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통 -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이희주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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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팬들을 오빠 쫓아다니는 애들이라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표현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오빠를 쫓아다니는 애들이 아니라 오빠보다 먼저 가 있는 애들이지요. 오빠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오빠들이 아침에 눈을 뜨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와 화장을 하고 방송국에 오기까지의 모든 시간을 상상하며, 팬들 역시 눈을 뜨고, 단장하고, 아침도 거른 채 일찍 집을 나섭니다. 멤버들이 방송국으로 들어가는 시간은 찰나지만 그 찰나를 놓치면 말 그대로 종일 우울해지니까요. 미리 가서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는 거지요. 그렇다고 그게 억울하거나 하진 않아요. 우리와 마찬가지로 멤버들도 피곤을 이기지 못한 상태로 화장하고, 머리한 뒤 출근할 테니까.
제가 좋아하는 만화 대사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중간에 말이 엇갈려 남자애와 여자애가 서로 다른 장소에서 기다리는 상황이죠. 뒤늦게 약속 장소가 바뀐 걸 안 남자애가 오래 기다린 여자애에게로 가 미안하다고 말해요. 그때 식은 커피를 앞에 두고 여자아이가 이렇게 대꾸하죠. 기다리는 시간도 데이트의 일부잖아. 데이트 시간은 길면 길수록 좋은걸.
데이트의 일부. 얼마나 멋진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런 의미라면 우리가 그들을 기다리는 시간도, 또 그들이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도 모두 데이트의 일부가 아니겠어요. 그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는 더 오래 데이트를 하는 사람이 되는 거지요. p.14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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