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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 3 : 귀 잘생긴 거지는 있어도 코 잘생긴 거지는 없다 - 허영만의 관상만화 시리즈
허영만 지음, 신기원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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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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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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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신은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말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감정이 향하는 대로, 본능이 향하는 대로 사는 것이라고 오해하거나 자신의 형편에 맞는 해석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자연이라는 말을 남발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빠져든 자신을 변호하려는 것은 아닐까요.˝ p.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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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 1 : 얼굴을 보고 마음을 읽는다 - 허영만의 관상만화 시리즈
허영만 지음, 신기원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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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 선은 연결되어 있지 않다. - 움베르토 에코 <미의 역사>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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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정 <환한 밤>: 낮과 밤이 뒤섞인 성장의 시간



환한 밤이란 건 분명히 존재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같은 사람은 오히려 칠흙같이 어두운 밤이 낯설다.



야자실에서 시작하는 이 단편은

학창시절을 통과했거나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밤의 불빛`을 받으며 자랐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야기의 배경이 도시가 아닌 강원도라는 점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만큼 밤의 빛은 학생들에게 보편적이다.



우선 작가가 필진 중에 가장 어린 축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만큼 이야기가 복고적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시골 학교로 온 학생. 적응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일삼다가 외톨이가 된다.

갈등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다. 학교 생활 부적응. 엄마와의 소통 부재.



이야기가 특별해 지는 것은 환한 밤이라는 특별한 시간 때문이다.

밤이지만 환한. 환하지만 낮이 아닌.

그것은 일종의 Twilight Zone이다.

밤과 낮이 섞여 있고, 일상과 비일상이 섞여있고, 꿈과 현실이 뒤섞여 있는 판타지의 시간.



나에게 밤의 학교라는 것은 항상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낮의 학교가 지나치게 밝고 활기찼기 때문에 밤의 정적이 그만큼 낯설다.

분명히 같은 공간이지만 마치 다른 차원의 공간같다.

얼마전에 봤던 미드 <기묘한 이야기> 속 4차원 세계처럼

현실의 뒤집힌 거울상 같아서 묘하게 소름 끼치는 면이 있다.



작가는 그 공포의 시간을 안전한 도피처로 사용한다.

학창시절은 불안한 밤의 시간이지만 또한 그만큼 매혹과 안락의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나방이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시간은 낮이 아니라 밤이다.

위기는 어린 학생들을 바닥으로 내동댕이 치기도 하지만

그들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 또한 위기 자체다.

(기획자인 김보영 작가가 다른 작가들을 섭외하면서 던졌다는 질문 ˝당신의 학창시절은 거지같았습니까?˝는 그래서

˝당신의 학창시절은 당신을 얼마나 성장시켰습니까?˝로 읽힌다)

죽음과 생명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청소년기의 양면성은 또 다른 Twilight Zone이다.



주인공의 위태위태한 밤의 여정을 지켜보면서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떠올린 건 그런 이유에서다.

다 큰 나에게는 별것 아닌 시시한 문제들이 당시의 아이에게는

생명과 죽음을 오가는 종말론적 문제가 된다는 것.



나방은 언제나 좀 음습한 면이 있다.

밝고 개방된 곳이 아니라 폐쇄적이고 지나치게 건조한 느낌.

소설의 마지막 부분, 소녀의 혀 밑에서 튀어나온 나방은 앓던 이가 빠지듯이 시원한 느낌을 준다.

혀 밑이라는 촉촉하고 여린 감각과 상반되는 나방의 탈출.

한 아이가 다시 한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조금 더 성장했다는 느낌.

소설집의 제목 그대로 다행히, 졸업이다.



(서평단에 채택되어 한 편밖에 읽지는 못했지만 자동적으로 나머지 작품들을 궁금하게 만든다.

누가 그린 학창시절이 가장 `거지`같을 것인가.

짧은 소개글만 봐서는 `전국불행자랑`같은 느낌인데

그 중에서도 반대로 가장 발랄해 보이는 임태운 작가의 <백설공주와 일곱 악마들>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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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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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루퍼스에게 최악의 수호자였다. 흑인을 열등한 인간으로 보는 사회에서 흑인으로서 그를 지켜야 했고, 여자를 영원히 자라지 못하는 어린아이로 여기는 사회에서 여자로서 그를 지켜야 했다. 내 몸 하나 지키기도 벅찬 곳에서 말이다. 그래도 나는 최대한 루퍼스를 도울 것이다. 그리고 루퍼스와 우정을 유지하고, 어쩌면 나에게나 앞으로 그의 노예가 될 사람에게나 도움이 될 생각을 심어주려 했다. 어쩌면 내 행동 덕분에 앨리스의 앞날이 편해질지 모른다. p.124-125

타임슬립물은 어쩔 수 없이 영화 <백 투 더 퓨쳐>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조상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어찌보면 굉장히 직접적이고 익숙한 방식을 택한 셈인데, 분명히 뻔해 보이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감수하면서 이룩해 낸 성취 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작가는 이 직접적인 설정을 통해서 굉장히 미묘한 상황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현대의 흑인이 과거의 노예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본의아니게 백인의 앞잡이가 되기도 하고, 현대의 진보적 남편이 과거 가부장의 영향을 받기도 하며, 자기 조상과 싸울 뿐 아니라 죽일 뻔 하기도 하고, 죽임을 당할 뻔도 한다. 지배자에 의한 정보 통제가 이뤄지고, 점점 노예 생활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이 미묘한 상황들 속에서 독자는 흑인 또는 여자로서 겪는, 더 나아가서는 피억압자로서 겪는 비인간적인 상황을 덤덤히 전달하고 있다.

이야기 진행은 독자의 한계를 시험이라도 하듯 최악의 상황으로만 흐른다. 주인공이 그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복수를 시원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캐릭터를 가학적으로 다뤘다는 느낌은 없다. 워낙에 그 시절이 끔찍했기에, 주인공의 경우는 운이 좋다고 해도 좋을 정도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래인으로서의 이점이 단지 `아스피린`의 소유 정도인 상황에서 멱살이라도 잡혀 끌려 가듯이 독자는 노예의 신분을 가상체험하게 된다. 초반은 읽는 것이 쉽지 않지만 어느새 푹 빠져서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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