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망국의 시간 - 당신은 지금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나요?
조한혜정 지음 / 사이행성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도 느꼈던 점인데,

진보적 이야기를 논하면서 과거의 한순간을 이상향으로 그리는 면이 있다.



먼저 <어디서 살 것인가>를 보면,

보행자 중심의 건축을 말하면서

갑자기 70~80년대 골목길 풍경을 가져온다.

저자가 회상하는 그 당시의 골목길은 이상적이기만 하다.

때문에 과거로의 회기만이 골목길 살리기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처럼 도시화가 이루어지기 전의 강북 골목길은 사람이 정주하는 공간이었다. 동네 주민의 거실이라고 할 만큼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콩나물 다듬고 할머니들이 담소 나누는 장소였고, 아이들이 모여서 노는 공간이었다. 골목길은 무엇보다도 ‘자연이 있는 외부 공간’이다. 하늘이 보이고, 1년 365일 24시간 달라지는 자연을 만나는 공간이었다. p. 132


골목길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가 정주하는 공간이 되었다. 아파트에 사는 우리가 지금 그리워 하는 것은 사람을 만날 수 있던 사람 냄새 나는 골목길 같은 공간이다. p. 133-134


아이들을 ‘천재 건축가’로 치켜세우면서 ‘새로운 공간 발견’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저자가 예로 드는 건 산업화 시대 버려진 공간에서 뛰노는 위험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다.


도시를 좋게 만들려면 추억이 만들어질 만한 장소가 많아야 한다. 그런 장소를 만드는 데 가장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이들이 어린아이들이다. 어릴 적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숨겨진 공간과 버려진 땅을 찾아서 재미난 놀이터로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p. 60



<선망국의 시간>에서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대안적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산업화 시대의 ‘이상화된' 동네에 가깝다.

물론 개인주의의 시대를 지나 ‘부족’의 시대가 다가온다고는 하지만,

과연 새로운 세대가 그런 ‘살 부대끼는’ 공동체를 원할까.

공동체는 항상 과거의 모습을 지향해야 하는 걸까?


그냥 동네에 한군데 솥 걸어놓고, 누구든지 와서 밥을 먹을 수 있게 하자고 저는 계속 주장해왔어요. 그냥 밥값만 주고, 동네에서 국 잘 끓이는 사람, 반찬 잘 하는 사람 모여서 매일 밥을 해서 먹으면 거기서 공동체가 생겨나는 거거든요. p. 107


이들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과거의 경험에 묶여 있는 어쩔 수 없는 ‘옛날 사람’ 같다.


이들의 공통점은 공간적 이웃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단지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그들과 잘 통하리라는 생각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심지어 과거에도 그렇지 못했다.

아무리 나를 도울 수 있는 거리에 산다고 해도 

마음이 맞지 않으면 이웃사촌이 될 수 없다.

심지어 <선망국의 시간>도 그걸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또 그런 프로그램을 동네마다 한다? 그건 또 아니고요. 어디서는 해봤는데, 사람들이 밥 먹으러 안 오기도 해요. 근대적 인간이 까다롭거든요. ‘내가 갈 가지인가?’하고 따지는 거죠. 차라리 돈 내는 거면 당당하게 가서 먹을 텐데, 약간 불편하게 낯선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밥 먹고, 이런 거 잘 못해요. 사실 그런 건 옛날 달동네 살던 친구들이 잘했어요. 그 친구들이 사회성도 머리도 좋고 훌륭했는데, 학원만 다니면서 자란 친구들에게는 없는 능력이 있죠. p. 107


내가 더 대안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숨 좀 쉬며 살아볼까 합니다>에 등장하는 관계들이다.


약물의존증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고통을 끌어안고 있는 이들과 그들의 도우미들에게 전하는 ‘다양한 거리에 자신의 응원단을 만든다’는 메시지이다. 핵심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 강력한 응원단을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살 수 없다. 중요한 순간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반드시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의지하고 싶은’ 상대인 것은 아니다. 뜻밖에도 그리 가깝지 않은 상대이기 때문에 의지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p. 184


하루에 씨 말대로 ‘다양한 거리에 응원단’을 만들려면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거나 다양한 상황에서 조금씩이라도 자신의 단점이나 결점을 드러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궁지에 몰린 사람이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는 대상, 다시 말해 안전 기지’는 굳이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만들어줄 수 있다. 당사자가 ‘이 사람이라면 의지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응원단을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도 가능하면 많이 만들어두는 편이 좋다. p. 187



앞의 두 책 모두 온라인이 발달한 현재 상황을 감안하고는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굳이 거리에 얽매이는 건 불필요한 전제 같다.


한 남성 유튜버가 여성 유튜버를 죽이러 가겠다고 나섰던 사건이 떠오른다.

굳이 죽이러 그 먼 길을 감수하고 갈 정도의 시대라면,

사람 살리러 가는 정도의 거리는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과거에는 좋은 면도 있었지만, 그 과거를 그대로 가져온다고 해서 해답이 되지는 않는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그때가 아니면 의미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식인들이 자기 경험에 갇히지 말고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두 책 모두 좋은 책이었지만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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