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 세계문학의 숲 17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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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로주점」의 '제르베르즈', 「테레즈 라캥」의 '테레즈'.. 이 숙명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는 여인들을 읽으면서, '에밀 졸라'의 캐릭터들에 대해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특히나 세탁부 '제르베르즈'의 삶은 너무도 비참했기에 엄청난 관심에도 불구하고 「나나」 읽기를 미루고 미룰 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밀 졸라'의 묘사나, 스토리의 힘은 위대함을 넘어 거룩하기까지 했고, 인간의 본질과 본성을 이야기하는 고전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존재이다.

책,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목로주점」의 성공에 힘입어 발표한 작품으로, 그의 소설들 중 유일하게 해피엔딩이라 한다. 「목로주점」을 읽으면서, '졸라'는 결혼과 여성의 혐오자이던가 했던 적도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자유로운 독신주의 주인공이 결국 소중한 여인과 결혼이라는 결말을 암시하면서 맺는다.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도 하는데

책은 진짜 재미있고, 경이롭고, 가독성도 좋다.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면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좋을 듯

1860년대의 프랑스 파리, 백화점을 둘러싼 여인들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주인공 '드니즈'는 '키이라 나이틀리'를 떠올렸는데..

암튼 '졸라'도 불행한 자신의 캐릭터들을 제치고 '드니즈'를 자신의 딸이름으로 지었다한다.

로뉴 지방에서 살다가 부모를 잃고, 큰아버지를 찾아 검은 상복을 입고 무작정 파리로 상경한 삼 남매. 20세의 순박한 시골처녀 '드니즈'는 고향에서 알아주는 신상품점에서 2년간 일한 경력이 있다. 그녀의 남동생 16세의 '장'은 잘생겼지만 애정행각으로 인해 더 이상 고향에 살 수 없는 원인 제공자이다. 그리고 막내 남동생 '페퍼'는 귀여운 다섯 살이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란, 건물과 쇼윈도, 진열된 상품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거대함과 화려함..

그 건물의 바로 앞에서, 옹색한 나사 상점을 운영하는 큰아버지는 그들의 방문을 반기지 않는다.

큰아버지를 비롯한 백화점 주변의 상인들은 이어져 내려온 정직하고 순박한 방식으로 전통적인 상업 방식으로 장사했던 사람들로, 백화점의 등장으로 파산 위험에 처해있었다.

들은 백화점을 괴물로 보고 있고, 혐오하고 있었다.

주변의 건물들을 사들여서 백화점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백화점의 사장, '무레'

 

그는 아내의 사고사로 백화점을 물려 받은뒤, 재혼은 하지 않고 귀족 부인들, 판매원들과 하루하루를 즐기기만 한다.

그런 그의 눈에 기성복 판매원이 된 드니즈가 들어온다.

그러나 강직한 드니즈는 그의 유혹을 거절하고 자신을 정복할 여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면서 큰소리쳐대던 무레는

괴로워하면서 다른 여인들과의 관계를 끊고 잠을 자지도 못하다가 결국 드니즈에게 굴복하고 만다.

 

1860년대에 이런 백화점이 있었다니, 1800년대에 이런 소설을 썼다니..

사시사철 바겐세일의 덫으로 여성을 유혹하고, 그 유혹을 여성의 육체 속에 새로운 욕망으로 주입하려던 상업의 기술.

백화점의 메커니즘, 소비의 메커니즘, 그리고 욕망의 덫..

늘날 백화점을 드나드는 여인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한 '졸라'의 위대함에 다시 한번 놀란다.

싼 가격으로 고객을 유혹하고 상품에 정가 표시로 믿음을 주고 그 모든 것이 여성이 필연적으로 굴복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유혹이 된다.

처음엔 알뜰한 주부로서 구매를 시작하지만 점차 허영심이 발동하고 유혹에 홀딱 넘어가게 되는..

백화점의 엄청난 물량 판매를 통해 호화스러움을 대중화시키고 무시무시한 세력으로 인한 소비의 촉진은 결국 가정을 황폐화 시키지만

날로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하는 유행의 광기에 여성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게끔 부추길 줄 아는 남자 '무레'. 그는 여자의 마음을 얻을 줄 알고,

그의 백화점은 여성을 소진시키는 시스템을 충분히 갖춘다.

1860년대 귀족이 아닌 여성들은 백화점의 판매원이 되어

부유한 고객을 상대하면서 우아한 몸짓이 몸에 배고, 노동자와 부르주아 계층 사이를 오가는 모호한 부류에 속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시대에 이 책의 내용처럼 백화점 경영자가 일개 판매원과 결혼한 경우도 실제로 종종 있었다고 한다.

 

 

 

물건을 밑지고 판다는 사실은 여성의 뿌리 깊은 냉담함마저도 흔들리게 하는 최후의 결정타였다. 상인에게서 물건을 훔치는 것 같은 느낌은 여성이 쇼핑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배가시켜주는 것이었다. 무레는 그녀들이 그런 바겐세일의 유혹을 결코 뿌리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 P140

무레의 궁극적이고 유일한 야심은 여성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그는 여성이 자신이 이룩한 백화점의 왕국에서 여왕으로 군림할 수 있기를 바랐다. 여성을 위한 신전을 지어 바친 다음, 그곳에서 그녀를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그의 전략이었다. 정중하고 세심한 배려로 여성을 취하게 한 다음, 그녀의 욕구를 부추겨 달아오른 욕망을 충족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 P9

-"그럴지도! 난 나 자신이 무언가에 현혹되기를 바란다네. ...... 어차피 언젠가 한 번은 죽어야 하는 거라면, 지루해서 죽는 것보다는 무언가에 미쳐서 죽는 게 더 낫지 않겠나."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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