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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평점 :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과 교수가 쓴 '우리 몸이 세계라면' 은 김 교수의 이전 책인 '아픔이 길이 되려면'과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김 교수의 주전공이 공공보건이어서 그런지 이 책들에서는 의학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사회과학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나는 '우리 몸이 세계라면'이 전반적으로 좋은 책이고, 읽을거리가 풍성한 책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여러 문제점에 대해 몇 마디 제언을 하고 싶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되어있는데 나는 다른 부분보다 2장이 전체적으로 과잉 일반화의 오류가 많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2장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일제시대를 보건학적인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책이다. 나는 저자가 2장에서 뜬금없이 왜 일제시대의 공공보건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저자는 2장을 쓸 때 학계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반박하려는 목적으로 이 글을 쓴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저자가 이 책에서 일제시대 때 조선인이 식민통치로 인해 공공보건 측면에서 더 나아진 게 아니라고 말하는 근거가 과연 그런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인의 건강이 더 나아졌는지를 알아본다고 하면서 적합한 통계가 없었는지 저자는 1879년부터 1919년까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조선인 남성의 평균 키 통계자료를 제시한다. 그리고는 평균 164cm에 수렴하는 조선인 남성의 키가 40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기에 일제강점기 동안 남성의 키는 변화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는 통계적으로 허점이 너무 많다. 일단 이 통계대로라면 전체 1,440명 중에 한일합방 이후에 태어난 1911년부터 1919년 사이에 출생한 남자 수는 169명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1916년부터 1919년 사이에 태어난 남자 수는 9명 밖에 되지 않는다. 이 몇 명 되지 않는 숫자를 가지고 일제시대 남성의 평균 키와 영양상태를 말하기에는 너무 데이터가 부족한 것 아닌가?
그리고 저자는 2장을 시작하며 1903년에 열린 오사카 박람회에 대해 말하며 일본인이 여기에 조선인 2명을 원시인 취급하고 사람들이 그들의 생활풍습을 관찰하게 한 것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한다. 이 당시 일본인의 관점은 조선인이 진화가 덜 되었고 미개하다는 제국주의적 관점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일본인이 조선인을 바라보며 잘못된 선입견으로 조선인을 단순화해서 바라본 것처럼 일제시대의 조선인을 너무나 단순하게 그들의 삶이 불행했다고만 바라본다.
"요약하자면, 일제강점기 조선인은 전시당하는 사람이었고 그들의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104쪽)
만약 지금으로부터 백 년 후인 2120년에 우리의 후손들이 2020년의 한국인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면 우리는 동의할 수 있을까?
"헬조선이라고 불린 2020년의 한국인은 최악의 청년실업률에다가 세계최고의 자살률을 경험하며 일제시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
우리가 한 시대를 평가하고 해석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며 특히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그 시대를 해석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이 책에서 그토록 연구과정의 편견과 선입견의 문제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저자가 왜 정작 자신이 일제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에 편견과 선입견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까? 이는 물고기가 물이라는 환경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듯이, 현대 한국인에게 일제시대는 악의 시대, 불행의 시대였다는 고정관념이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학문의 발전을 위해 일제시대를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 시대의 발전을 무가치하게 평가절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일제시대의 사회발전을 인정하는 것이 친일도 아니고, 일제시대의 사회발전을 깎아내리는 것이 독립운동도 아닐 것이다. 어느 시대나 그렇듯이 일제시대 역시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시대였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일제시대를 피상적으로 암흑기였다고만 평가할 수는 없다. 나는 일제시대의 빛과 어둠에 대해 총체적인 관점에서 다루는 책을 진정 만나고 싶다.
나는 이 책에서 저자가 사회적 약자를 두둔하고 그들의 편을 들어주는 것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는 그들의 편이 되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고 그들의 편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저자의 강박관념이 합리적 근거와 설명 없이 뻔한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지지하지 않는다. 저자는 문학인이나 사회운동가가 아니라 의과학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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