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0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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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녁 모임을 마친, 늦은 밤, 주인을 비롯한 세 명의 남자가 모여 첫사랑 얘기를 하기로 한다. 한 남자는 자신은 두 번째 사랑부터 시작했으므로 첫사랑이 없었다 하고, 집주인은 아내와의 사랑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리고 한 남자 마흔 살 정도가 되어 보이는 '블라지미르 페트로 비치'는 "내 첫사랑은 정말로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야기하기엔 말재주가 없노라고, 그래서 싱겁고 짤막한 얘기가 되거나 길게 늘어지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면서 원한다면 글로 써보겠노라고 한다. 그리고 '블라지미르'의 독특한 첫사랑 이야기가 시작된다.

'블라지미르'는 1833년을 사는 16세의 소년이다. 모스크바에 살던 부모와 함께 대입 준비를 위해 별장으로 이사를 한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10세 연상으로, 흥분과 질투와 화내는 일이 잦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아버지는 돈 때문에 엄마와 결혼을 했다고 하는데, 어머니에겐 엄격하고 냉정하고 무관심하지만, 세련되게 침착하고 자존심 강한 모습이, 그에겐 언제나 젊고 멋져 보인다.

이사 간 마을의 빈집에 '자세키나' 공작부인도 이사를 오게 되는데, 공작부인이라 하지만, 소송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저속한 여인이다. 그런 그녀에게 21세의 딸 '지나이다'가 있는데, 그 아름다움과 신비한 분위기가 '블라지미르'를 사로잡고 만다.

그 집에서 '지나이다'는 늘 청년들에게 에워싸여있다. 그녀에게 홀딱 반해 있는 이 독신자들은, 그녀를 숭배하고 당직을 하러 오듯이 드나들며 다양한 벌금 놀이를 하면서 그녀의 손에 키스하는 순간만을 고대한다.

위와 격리된 채 엄격한 교육을 받아온, 단정한 귀족 집안 출신의 '블라지미르'는 그 집에 드나들면서 난폭할 만큼 들뜬 그 분위기와 낯선 사람들과의 교제로 매우 흥분되어있다.

'지나이다'는 자신을 둘러싼 청년들과 다양한 벌금 놀이를 고안해 어울리기를 즐기면서도 "나는 바람둥이에요. 애정 같은 건 없어요. 난 배우의 기질을 타고났어요. 나는 나를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라며 조롱을 한다.

그 청년의 무리 중 한 사람인 의사 '루쉰'은 '블라디미르'에게 이런 곳의 분위기는 아직 어린 당신에겐 해롭다며, 공부나 더 하라고 경고한다.

자신을 향한 그녀의 감정 변화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풋사랑을 키워가던 '블라디미르'는 어느 날 놀이에서 그녀가 사랑에 빠졌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녀의 남자가 누구일지 궁금해한다.

주위를 배회하던 중, 높은 곳에 올라있는 그를 향해 지나가던 '지나이다'는 장난삼아, 나를 사랑한다면 그곳에서 뛰어내려보라고 한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과감히 뛰어내렸던 '블라디미르'는 기절을 하고, 놀란 그녀가 후회를 하며 키스를 퍼붓는데, 그 뜻하지 않은 행복감을 소중히 간직하고자 하던, '블라디미르'는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 실망을 한다.

아버지와 함께 '지나이다'가 말 타는 장면을 우연찮게 목격한 '블라디미르'는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하지만, 그녀는 여러 날을 앓고, 또 '블라디미르'를 외면하다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하지만 전과는 다른 사랑, 친구가 되어달라고, 아니 시동이 되어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고 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더 차분해지고, 당당해지고, 세련되어서, '블라디미르'의 가슴엔 사랑의 불길이 더 타오른다.

느 날 '지나이다'는 청년들과의 놀이에서, 내가 사랑하고, 나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암시를 내보인다.

'블라디미르'의 어머니는 '지나이다'의 어머니도 싫어하고, '지나이다' 역시 바람둥이라고 하는데, 그 바람둥이가 그의 우상이고 그의 신이 된다. 그래서 그녀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질투에 불타 살인을 할 각오가 되어 있는 '오셀로'의 심정으로 정원 염탐을 나갔지만 실패를 한다.

외출했다가 돌아온 어느 날 냉랭한 분위기에, 부모님의 심각한 싸움 끝, 하인의 말을 통해, '지나이다'의 연인이 자신의 아버지였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왜 자신의 장래를 던지고, 유부남인 아버지를 사랑한 걸까? 이사를 와서도 지나간 일을 쉽게 잊지도 못하고 공부도 할 수 없던 그의 눈에 자신의 연적이었던 아버지는 더 커 보이기만 한다.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 말을 타고 나선 길, 아버지는 자신의 말을 맡기고 사라지는데,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아버지 가 간 쪽을 향해 걷다가 창문턱에서 누군가와 실갱이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창문 안쪽에 모습을 내민 사람이 '지나이다'였고, 그녀가 아버지의 말채찍에 한대 얻어맞는 모습도 목격을 한다. 낯선 두 사람의 모습에서 이것이 사랑인가 보다, 사랑에 빠지면 그럴수도 있는가 보다,.

달 후 '블라디미'르는 대학에 입학을 하고,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사망을 한다. 4년 후 극장에서 '돌스카야' 부인이 된 '지나이다'의 소식을 듣고, 그녀가 묵고 있는 호텔로 가보려 하지만 사정들이 생겨 미루다가 그녀가 출산 중에 사망했음을 알게 된다.

그 후 가난한 노파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보면서 평생 기쁨도, 행복도 모르고 고통스러운 투쟁 속에서 일생을 보낸 그녀에게 죽음은 차라리 자유와 편안함이 아닌지,

비로소 '지나이다'의 최후를 떠올리면서 죽음에 대해 경외감을 지닌다.

젊고 뜨겁고 빛나던 생명이었던 '지나이다'의 죽음, 그 축축하고 비좁은 어둠 속은 살아있는 그에게서도 그다지 멀지 않다고,

청춘은 아무것도 걸릴 것이 없으며, 청춘은 우주의 온갖 보물을 차지한 자이고, 우수도, 슬픔조차도 위로가 되고 잘 어울리는 시절이라고, 한때 좋았던 시절들도 흘러가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능성에서 무슨 일이든 다 해낼 권리가 있다고,

랑은 그런 것이다. '블라디미르'나, 그의 아버지나, '지나이다' 처럼, 무모한 것 같지만,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열정, 그것도 다 한 때, 이내 흩어지고, 흘러가버릴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자고, '블라디미르'는 한때 그런 사랑이 있었음을, 사랑으로 인한 고통 속의 청춘이 있었음을 소중하게 간직한다.

사람들은 첫사랑의 미망과 고통속에서 성장한다. 비록 아프고 쓰라렸지만, 첫사랑의 늪에서 헤매던 그 시간, 그 빛나던 청춘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것.

간직해둔 첫사랑은 어쩜 그 대상보다도 그 시절은 아닐런지?

내가 그리워 하던 것이 그 사람일까? 그 시절일까?

지난 한 달 동안에 나는 아주 늙어버렸다. 그리고 온갖 흥분과 고통으로 얼룩진 나의 사랑도, 이제야 겨우 가늠할 수 있고,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뭔가 분별해 보려고 괜히 애쓰는, 낯설고 아름답지만 무서운 얼굴과도 같이 날 놀라게 한 미지의 다른 그 무언가에 비하면 어쩐지 아주 작고 유치하고 초라한 것처럼 여겨졌다
- P116

‘내 아들아, 여자의 사랑을 두려워해라. 그 행복, 그 독을 두려워해라...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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