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정 <환한 밤>: 낮과 밤이 뒤섞인 성장의 시간



환한 밤이란 건 분명히 존재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같은 사람은 오히려 칠흙같이 어두운 밤이 낯설다.



야자실에서 시작하는 이 단편은

학창시절을 통과했거나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밤의 불빛`을 받으며 자랐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야기의 배경이 도시가 아닌 강원도라는 점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만큼 밤의 빛은 학생들에게 보편적이다.



우선 작가가 필진 중에 가장 어린 축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만큼 이야기가 복고적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시골 학교로 온 학생. 적응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일삼다가 외톨이가 된다.

갈등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다. 학교 생활 부적응. 엄마와의 소통 부재.



이야기가 특별해 지는 것은 환한 밤이라는 특별한 시간 때문이다.

밤이지만 환한. 환하지만 낮이 아닌.

그것은 일종의 Twilight Zone이다.

밤과 낮이 섞여 있고, 일상과 비일상이 섞여있고, 꿈과 현실이 뒤섞여 있는 판타지의 시간.



나에게 밤의 학교라는 것은 항상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낮의 학교가 지나치게 밝고 활기찼기 때문에 밤의 정적이 그만큼 낯설다.

분명히 같은 공간이지만 마치 다른 차원의 공간같다.

얼마전에 봤던 미드 <기묘한 이야기> 속 4차원 세계처럼

현실의 뒤집힌 거울상 같아서 묘하게 소름 끼치는 면이 있다.



작가는 그 공포의 시간을 안전한 도피처로 사용한다.

학창시절은 불안한 밤의 시간이지만 또한 그만큼 매혹과 안락의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나방이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시간은 낮이 아니라 밤이다.

위기는 어린 학생들을 바닥으로 내동댕이 치기도 하지만

그들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 또한 위기 자체다.

(기획자인 김보영 작가가 다른 작가들을 섭외하면서 던졌다는 질문 ˝당신의 학창시절은 거지같았습니까?˝는 그래서

˝당신의 학창시절은 당신을 얼마나 성장시켰습니까?˝로 읽힌다)

죽음과 생명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청소년기의 양면성은 또 다른 Twilight Zone이다.



주인공의 위태위태한 밤의 여정을 지켜보면서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떠올린 건 그런 이유에서다.

다 큰 나에게는 별것 아닌 시시한 문제들이 당시의 아이에게는

생명과 죽음을 오가는 종말론적 문제가 된다는 것.



나방은 언제나 좀 음습한 면이 있다.

밝고 개방된 곳이 아니라 폐쇄적이고 지나치게 건조한 느낌.

소설의 마지막 부분, 소녀의 혀 밑에서 튀어나온 나방은 앓던 이가 빠지듯이 시원한 느낌을 준다.

혀 밑이라는 촉촉하고 여린 감각과 상반되는 나방의 탈출.

한 아이가 다시 한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조금 더 성장했다는 느낌.

소설집의 제목 그대로 다행히, 졸업이다.



(서평단에 채택되어 한 편밖에 읽지는 못했지만 자동적으로 나머지 작품들을 궁금하게 만든다.

누가 그린 학창시절이 가장 `거지`같을 것인가.

짧은 소개글만 봐서는 `전국불행자랑`같은 느낌인데

그 중에서도 반대로 가장 발랄해 보이는 임태운 작가의 <백설공주와 일곱 악마들>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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