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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평점 :
나는 루퍼스에게 최악의 수호자였다. 흑인을 열등한 인간으로 보는 사회에서 흑인으로서 그를 지켜야 했고, 여자를 영원히 자라지 못하는 어린아이로 여기는 사회에서 여자로서 그를 지켜야 했다. 내 몸 하나 지키기도 벅찬 곳에서 말이다. 그래도 나는 최대한 루퍼스를 도울 것이다. 그리고 루퍼스와 우정을 유지하고, 어쩌면 나에게나 앞으로 그의 노예가 될 사람에게나 도움이 될 생각을 심어주려 했다. 어쩌면 내 행동 덕분에 앨리스의 앞날이 편해질지 모른다. p.124-125
타임슬립물은 어쩔 수 없이 영화 <백 투 더 퓨쳐>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조상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어찌보면 굉장히 직접적이고 익숙한 방식을 택한 셈인데, 분명히 뻔해 보이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감수하면서 이룩해 낸 성취 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작가는 이 직접적인 설정을 통해서 굉장히 미묘한 상황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현대의 흑인이 과거의 노예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본의아니게 백인의 앞잡이가 되기도 하고, 현대의 진보적 남편이 과거 가부장의 영향을 받기도 하며, 자기 조상과 싸울 뿐 아니라 죽일 뻔 하기도 하고, 죽임을 당할 뻔도 한다. 지배자에 의한 정보 통제가 이뤄지고, 점점 노예 생활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이 미묘한 상황들 속에서 독자는 흑인 또는 여자로서 겪는, 더 나아가서는 피억압자로서 겪는 비인간적인 상황을 덤덤히 전달하고 있다.
이야기 진행은 독자의 한계를 시험이라도 하듯 최악의 상황으로만 흐른다. 주인공이 그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복수를 시원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캐릭터를 가학적으로 다뤘다는 느낌은 없다. 워낙에 그 시절이 끔찍했기에, 주인공의 경우는 운이 좋다고 해도 좋을 정도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래인으로서의 이점이 단지 `아스피린`의 소유 정도인 상황에서 멱살이라도 잡혀 끌려 가듯이 독자는 노예의 신분을 가상체험하게 된다. 초반은 읽는 것이 쉽지 않지만 어느새 푹 빠져서 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