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 가죽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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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귀가죽은 발자크에게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라 한다. 19세기 전반 대혁명과 7월 혁명을 겪고 급격하게 변하는 프랑스 사회의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했다는 평이 있다. 철학소설이라는 부제가 있었다 한다.

총 세 편으로 구성되는 이 이야기는 첫 편은 '부적'이라는 타이틀, 2편은 '무정한 여인', 3편은 '죽음의 고뇌'이다.

파리의 팔레루아얄이라는 도박장에 나타나 금화 한 닢을 던지던 젊은이는 25세가량의 순진무결한 매혹을 간직한 채 빛을 잃고 길을 헤매는 천사 같은 모습이다. 그에게 마지막 전 재산으로 보여지는 금화를 이탈리아 인이 따게 되고, 그는 미련없이 거리로 나서 헤맨다. 자살할 장소와 시간을 물색하러..

동전 몇 닢까지 걸인들에게 던져주고는 물에 빠져 죽자 하니 소란이 염려스러워 상점들을 기웃거리다 골동품 가게에 들어선다. 그곳에 전시된 물건들의 역사와 가치를 가늠하면서 수백 만금을 탕진한 난봉꾼들의 변덕이 인간 광기의 전시실 안에 펼쳐져 있다고 느낀다. 고대 로마시대의 상아 의자에서 깊은 몽상에 빠져들었는데 묘한 늙은이가 나타나 대화를 하게 된다.

신이 죽으려는 이유는 통속적인 자살 동기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로 표현이 어려운 고통을 겪어서라고 고백을 하는데, 라파엘(주인공 이름과 같다)이 그린 예수의 초상화 맞은편 나귀 가죽을 가리키며 102세의 백만장자 그 늙은이의 제안으로 치명적인 계약을 하게 된다. 바로 젊은이의 목숨을 대가로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나귀 가죽이 부적인 것이다.

골동품 상점을 나오는데 벗들이 그를 찾았노라고 다가와서는 '타유페르'의 살롱으로 데려간다. 그곳은 젊은 프랑스인으로 대변되는 젊은 예술가들과 무희들, 창녀들로 시끌벅적한 곳이다. 나귀 가죽을 받아 나온 그 젊은이는 '라파엘'이고, 그는 그의 벗 '에밀'에게 자살하려던 이유를 고백한다.

'라파엘'은 아버지의 엄한 훈육 밑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정치인이 되어 가문을 일으켜달라는 강요로 성장해서 매사 두려움에 떨고 오랫동안 젊은이의 원초적 순진함에 벗어나지 못했다. 어머니의 상속재산을 매각하여 빛 잔치를 치른 아버지가 사망하자 22세의 그는 파산하게 된다.

스스로 과도한 야망의 희생물이라고 여긴 그는 사랑을 찾아 여자들을 갈구했으나 매번 무시당했고, 사회에 복수하려고 지식 세계의 지존으로 군림하여 세상 모든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했으나 여자가 먼저 소심한 자신에게 고백해주고 자신을 측은히 여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3년 동안 작품에 몰두하고 최소한의 생활비로 가난을 견디며 여자 대신 위대한 사상을 붙들고 살려고 '루소'가 살던 '생캉탱' 여관의 남루한 방을 빌린다. 그 집에는 여관 주인 '고댕'부인과, 그녀의 딸 '폴린'이 있다. '폴린'은 아직 소녀이지만 매우 아름답고 현명하여 그로부터 음악과 데생, 문법 수업을 받는다. 매력적인 그녀에게 마음이 가지만, 가난한 상태에서는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라파엘'은 '폴린'을 대리석처럼 대하려고 노력한다.

편 벗 '라스티냐크'의 주선으로 만난 '페도라'라는 부유하고 우아한 여인에게 반하여, 그녀 주위를 맴돌며 이목을 끌고 접근하여 화려한 상류 사교계에 진출하지만 그녀를 향한 속절없는 복종의 끝은 이용만 당하다가 그녀에게 채인다. 도도하고 변덕스럽고 허영심 가득한 그녀를 잊지 못해 다시 사생결단의 프로포즈를 하지만 거부당한다.

도박에서 돈을 딴 '라스티냐크'의 죽음 대신 쾌락에 빠지자는 유혹에 넘어가 방탕의 삶에 투신하고, 한량이 되나 결국은 빚에 쪼들린다. 쾌락의 노예가 되어 방탕을 일삼다가 죽음을 결심했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던 '에밀'은 어느새 잠이 들었고, 술을 많이 마신 그들은 나귀 가죽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때 공증인이 나타난다.

'라파엘'이 외삼촌의 막대한 유산의 상속자임을 알리고, 후작의 작위를 받게 된다.

그리고 나귀 가죽의 테두리가 줄어들었음을 확인한다.

값비싼 인테리어를 한 저택에 사는 '라파엘'은 하인 '조나타'에게 자신의 모든 권한을 맡기고 드문 불출하며 지낸다. '조나타'에 의하면 자신의 주인 후작은 '융화 불가능한' 삶을 사노라고.. 아기처럼 돌보아 달라고, 영혼을 맡기며, 자신의 욕구를 관리해달라는 '라파엘'은 식물처럼 욕망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탈리아 극장에서 여전히 거만한 '페도라'에게 적의의 시선을 보내던 중 '생캉탱' 하숙집의 가난햇던 '폴린', 돈을 많이 벌어돌아온 아버지 덕에 부자가 되어, 한결 아름답고 우아하게 성숙한 '폴린'을 만나는데, 극장 안 모든 사람들, '페도라'의 시선까지도 압도할 만큼 눈부신 미모의 그녀를 보며 아무런 위험 부담 없이 불같이 타오르는 자신의 욕망에 전념할 수 있는 행복한 날들을 꿈꾸게 된다.

가난한 시절 '폴린'이 밤새 그린 그림을 팔아 '라파엘'의 우유와 기름과 난방비를 지원한 사실을 고백받으며 둘은 행복한 결혼을 하고자 한다. '라파엘'은 나귀 가죽을 연못에 던져버리는데, 나중에 하인이 건져왔지만, 물도 묻지 않고 줄어들기만 했다.

'폴린'을 사랑하면 할수록 욕망이 되고, 가죽의 둘레는 줄어들자, 불안한 '라파엘'에게 폐병의 증세가 찾아온다. '폴린'의 걱정을 뒤로하고, 과학자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을 하는데, 기계 학자에게 가죽을 늘려달라 하지만, 프레스로 누르다가 기계가 박살이 나고, 꿈쩍도 하지 않는다. 물속에 처넣어도 여전히 차갑고 유연하고, 화학자를 찾아가 약품 처리를 해보지만 반응이 없고 자르려 해도 어떤 충격에도 잘라지지 않는다. 어떤 인간의 힘으로도 자신의 생명이 연장될 수 없음을 깨달은 '라파엘'은 네 명의 유능한 의사에게 진찰을 요구하지만 편집증 환자 취급을 하며 온천 휴양을 권한다.

온천에서 '라파엘'은 자신의 기침이 전염병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며 쫓아내려는 시도를 보게 된다. 자신을 내쫓으려는 여러 함정들을 알게 되고 결국엔 그 함정으로 인해 결투를 신청하고, 상대를 죽여 승리하지만 가죽의 둘레는 또 줄어든다.

다른 온천장으로 옮겨갔으나 거기서도 자신의 기침으로 인해 배척당하자 멀리 떨어진 피난처를 찾아 자연의 생명력과 위안을 즐기고자 싸돌아다니다가 병만 더 깊어지고 다시 파리로 오게 된다.

아편으로 하루하루 버티다가 돌아온 '폴린'을 보고 여전히 아름답고 사랑스런 그녀를 욕망하게 될까 두려워하면서 그녀에게 얼마 남지 않은 나귀 가죽을 보여주며 자신의 욕망을 이루어주는 부적임을, 아울러 자신의 목숨의 지표임을 이야기한다.

믿을 수 없어하며 '라파엘'의 정신 상태를 의심해 공포에 떨고 있는 '폴린'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제어할 수 없었던 '라파엘'은 그녀의 품에 뛰어들어 죽게 된다.

망을 이루는 대신, 줄어드는 목숨이라.. 이런 불나방 같은 삶이 결국엔 우리 모습이 아닌가 한다. 미래를 위해 지금을 축내는 삶, YOLO 신드롬이, 소확행이 위로가 되기는 하는 건지?

한 사람을 판단하려면 적어도 그가 품은 생각과 그가 겪은 불행과 그가 가진 심상의 비밀 속에는 들어가 봐야 하지 않는가. 그의 삶에 대하여 오로지 물리적인 사건들만 알려고 하는 것은 연대기, 곧 바보들의 역사를 작성하는 짓이 아닌가!
- P154

찬란한 미래를 예감하는 사람은 결백한 자가 의연하게 처형장을 향해 걸어가듯 그렇게 가난한 자기 삶을 견딘다네
- P161

모든 불운은 서로 자매간이라서 같은 언어, 같은 너그러움을 가지고 있지
- P170

사람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감정이 바로 동정심이다. 특히 동정을 받아 마땅한 사람인 경우가 그렇다. 증오감은 일종의 강장제로서 활력을 북돋우고 복수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동정심은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고 약점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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