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
귄터 그라스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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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권터 그라스'는 과격하고 급진적인 작가이다. 이 책 또한 과격하다. 강렬한 언어와 암시적인 이미지, 반어와 역설과 풍자로 인해 독자는 자주 함정에 빠지고 다시 읽기를 반복해야 한다.

시점도 일인칭 시점에서, 전지적 시점으로 넘나든다. 심지어 한 문장 안에서도 나로 시작되었다가, 오스카로 시작되기도 한다. 그리고 중간에 간호사 '브루노'가 또 친구 '비틀라르'가 서술자가 되기도 한다.

너무도 상세한 묘사 속, 비약 수준의 비유와 가정, 예측이 난무하는 사건 전개 방식에서 상징을 읽어내기란, 많은 역사적 지리적 사전 지식을 요하기도 한다.

 재 정신병원과 과거 사건 속으로의 일목요연하지 않은 전개에 적응하다 보면 1권이 지난다. 그래야 2권을 무난하게 읽어갈 수 있다. 무심하게 사건의 전개를 펴나가다가 다시 돌이켜 강조해서 부연 설명을 하는 전개가 나중에는 매력적이게 되고, 이런 장치를 예측까지 하게 되는 경지에 오르게 되는 독서 ..

미친 전쟁을 겪는 과정과 전쟁을 겪은 이후 혼돈 이상의 것들 가운데 있었던 지극히 정치적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속 자신의 테마를 북으로 두드리는 남자 '오스카'..그리고 상처 받은 영혼들, 정상이 아닌 사람들, 차라리 불구의 '오스카'가 그나마 제일 정상적인건가 묻게된다.

신도 원망해보고 기이한 사랑에 집착해 보기도 하는 사람들..

할머니의 감자 빛깔 네겹 치마와 양파 주점의 설정이 인상 깊다.

20세기 최고의 소설이라는 평답게 매우 훌륭한 책이다. 영화만 보고 말았으면 후회했을 소설..

친절하지 않은 작가가 가끔 개입해서 내용을 이어주는 장면이 몇 개 등장하는데, 그러면 친절한 걸까? 묻게된다.

 

설을 읽기 전 예전에 봤던 영화는 몹시 불편했다. 외설적이기도 하며, 그로데스크한 서사와 인물의 묘사를 전혀 이해할 준비가 없었으므로..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본 영화는 구성이나 시나리오가 엉성했음에도, 한 장면 한 장면이 책에서 어떤 의미를, 어떤 묘사를 저렇게 표현했던가를 짚어가면서 보게 되니, 나름 잘 만들려고 했다는 노력이 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세기는 나중에 언젠가는 눈물 없는 세기라고 명명될 것이다. 도처에 슬픔이 수두룩하게 깔렸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슬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눈물이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쉬무의 양파 주점에서 주인으로부터 돼지나 물고기 모양의 도마와 식칼을 80페니히에, 그리고 밭에서 자라나 부엌에서 요리되는 보통의 양파를 12마르크에 나누어 받아 그것을 잘게 더 잘게 썰었다. 그 즙이 무언가를 이루어 줄 때까지. 하지만 그 즙이 도대체 무엇을 이루어주었단 말인가? 그것은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슬픔이 해내지 못한 것을 달성했다. 즉 인간의 둥그런 눈물을 자아냈던 것이다. 손님들은 울고 또 울었다. 눈물은 흘러내려 모든 것을 떠내려 가게 했다. 비가 왔고, 이슬이 내렸다. 오스카는 수문이 열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봄 장마에 의해 제방이 붕괴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해마다 범람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로서는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는 이 강의 이름은 무어란 말인가? 여하튼 실컷 울고 난 사람들은 12마르크 80페니히를 주고 체험한 이 자연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여전히 망설이고, 자신의 노골적인 말에 스스로 놀라워하면서 양파 주점의 손님들은 양파를 즐기고 난 후 조잡한 천을 깐 편안하지 못한 상자 위에 걸터앉아 있는 이웃들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어떠한 질문에 대해서도 충분하게 대답을 하고, 마치 외투를 뒤집는 것처럼 자신의 속을 뒤집어 보였다.
- P383

인간은 모두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는 모든 인간은 결국 죽어야 한다는 것은 확신했지만, 모든 인간이 반드시 태어나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은 잘못 태어난 존재라고 말했다
- P343

마음속에 쌓인 것을 풀고 싶고, 가슴을 활짝 열고 토로하고, 속 시원하게 말하고,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고, 피가 흐르는 진실을, 벌거벗은 인간을 보이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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