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열대
해원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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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작가의 첫 장편 소설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국의 범죄세계와 정치적 상황 한복판에 들어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소설을 읽어가는데 있어서 그 어떤 이질감이나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이것은 물론 작가의 세심한 자료조사가 뒷받침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점에서 작가의 능력이 발휘 됐다고 생각한다.

리얼리티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대부분의 일반독자들은 리얼리티를 가려낼만큼의 사전 지식이 없다(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얼마나 ‘리얼리티처럼‘ 보이게 만드느냐에 있다. 해원 작가는 두 가지 면에서 그 능력이 탁월하다. 첫 번째는 리얼하게 보이는 연출에 대한 능력이다. 어느 정도 선까지만 묘사해주면 나머지는 생략되거나 검증을 거치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다큐멘터리나 교양서적을 보려는 게 아니다. 정보 전달은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만 유지되면 그만이다. 어설프게 리얼리티에 집착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식이다. 이야기에서 리얼리티가 어떻게 작동되고, 독자가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이는지를 잘 파악하고 있기에 가능한 방식이다.
두 번째로는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탁월하다는 점이다. 세상 어디에나, 범죄 세계 혹은 부패한 관료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은 핵심이 같다는 사실을 작가는 잘 이해하고 있다. 어쩌면 남미의 상황과 우리나라의 역사가 겹쳐지는 부분이 많아서일수도 있다. 하지만 두 나라의 특수성을 넘어선 핵심이 이 이야기에는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타국의 상황임에도 이야기에 거침이 없다. (한국의 ‘아저씨들 문화‘에 통달한 류승완 감독이 그리는 아저씨들의 세계는 직업군이 바뀌어도 모두 리얼하게 그려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쁘게 말하면 꼼수나 잔머리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통찰의 무게는 전혀 가볍지 않다. 그리고 재밌고 빠르게 읽는 장르 소설이면서도, 겉으로는 복수극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이야기 전체를 지배하는 감정은 죄책감이다. 그것이 이 이야기를 다시 한번 묵직하게 만드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의 염세주의적인 세계관도 한몫했다) 북한첩보요원과 남미 카르텔을 같이 버무려낸 소재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아주 잘 통제되고 다듬어진 영리한 소설로 느껴진다.

헐리우드 영화 보다는 확실히 미드에 어울린다. 읽히는 속도감은 마치 미드 시즌 하나를 몰아서 보는 느낌을 준다. 작가의 집필 환경이 어땠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으나 액션장면들에서 쫓기듯이 급하게 써내려간 느낌이 간간히 느껴진다. 상투적인 묘사나 구체적이지 않은 장면 설계에서 그런 것들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들이 신경 쓰이진 않는다. 데뷔작가의 첫 소설이 이 정도라면 다음 작품은 어떨지 오로지 그 기대감만 더 높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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