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 산들의 꼭대기
츠쯔졘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편의 대하소설을 읽은 것처럼, 중국판 토지 같기도 한 엄청난 서사를 460페이지의 분량으로 마무리함에 아쉬움이 남는다. 중국 북방 소수민족 세 가계와 그들과 가족이 되거나 이웃이 된 이들의 삼대에 걸친 이야기가 2차대전부터 인터넷이 들어온 시대까지 삶과 죽음, 사랑과 배신, 오해 그리고 쑹산의 거대한 공간 속에서 숨 막히게 펼쳐진다.
 
낯선 이름, 얽히고설킨 많은 등장인물들의 관계도를 책의 서문에 도표로 실어 놨다. 책을 읽으면서 이 도표를 수시로 봐야 했다. 그리고 낯설지만 익숙할 것도 같은 풍속과 룽잔진의 자연, 엄청난 추위와 깊음에 매료되면서 참으로 재미나고 인간적이며 스케일이 큰 작가, 작품을 환영했다.
  
치짜는 행방불명된 일본인 어머니와 탈영병 출신 신카이류라는 석탄 캐는 아버지를 둔 탓에 어려서부터 놀림을 많이 받고 피비린내에 절어 사는 도축업자가 되어서는 아버지를 증오하며 자신의 유전자를 더는 퍼뜨리지 않겠노라고 결혼 조건을 내세웠다. 이 소문을 들은 왕 슈만이라는 못생기고 나이도 6살이나 더 먹은 여인이 불임 수술을 하고는 그에게 왔다. 이들은 신신라이라는 사내아이를 입양하게 되는데 벌써 두 번이나 감옥살이를 하게 된 싹수 노란 아이로 성장했다. 신신라이가 아버지의 참마도로 어머니 왕슈만을 살해하고는 이웃집 안쉐얼을 강간하고 잠적해버린다.
 
안핑은 사법경찰관으로 사형집행자이다. 아버지 안위순은 전쟁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며 마을에서 탈영범 신카이류와 여러모로 대립각을 이룬다. 안핑의 아내는 남편이 하는 일을 알게 되며 이혼을 요구한다. 그리고는 난쟁이 딸을 낳고 떠난다. 난쟁이 딸 안쉐얼은 비석을 새기는 사람으로 사람들의 죽음을 예언하여 마을에서 신선으로 떠받들어진다. 강간 사건 이후 안쉐얼은 충격으로 인해 드문 불출하는 동안 키가 자라고 배도 불러온다. 안핑에게는 안타이라는 동생이 있고 그에게 두아들이 있다. 그중 안다잉은 장남으로 할아버지 안위순의 영향을 받아 군인이 된다.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 둘 있고, 그중 한 여인으로 인해 죽게 되는데 죽음이 미화되면서 영웅이 된다.
  
마을의 진장 탕한청은 못생긴 여자 천메이전이라는 뒷배경이 든든한 여인과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게 되어 딸과 아들을 얻는다. 그들의 딸 탕메이는 의사가 되어 마을로 돌아와 보건소에서 일하게 된다. 그녀 곁에는 바보가 된 대학 친구 천위안이 있고 탕메이가 보호자를 자처한다. 천메이전은 추녀로, 남편의 사랑을 받으려 거듭된 성형 끝에 중독자가 되지만 거물급의 위치에 있는 천진구라는 오빠 덕에 탕한청과 함께 룽산의 모든 통치권을 거머쥐게 된다. 천진구는 한때 지식 청년과 로맨스가 있었다.
 
소설속 사람들은 끊임없이 추위를 견디고 가난을 견디면서 사랑하고 배신한다. 그리고 오해하면서 소문을 만들고 살아간다. 신신라이의 출생과 안쉐얼의 출산과 탕메이의 사랑과 증오가 반전을 남긴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 신치짜, 안핑의 사랑과 이별 또 그들의 부모 신카이류, 안위순, 슈냥의 사랑과 치열한 삶을 한 축으로 사형제도가 총격에서 공포를 제거한 주사로 바뀌고, 관을 미리 사놓고 비석을 세우려는 매장문화가 화장문화로 바뀌게 되는 사회적 변화가 전통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많은 두려움과 혼란을 야기함이 심리적 배경이 된다.
  
잔진이 채광이 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탕한청은 토지사라는 사당을 세워 신성시하고자 하는데 이곳을 관리하는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단샤와 또 안쉐얼의 방문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이 의아하고 아쉽기도 했으나 책을 다 덮은 후 의외의 예감과 상상으로 기분 좋은 숙제를 주는구나~ 했다.
 
굉장히 재미있고 스케일이 큰 중국 쑹산지구의 룽잔진을 배경으로 한 소수 민족의 삶과 사랑 이야기. 뭇 산들의 꼭대기란 제목이 끌렸던, 그런 거대하고 무수한 산들과 영하 삼십 도의 추위. 그리고 안쉐얼이 좋아하는 서리꽃에 대해 그려보면서 무더위를 견딘다.

봄여름이 되면, 룽산은 그야말로 거대한 향수병을 쏟은 것 같았다. 잎갈나무, 구주소나무, 가문비나무, 자작나무 등에서 온갖 들풀과 들꽃에 이르기까지 향기를 내뿜지 않는 것이 없었다. 사람의 습성과 마찬가지로 식물의 향기도 제각각 달라 진한 것도, 연한 것도, 단것도 쓴 것도 있었다.
- P71

이시기에 룽산 산꼭대기에 서서 뭇 산들에 눈을 돌려 온통 물든 숲들을 바라보면 산속 모든 나무가 하룻밤 사이에 꽃나무가 되었다고 착각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서리가 만들어낸 찬란함은 아름다운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그 머리와 꼬리를 얼마 흔들지 못하듯 오래가지 못했다. 세찬 가을바람에 결국에는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마지막에는 벌거벗은 잔가지만 남아 파란 하늘을 마주할 터였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나무의 찬란함은 나무 아래로 옮겨 갔다. 숲 바닥은 한없이 펼쳐진 푹신푹신한 꽃 카펫이 되겠지만 이 꽃 카펫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눈이 내리면 그것에 바로 묻힐 터였다
- P454

세상에 거위 털 같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누가 또 누구의 외침을 들을 수 있겠는가!
- P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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