 한다.

'필립'은 기형족으로 태어나, 절름발이이다. 9세 때 동생을 낳던 어머니가 사산아를 출산하고 죽는다. 그보다 6개월 전에 외과의사였던 아버지도 패혈증으로 사망한 바 있다.

미인이었던 어머니는 고아 출신의, 가난하지만 화려했고, 아버지와 환자로 인연을 맺어 결혼을 하였다.

모에 이어 유모와의 아픈 이별을 겪고 블랙스터블 관할 사제인 백부 '윌리엄 케어리'에게로 보내지는데, 50대의 이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루이저' 사이에는 아이가 없다.

무뚝뚝하고 이기적이고 경직된 큰아버지와 달리 인자한 큰어머니는 '필립'을 사랑으로 키우려 든다. 그 부부는 모두 '필립'이 성직자가 되기를 바란다. '필립'은 책에 점점 빠져들고 책과 함께 성장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불구와 처지에 슬픔을 내보이고 동정을 사는 일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지어낸 거짓말에 진심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이들은 '젠트리' 계급으로 귀족의 다음으로 농업경영자, 군인 장교, 법률가, 성직자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필립'은 '터캔버리 킹즈 스쿨'에 입학해서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는데 절름발이의 모습이 아이들의 조롱과 놀림거리가 된다. 수치와 굴욕감, 열등감을 맛보지만, 성서 연맹에 가입하고 신앙심을 키우면서 맨 처음으로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기도한다. '다리를 낳게 해달라'라고

구들의 놀림 속에서도 공부를 잘했던 '필립'은 교장의 지지를 받으며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한 친구가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며 다가오자 처음으로 우정에 눈 뜬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에게도 호의적이며, 친절한 그 친구를 질투한다. 그리고 상처 받는다.

결국 한 학기를 남겨 놓고 독일로 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백부모의 만류와 걱정 속에 하이델베르크로 떠난다. 그곳 하숙집에서 숙녀들과, 또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토론을 하며 공부를 한다. 어느 날 두 사람의 종교에 대한 토론을 듣던 '필립'은 종교가 토론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에 놀라면서 깊은 사유를 하고 종교에서 벗어난다. 막상 종교를 벗어버리니 자유를 깨닫게 된다. 기독교의 교의는 버렸지만 기독교의 윤리, 덕목은 받아들이기로 한다.

1년 만에 백부모 곁으로 돌아온 '필립'은 '미스 윌킨슨'이라는 나이가 많은 여성과 교제를 한다. 그러나 너무 적극적인 그녀에게 싫증이 나던 차 그녀는 베를린의 가정교사로 떠난다.

'필립'은 회계사의 견습사원으로 런던으로 간다. 그리고 그 일이 자신과 맞지 않음을 느끼고 자신의 재능이라고 여긴, 미술을 공부하고자 파리로 간다. 학원에서 자신의 그림을 조언해주던 '페니 프라이스'와 가까워진다. 여러 벗들과 사귀면서 '압생트'에도 길든다. 감초 맛이 나는 '압생트'는 매우 독한 술로 예술가들에게 인기가 있다.

'애인은 파리 미술학도에게 필수품'이라는 말에 걸맞게 다양한 연애들을 하는 다양한 벗들과 함께 '마네의 올랭피아'를 보러 다니고 자신의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로 소일을 하는데,

모두들 별난 여자라고 여기던 '프라이스'가 자살을 하고 뒷수습을 맡게된다. '필립'이 차차 자신의 그림에 소질 없음을 깨닫고 이류 화가가 될 바에는 의미가 없다고 여기던 즈음 큰어머니의 사망 소식으로 2년간의 파리 생활을 접고 블랙스터블로 돌아와 의학교에 입학한다.

구와 함께 갔던 찻집에서 전형적인 미인에 속하는 종업원 '밀드레드'를 알게 되는데, 점점 그녀에게 빠져든다.

그녀 주위를 돌면서 공부도 소홀히 하게 되어 시험도 두 번씩이나 떨어진다. '밀드레드'는 미련하고 욕심이 많고 사악하고 저속한 여인인데, 그녀의 거짓말과 냉대를 알면서도 그녀를 사랑 하고 증오하고 질투하는 미친 사랑의 앓이가 시작된다.

시인 '크론쇼'에게 인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에 대한 답이라고 보내준 '페르시아 양탄자'를 보며 스스로가 발견하지 못하면 무의미하다는 언지를 되새긴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과 불구로 인한 자신의 삐딱한 사고와, 종교적인 심성을 통해 인생의 굴레를 느껴간다.

자신의 미련한 사랑을 마음껏 농락하던 '밀드레드'는 찻집에 드나들며 농지거리를 주고받던 '에밀 밀러'와 결혼을 한다.

픈 마음을 간직한 '필립'은 3류 소설을 쓰는 '노라'와 교제한다. 현명하고 착한 그녀는 '필립'을 행복하게 해주는 여자이다. 흡사 모성애 같기도 한 그녀의 사랑속에서 안정을 찾던 중, 자신의 집에서 울고 있는 '밀드레드'를 보고 당황한다. 당신과 결혼할 걸 그랬어요. '에밀 밀러'는 유부남이었다고, 임신 7개월의 몸으로 나타난 그녀를 보면서 여전히 강렬한 자신의 사랑을 느끼며,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행복하다고, '노라'와 행복하기 보다 '밀드레드'와 불행할 것을 선택한다.

'밀드레드'는 '필립'의 골수에 사무쳐 있는 사람이다.

'노라'를 떠나보내고 자신의 집에 머물며 딸을 출산한 '밀드레드'는 '필립'의 돈으로 옷을 사고 낭비를 하면서 지낸다. 무식한 그녀가 하루 종일 자기하고만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따분해 할 것을 걱정한 '필립'은 그녀에게 자신의 병간호로 가까워진 '그리피스'라는 남자를 소개한다. '그리피스'는 잘생기고 바람둥이지만 사람이 좋아 주변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으며 '필립'과 좋은 우정을 나누던 상대이다.

'필립'은 '밀드레드'가 출산 이후 회복되면 함께 할 파리 여행을 계획했었는데, '그리피스'에게 반하고 사랑하게 된 '밀드레드'는 그 여행 계획을 뒤엎는다. 필립은 그녀의 방세와 옷값, 식비, 아이의 양육비까지 모두 부담을 하는데, 결국 '밀드레드'는 '그리피스'와 옥스퍼드 여행에 나선다.

구의 배신과 여인의 배반을 괴로워하지만 그녀를 경멸하면서도 그녀를 향한 열렬한 사랑은 주체할 수 없다. 허전함과 미안함에 다시 찾은 '노라'는 이미 약혼의 몸이다.

한편 죽음을 앞둔 '크론쇼'를 자신의 집에서 지내게 하면서 실습 보조원이 되는데,

'크론쇼'도 죽고, 어느 날 거리에서 매춘을 흥정하는 듯한 '밀드레드'를 발견한 필립은 매우 놀란 나머지 자신 집의 가정부 일을 권하며 아이와 함께 집으로 데려온다.

농락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유혹하고 밀당하는 '밀드레드'와 철저한 거리를 유지하는 '필립'은 점점 자신을 따르는 아이에게 빠져든다. '밀드레드'는 밖에서는 '필립' 의 아내 행세를 하며 오만을 떨지만 음식도 못하고 낭비만 하여 '필립'의 돈을 축낸다.

그녀가 취직해서 돈을 벌기를 바라지만 정작 그녀는 변명만 하고 취직할 생각 자체가 없는 듯이 군다.

버지의 유산으로 버티던 '필립'은 경제적으로 쪼들리자 증권 브로커에게 증권을 사고 얼마간의 이득을 보고는 좀 더 큰돈을 투자해 둔다.

병원에서 자신이 돌보던 '애설니'라는 유쾌한 남자를 알게 되는데, 9자녀를 둔 그의 집에 초대를 받게 된다. 자주 그 가족들과 어울리던 '필립'은 그 가족의 선한 심성의 아름다움에 눈뜬다. 특히 '애설니'가 자랑스러워하는 큰딸 '샐리'를 보며 어리지만 성숙하고 지혜로운 매력에 자꾸 눈길이 간다.

'필립'을 사랑 없이 계속 유혹하던 '밀드레드'는 끝까지 자신에게 넘어오지 않는 그를 향해 심한 욕설을 퍼붓다가 결국엔 불구에 대한 조롱까지 입에 담았는데,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의 모든 기물을 때려 부수고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후 이미 떠나고 없었다.

보태어 투자까지 망한 '필립'은 끼니를 걱정하며, 의학 공부도 중단해야 할 정도의 생계 곤란을 겪으며 언젠가 간호사가 했던 말, '사람이 사랑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소설가들이 만들어 놓은 말이며, 결국엔 경제적인 이유로 죽는다'는 말을, 그때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맘속으로 반론했던 말을 뼈저리게 느끼며 자살도 생각해 본다.

'애설니'의 배려로 그의 집에서 기거하다가 숙식을 제공받는 상회에 취업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벗 '헤이워드'의 죽음 소식을 듣고는 죽음과 양탄자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조공이 양탄자의 정교한 무늬를 짜면서 자신의 심미감을 충족시키려는 목적 외 다른 목적을 갖지 않듯이, 사람도 그렇게 살수 있으려나,

삶도 나름의 무늬를 짜고 있다. 다양한 실가닥을 선택하여 무늬를 짬으로써 자기만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무늬도 있지만, 착잡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무늬. 이해할 수 없는 무늬도 있다.

필립은 행복을 얻고자 하는 욕망을 버림으로써 행복이란 척도로 삶을 재지 않고 다른 척도로 잴 수 있음으로써 행복을 얻게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돈을 벌어 의학 공부를 마쳐야 했던 '필립'은 그림 실력을 살려 의상 디자인을 하게 되지만 여전히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자신의 유산상속을 고대하며 늙고 병든 큰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기다리지만 큰아버지는 여전히 버티고 있다.

어느 날 '밀드레드'의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가 도착한다. 경멸감에 찢어버렸지만 결국엔 찾아간다. 신사답게..

아이는 이미 죽었다고 하고, 목에 종기를 치료해주던 '필립'은 매일 그녀를 찾아가서 몸의 상태를 체크한다. 그리고 그녀가 몸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아버지의 위독하단 소식을 듣고 내려가서 함께 지내는 중 노인이 겪는 죽음의 공포를 캐치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이 공포를 겪어야 하리라. 그런데도 잔인한 고통을 겪게 하는 신을 믿는다'라는 것에 회의를 품는다.

그러나 임종을 앞둔 큰아버지의 바람대로 보좌 사제의 성찬례후 행복하고 평온한 표정으로 죽음을 대비하는 노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사망 후 유산상속을 받고, 유품을 정리하던 중 자신의 어머니가 큰아버지에게 보냈던 편지를 보게 되는데, 자신의 대부를 부탁하던 신앙심 가득한 편지의 그 어조에 놀라워한다.

모교를 찾은 '필립'은 어린 학생들을 보면서 사람의 삶이 허망하고, 세대에서 세대로 의미 없는 순환만 되풀이된다고 느낀다.

병원으로 복귀한 '필립'은 빈민가에 부인과 왕진 근무를 나가게 된다. 그곳에서 어린 산모의 죽음을 보고, 가난한 남편들이 아내의 출산을 두려워하고 아이가 사산되기를 바라기도 하는 모습들을 목격한다. 그들의 삶에 대한 갈망 속에서 어느 날 문득 무질서 속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필립'은, 쾌락과 고통, 모든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겠다고, 왜냐면 그것이 삶의 무늬를 더욱 풍부하게 하니까.

침내 23세의 나이에 시작한 의학 공부 중 2년을 쉬고 7년 만에 졸업한 '필립'은 30의 나이가 되었다. 돈을 벌어서 스페인에 이어 동양으로의 여행을 계획하며 어촌의 병원에 임시직으로 취업한 '필립'은 괴짜라고 소문난 의사와도 잘 지내고 소박한 마을 사람들에게 신뢰도 받는다.

'필립'은 스페인의 정신과 로맨스, 색채, 역사에 매료되어 계약기간이 끝나자 동업 의사직으로 함께 계속 일하자는 의사에게 거절하지만 그는 언제든 돌아올 자리가 있다고 말한다.

휴가철마다 아내의 고향에 있는 홉농장에서 홉을 따며 돈도 벌고 휴식을 취하는 '애설니'의 제안으로 그들의 가족과 함께 동참한 '필립'은 자신을 좋아하는 어린 자녀들과 어울리며 어린아이 같았던 맏딸 '샐리'가 여전히 말은 없지만 성숙하고 지혜롭고 무엇보다 건강하며 어리석음을 분별하고 날카로운 감각을 유지한 채 자신을 잘 다스리는 여자로 성숙해 있음에, 격류와 같은 관능을 발견한다. 그녀 역시 '필립'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젖과 꿀같은 여자'라고 한다.

녀의 임신일지도 모른다는 언지에 너무도 당황하지만, 결혼을 결심하며 자신의 과거와 불구까지도 받아들이게 된다. 불구로 인해 성격이 비뚤어졌지만 불구로 인해 많은 기쁨을 가져다주는 내면 성찰의 힘을 기를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비로소 '그리피스'의 배신과 '밀드레드'의 농락 자체도 용서할 수 있었다.

'샐리'와의 결혼을 위해 어촌마을의 동업 의사직을 수락 받은 후 고백하러 가는 길, 또 '밀드레드' 같은 여인을 보고 따라가면서 아무리 용을 써도 저 가슴속 깊은 곳에서 그 사악한 여자에 대한 이상하고 필사적인 갈망이 떠나지 않음을, 사랑에서 비롯한 고통이 너무 커져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결혼이, 샐리와의 사랑이, 의무감에서 벗어나 마음이 진정 원하는 바를 따르는 것임을 느낀다. 미래를 염두에 두느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현재, 복잡하고 아름다운 무늬 보다 가장 단순한 무늬, 사람이 태어나서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죽음을 맞는 무늬가 가장 완전한 무늬임을 안다. '샐리'에게 청혼하는 길..

'서머싯 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기도 하다는 이 작품은 자전적 소설이자 성장 소설이다. 부모의 부재와 불구라는 결핍을 지닌 '필립'이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의무감에서 벗어나 '페르시아 양탄자'가 주는 메시지인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고자 방황하고 사유하는 과정이 거룩하기까지 하다.

전체적인 서술은 매우 잔잔하다. 그러나 저속한 여인 '밀드레드'를 향한 그의 미친 사랑과 미련한 격렬함이 애틋한 것은 한 사람의 생애 안에, 인생을 지탱해줌에 있어서의 유의미한 사랑, 그 사랑의 탄생과 고통이란 굴레 속에서 인간의 의미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은 아닐까?

'서머싯 몸'은 언제나 나를 전율케 한다. 이 작가의 작품들 속 인물들의 방황은 나를 자극하고 반추하게 하고 깨어나게 한다. 이런 책을 읽은 후 리뷰를 잠시 보류하면서 이런저런 감흥을 내면에서 감당하기란, 벅차고, 그 벅차오름을 즐기는 일은 독서의 기쁨이다.

인생이란 굴레에서 인생의 무늬를 어떻게 짜야 하는지에 대해 묵직한 물음을 던져 본다. 그리고 필립이 사무쳤던, 미만했던 사랑이란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사랑 참 어렵다. 어렵다. 이승철의 노래이던가? 하물며 인생이란ᆢ ㅎㅎ

 

필립은 제 불구의 발이 불러일으키는 조롱을 통해 순진한 유년을 거쳐 쓰라린 자의식을 가진 청년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의 상황은 퍽 특이하여 일반적인 경우에는 잘 들어맞는 기성의 규준도 그의 상황에는 잘 들어맞지 않았다. 따라서 혼자 힘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책을 많이 읽어 마음속에는 갖가지 생각이 가득 차 있었는데, 반쯤밖에 이해하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상상력을 더 많이 발동시켰다. 고통스럽게만 느껴지는 수줍은 성격 밑 저 안에서 무엇인가 자라고 있었다. 어렴풋이나마 필립은 그것이 자신의 개성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놀랄 때도 많았다. 어떤 일을 이유도 모르고 하고 나서 나중에 생각하게 될 때에야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82-83

친구여, 부럽네. 자네의 첫사랑이 한 편의 시였다니 기쁘기 짝없네. 그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게. 불멸의 신들이 최고의 선물을 주신 것이니. 자네가 죽는 날까지 달콤하고도 슬픈 추억이 될 것이네. 자넨 이제 그 분별없는 황홀감을 다시는 맛볼 수 없겠지. 첫사랑처럼 아름다운 사랑은 없다네. 260





사람은 자신의 의지가 자유롭다는 환상을 너무 철석같이 믿고 있어, 그래서 나도 그걸 쉽게 받아들이고 마네. 나는 내가 자유로운 행위자인 것처럼 행동하지. 하지만 어떤 행위가 이루어질 때는 우주의 모든 힘들이 저 영겁에서 함께 작용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 분명해.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행위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지. 그건 필연이니까. 선한 행위였다 해도 난 공적을 주장할 수 없고, 나쁜 행위였다 해도 난 비난을 받을 수 없네. 351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비극도 아니고 희극도 아니었다. 뭐라고 꼬집어 말하기 힘들었다. 다원적이고 다양하다고 할까. 눈물과 웃음이 있었다. 행복과 슬픔이 있었다. 지루하기도 하고, 재미나기도 하고, 무정하기도 했다. 보이는 그대로였다. 소란스럽고 격정적인가 하면 엄숙하기도 했다. 슬프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하찮기도 했다. 단순하면서 복잡했다. 기쁨이 있었고 절망이 있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여자에 대한 남자의 사랑이 있었다. 욕망이 무거운 발을 끌면서 병원의 방들을 지나갔다. 죄 있는 자와 죄 없는 자, 홀로된 아내들과 비참한 아이들에게 벌주면서. 술이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벗어날 길 없는 대가를 치르게 했다. 병원의 진찰실에서는 죽음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곳에서는 불쌍한 소녀를 공포와 수치로 몰아넣으며 생명의 탄생을 진단하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선도 악도 없었다. 사실만이 존재했다. 그것이 인생이었다. 159

지난날의 기나긴 여정을 되돌아보며 필립은 자신의 과거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성격이 비뚤어졌음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불구 때문에 많은 기쁨을 자져다 주는 내면 성찰의 힘을 기를 수 있었음도 아울러 알고 있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아름다움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며, 예술과 문학에 대한 열정, 그리고 삶의 다양한 모습들에 대한 관심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가지 그는 조롱과 멸시를 엄청나게 받아왔지만 그 조롱과 멸시는 그의 정신을 안으로 향하게 했고, 영원히 그 향기를 잃지 않을 정신의 꽃들을 피워냈다고 할 수 있다. 그 순간 그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오히려 드문 일임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이 몸에든 마음에는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다.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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