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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82
에라스무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8월
평점 :
고전 중의 고전이 아닐까? 1511년이면 우리 조선의 중종 시대쯤 되는데, 그 시절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에라스 무스'는 세상과 군주와 종교지도자를 우롱하는 이런 책을 썼다. 성직자의 사생아로 태어나 수도원에서 양육된 그는 사제가 되었지만 전 유럽을 돌며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대표적인 성과물인 이 책을 발간하는데, 원래는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의 집에 머물며 그에게 쓴 편지글이었다고 한다.
막연하게 신을 조롱하는 것, 종교 자체를 비판한 것쯤으로 여겨왔던 나의 무지는
신에 대한 비판이 아닌, 가톨릭 교회와 성직자들, 군주를 조롱하는 이 책을 읽으며 500년 후인 지금의 정치, 종교, 그리고 국가에 대한 시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 역시 고전의 힘, 위대함을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묘사는 장난기 어리고 재치가 넘치나, 성서와 신화들, 철학자들의 사상들에 대해 넘나듦에 있어 사전 지식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에라스 무스'가 그간 지인들과 나누던, 혹은 서신으로 주고받고, 격언 집에도 쓰였던 자신의 생각들에 대한 반응에 힘입어 이 책을 발간하면서 미리 걱정하는 내용과, 또 책의 발간에 따른 교황청의 금서 조치와 사람들의 비판에 대해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으므로 교화 또는 훈계일 뿐이고, 글의 가벼움과 장난스러움을 보아서 남을 괴롭히기보다는 오직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일종의 우스개 소리쯤으로 여겨달라는 그런 당부들이 서한문으로 서두와 부록에 첨부되어 있다.
삶의 목적이 유쾌함의 추구이며, 인간은 원래 어리석은 존재임을, 그리하여 바보, 멍청이란 호칭조차 아름답고 행복한 존재를 칭함이라고 여기는 그는 학식을 갖춘 재치 넘치는 풍자로, 자화자찬의 연설을 한다. 그리고 이 연설문을 '토머스 모어'에 헌정함을 밝혀둔다.
자기 자신, '우신'은 '부유'라는 신인 아버지와 '청춘'이라는 신인 어머니의 혼외 결합으로 탄생해서, 행복한 섬에 살고 있는데, 태어나자마자 울지 않고 활짝 웃었노라며 요정들의 젖을 먹었고, '자아도취', '아부', '망각', '태만', '환락', '경솔'이란 이름의 계집종들과 '인사불성', '광란 축제'라는 이름의 머슴들 도움을 받으며 자라났다고 밝힌다.
자신, 즉 '우신'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인간들의 일을 나열하며 그 시대의 사회 전반에 걸친 여러 상황들의 적나라한 풍자와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오히려 어리석음은 칭송하고 현자들은 비난을 하며, 신을 비판하기 보다 신의 뜻을 왜곡하고 허세에 찌든 성직자들과 군주들을 비판한다.
이 책이 종교 개혁에 영향을 미쳤다고는 하나, 정작 '에라스 무스'는 종교개혁에의 참여를 거부했다고, 자신은 교회를 비판할 뿐, 기존 체제에 반기를 들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마지막 연설에서 「같이 마시고 다 기억하는 놈을 나는 증오한다」는 말을 바꿔 「다 기억하는 청중을 나는 증오한다」고.. 그러므로 청중들이여 자신의 연설을 기억하지 말고, 박수치고, 행복하고, 붓고, 마시라고 한다. 그 책을 공들여 읽던 나를 비롯 연설을 듣던 청중들도, 그리고 자신까지도 그렇게 조롱하는 듯하다. 한마디로 농담이었으니 너무 심각하지 말자는 것인데, 자신은 가볍다고 했으나 이 우스갯소리가 그 시대나 지금이나 그리 가 벼울리는 없었을 테고... 절대 농담일 수도 없는...
만약 누군가 하늘 높은 전망대에서 인생을 내려다본다고 한다면----- 아무튼 인간 삶이 얼마나 많은 재앙들로 피폐하고 가련한지, 출생은 얼마나 불결한지, 양육은 얼마나 힘겨운지, 소년은 얼마나 많은 불의에 노출되어 있는지, 청년은 얼마나 많은 노고를 겪어야 하는지, 노년은 얼마나 고단하며, 죽음은 얼마나 엄연한 운명인지, 하여 인생을 살아가는 내내 얼마나 많은 질병들이 떼를 지어 덤벼들며, 얼마나 많은 불운들이 위협하며, 얼마나 많은 재난들이 닥치는지를 알게 될 것이며, 경험하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지독하게 쓰디쓴 시련뿐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 - P75
인간보다 불행한 동물은 없노라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유인즉 여타의 동물들은 자연이 부여한 한계에 만족하고 있는 반면, 인간만은 유별나게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려고 애쓰기 때문이랍니다 - P85
사람들은 거짓에 속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 합니다만, 실은 거짓에 속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불행입니다. 인간 행복이 사태의 진상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엄청난 착각입니다. 행복은 허상에 달렸습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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