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클래식 수업 - 알아두면 쓸모 있는 최소한의 클래식 이야기
나웅준 지음 / 페이스메이커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클래식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한 입문서다.

내용도 수박 겉핥기 식이 아니고 알찬 편이었다. 

친절한데 내용까지 알차니 즐겁게 읽을 수밖에.


클래식의 대중화에 애쓰는 저자의 애정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저자는 트럼펫 연주자(트럼펫터!)로서 클래식 공연 해설자, 뮤직테라피스트, 클래식 관련 네이버 오디오클립 운영까지 다방면으로 클래식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클래식들로 흥미를 돋우고, 기본적인 정보들을 소개하더니, 본격적인 클래식 음악사를 훑고, 각 악기들을 설명해준다.

입문서로서 더 이상 친절하고 알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구성이었다.


정보 전달도 전달이지만, 클래식에 대한 핵심적인 논점들을 소홀히 하지 않고 언급해 줘서 깊은 이해를 도왔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QR코드를 통해 저자가 만든 오디오클립의 클래식 음악과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책 한 권으로 클래식을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코스 요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시리즈화 되어 더 심화된, 혹은 특화된 후속작들이 나와 준다면 좋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저자에 대한 신뢰가 생기는 좋은 책이었다.


나는 클래식에 대해 문외한이어서, 클래식은 어렵고, 지루하고, 잘난 척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게 선입견인 것만은 아니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이런 대중적인 클래식 입문서들을 보면 항상 느끼는 점은,

클래식 음악은 고정돼 있고, 듣는 사람이 클래식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온갖 음악들이 나 좀 들어달라고 아양을 떨고,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내기 위해 안달인 상황에서, 관심도 안 가는 음악을 듣기 위해 ‘노력’까지 해야 한다는 게 어이없게 느껴졌다.


그 정도의 음악이라면 도태되어 사라지는 게 맞지 않을까?


게다가 클래식은 오랜 시간 동안 변화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모습에서 바꾸려는 노력이 없이 고정되어버렸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사람들이 거기에 맞추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원래 모습에서 벗어나면 클래식이 아닌가?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클래식이라고 하면 베토벤, 모차르트 등 고전적인 작곡가들의 음악을 떠올리는 것처럼 당시에도 비슷한 고정관념이 있었다. 작곡가들은 작곡 형식도 그렇고 악기 역시도 과거의 스타일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p. 198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 예술은 없어지는 게 자연스럽다. 전통이란 이름으로 유지해야 한다면, 판소리나 사물놀이를 듣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어쩌면 뮤지컬이나 영화가 시대에 적응해야 할 클래식의 의무를 대신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음악가 한스 짐머는 이렇게 말했다.


“할리우드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영화음악 작곡가가 없었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자주 관현악 연주를 들을 수 없었을 겁니다. 영화음악이 없었다면 값비싼 관현악은 사라질 겁니다.”

- 맷 슈레이더 엮음 『스코어 오리지널 인터뷰집』 p. 133


아이돌 음악처럼 신곡이 쏟아져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마 과거의 유럽 사회에서는 지금같지 않았을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 근사한 음악들이 쏟아져나오고,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퀸보다도 슈퍼스타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발전이나 변화가 없는 똑같은 클래식을 들어야 하는 대단히 불운한 시기를 맞이한 건지도 모르겠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자기 젊었을 적 노래만 반복해서 듣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래서 저자는 클래식의 변천을 사람의 성장과 비교하며 오늘날의 클래식을 ‘꼰대’에 비유한 건 아닐까.


그럼 지금의 클래식은 과연 어떤 시기일까? 우리나라 클래식 시장을 기준으로 냉정하게 판단해본다면 인생의 황금기를 넘어 속된 말로 ‘꼰대’가 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p. 166


저자 본인이 이렇게 클래식을 스스로 ‘까’줬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이미 전성기가 끝나버린 퇴물 음악을, 우리가 그렇게까지 경직되어서, 자격지심이나 열등감 같은 걸 느끼면서, 혹은 반대로 우월감을 느끼면서까지 들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바로 그 정확한 출발점을 제시한다는 의미에서 작가의 자기 비판은 중요하다.


클래식의 높은 문턱을 넘는 것은 클래식이 문제가 있는 음악이라는 걸 전제하고 나서야 가능하다. 아무도 듣지 않는 음악에 권위가 있을 수 없다.


저자는 ‘클래식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버리기엔 너무 매력적입니다.’ 라는 태도로 클래식을 소개해주고 있다.

그리고 저자의 수업을 따라가다 보면, 그 말에 일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저자가 클래식이 꼰대가 된 시대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잘 생각해보면, 

클래식이라는 음악이 굉장히 성숙하고 완성된 음악 형태라는 말이기도 하다.


힙합 음악은 현재 역동하는 음악이고,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수 있는 젊은 음악이다.

역사가 비교적 짧고, 어린 세대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거기에 비하면 클래식은 고루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클래식 또한 비슷한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발전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을지 몰라도 계속해서 다듬어져 왔기 때문에 그 형태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그 긴 역사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도전해 가며 만들어온 끝에 비로소 지금의 ‘완성형’ 음악 체계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클래식은 그 켜켜이 쌓인 성취들 때문에 도무지 얕볼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낸다. 확실히 듣지 않고 그냥 버리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답다.


그러므로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는 대단히 운이 좋은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과거 시대의 사람들이 꿈꿨던 궁극의 클래식을 즐길 수 있다.


분명히 알고 들으면 다르게 들린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내가 노력해서 듣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왜냐면 저자가 설득력 있게 주장했듯이, 정말로 클래식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클래식의 아우라를 우리 생활에 더한다면, 분명히 우리의 삶은 근사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게 아무리 고되고 피곤한 퇴근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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