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 구운몽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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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청춘의 독서'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책이다. 1960년대 발표된 소설이다.

1950년 전쟁이 일어나기 이태 전, 철학과를 다니는 대학생 '이명준'은 북으로 간 아버지와 사망한 어머니로 인해, 아버지의 친구인 은행가의 집에 머물며 자유분방한 그 집의 아들 '태식'과 딸 '영미'를 통해 '윤애'라는 국문 학도와 교제하게 된다. 한창 이성과 정치에 눈뜨는 나이, 철학적인 사유로 그 둘은 한없이 헤아리며, 살피며, 관심을 둔다.

'명준'은 남한에서 북으로 간 아버지의 사상문제로 경찰서에 끌려가 몇 차례 폭행을 당하게된다. 그리고는 인천에 사는 '윤애'의 집에 머물지만, 순결을 지키려는 '윤애'와의 풋사랑으로 인해 이래저래 상심을 하고는 결국 북으로 간다. 재혼한 아버지와의 관계는 불편하지만, 노동 신문 편집 일을 주선해준 덕분에 그럭저럭 지내다가 발레리나 '은혜'를 만나고 사랑을 나누게 된다.

'명준'은 '윤애'와 '은혜'의 사랑을 비교하듯이 남과 북의 정치를 비교한다. '광장'이라는 메타포가 주를 이루는데, 정치는 인간의 광장 가운데 가장 거친 곳으로, 남한의 광장은 부정부패와 쓰레기만 있고, 북한의 광장에는 인민의 목소리와 투쟁이 없다고 부르짖으며 자신의 광장을 찾을 수 없었던 '명준'은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할 수 없었다. 전쟁과 함께 그는 남으로 온다.

그곳에서 간호사가 되어 그를 찾은 '은혜'와 자신이 찾은 '동굴'이란 공간에서 숨 막히는 사랑으로 불안한 청춘과 이데올로기와, 전쟁과 정치를 경멸함을 대신한다. 그리고는 '은혜'와 뱃속의 아이를 잃고, 거제도에 포로로 있다가 전쟁이 끝난 후 남과 북을 모두 버리고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를 탄 '명준'은 계속 그를 지켜보던 불안한 눈빛을 의식하며 그 눈빛의 정체가 갈매기였던 것을 알게 된 이후 그 갈매기를 좇아 바다로 투신한다.

떤 이데올로기에도 관심이 없었던 '명준'은 단지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 또래에 맞게 정치를 떠들고 여자를 기웃거리던 철학과 학생이었을 뿐인 그가 그런 시대를 살수 밖에 없었던 것이 비극이다.

지금은 사장된 고어를 많이 사용하고 투박하고 거친 묘사와 장면의 과감한 전환이 몰입을 요하는 소설로서 초반부에 혼란을 느꼈으나 엄청난 필력과 지적인 자극을 주기에 충분한 독서였다. 소설의 캐릭터 중에 개인의 삶을 살지 못하고 시대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중 '이명준'은 작가 자신이었고, 그시대 젊은 지식인 모두를 대변한다 하겠다.

이 작품은 독일어로도 번역이 되고, 작가가 아직 생존해 있는데 여러 번 원고를 거듭 고쳤다는 말도 있다.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읽고서 이 책을 발견한 것이 기쁘고 행복하나, 외국 작가의 글을 우리 언어로 번역하듯이, 현대의 언어에 맞게 과감한 번역(?)이 필요하지 않나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나름 독특하고, 우리 민족의 구성원이라서 겪었어야 할 그 청춘의 방황과 상징이 꽤나 인상 깊었기에 ..

책장을 대하면 흐뭇하고 든든한 것 같았다. 알몸뚱이를 감싸는 갑옷이나 혹은 살갗 같기도 하다. 한 권씩 늘어갈 적마다 몸속에 깨끗한 세포가 한 방씩 늘어가는 듯한. 자기와 책 사이에 걸친 살아 있는 어울림을 몸으로 느낀 무렵이었다. 두툼한 책 마지막 장을 닫은 다음, 창문을 열고 내다보는 눈에는, 깊은 밤 괴괴한 풍격이. 무언가 느긋한 이김의 빛깔로 색칠이 되곤 했다.
- P48

여자란 자기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짐승 같다. 남들이 사랑하니까 사랑한다는 식의 허영을 그녀들의 지나가는 조잘거림에서 깨닫는 수가 적지 않다. 그녀들에겐 사랑도 치장일까. 명준의 이런 여성관은 오랫동안 그녀들의 낯빛과 말이며 움직임. 다음에 소설의 여주인공들을 뜯어본 다음에 얻어진. 찢어지게 가난한 열매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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