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여자의 사랑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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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 신화 이야기를 차용한 이야기 방식이 재밌다. (극 중에서는 프랑스어 발음 ‘외리디스’와 ‘오르페’로 나온다)

  

외리디스는 물의 님페이고 오르페의 아내이다. 오르페는 음유시인이자 리라의 명수라고 하는데, 어찌나 연주 솜씨가 좋았던지 저승의 신들을 감동시켜 죽은 아내 외리디스를 저승에서 데리고 나오기까지 한다. 죽은 아내를 데려가기를 허락한 저승의 신들은 한 가지 조건을 단다. 외리디스가 오르페의 뒤를 따라서 이승으로 나가야 하는데, 오르페는 다 나가기 전까지 절대로 아내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르페는 이승을 코앞에 두고 뒤를 돌아보고 만다. 외리디스는 되살아나지 못하고, 슬픔에 못 이겨 오르페도 죽고 만다.

  

앨리스 먼로는 이 아름다운 정절과 사랑의 이야기를 가져와 냉혹한 남녀 관계를 묘사한다. 브라이언의 아내 폴린은 외리디스를 다룬 연극의 외리디스 역으로 참여하고, 연출가인 제프리와 바람이 난다. 폴린은 외리디스다. 그녀의 결혼생활을 둘러싼 여건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두 아이의 육아, 자신을 공격하는 시아버지와 해맑기만 한 시어머니, 그런 부모님의 문제를 농담으로 때워 넘기려는 남편. 그렇다고 그녀의 결혼생활이 최악인 것은 아니다. 남편은 착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단지 그녀는 연극 참여를 계기로 자기 삶이 얼마나 답답한지를 깨달았을 뿐이다.

  

그녀는 텅 빈 거리를 걷는 이 짧은 시간을 즐겼다―자신이 도시 여자가 된 것 같았다. 소중한 꿈의 눈부신 빛 속에서 살아가는 초연하고 고독한 누군가가. 브라이언은 집에서 정원을 가꾸거나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연못에서 보트를 태워주려고 아이들을 댈러스 로드로 데려갔을지도 몰랐다―그 약속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 삶은 여기 연습실에서 진행되는 일―몇 시간씩 연습하고 집중하고 비수 같은 말을 교환하고 땀을 흘리고 긴장하는 일―과 비교했을 때 초라하고 따분하게 느껴졌다. p. 23

  

그렇다면 오르페는 누구일까. 폴린과 바람이 난 제프리인가, 남편인 브라이언인가. 작가는 단언한다. 두 사람 모두 오르페라고. 

  

작가가 말하는 오르페는 신화 속 이야기와는 좀 다르다. 오르페는 절대로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저승까지 찾아오는 영웅이 아니다. 제프리는 사랑인지 정욕인지 모를 충동 때문에 폴린의 가족 휴양지까지 쫓아온다. 폴린은 따분한 가정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만, 그렇다고 제프리가 그 구원자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브라이언은 어떤가. 그는 착한 남자이지만 폴린을 가정이란 숨 막히는 저승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그리고 한 번 죽은 폴린을 다시 한 번 죽이는 오르페다. 가족을 떠나겠다는 폴린에게 ‘자식들은 안 보내’라는 말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게 그다. 절대로 다시 한 번 그녀를 붙잡기 위해,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녀가 뻔히 죽을 걸 알고, 죽이기 위해 본 것이다. 그것은 복수였고, 결함 있는 아내의 존재를 세상에서 제거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래서 잘못은 오르페에게 있다고, 폴린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외리디스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죽여 없애려고 고의로 외리디스를 쳐다본 것이다. 오르페 때문에 외리디스는 또다시 죽어야 한다.

  

작가가 말하는 ‘남자’는 여자에게 그런 존재인 것 같다. 그들은 절대로 여자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 희생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동등한 입장으로 여자 옆에 있어주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 욕구를 채우기 위해 여자를 이용하고 그것으로 둘의 관계는 족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기적이다. 브라이언은 폴린 자체보다는 폴린과 자기 부모님의 관계가 중요했다. 아내에게 독박 육아와 대리 효도를 떠넘기고 혼자서 농담이나 해대는 작자다.

  

그에게는 아내와 그의 부모와 자식들이 이렇게 결속되는 것이, 그의 부모와 함께하는 그의 인생에 폴린이 참여하는 것이, 그의 부모가 폴린을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했다

  

제프리는 전형적인 바람둥이 예술가 타입이다. 연출가라는 알량한 권력 위에 서서, 그럴듯한 뜬구름 잡는 얘기로 마음을 사로잡고, 예술의 일부인 양 여자의 몸을 탐닉한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예술가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는 예술 자체보다는 예술계의 정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주류 예술계에 대항하는 반항아. 그게 그가 심취한 역할이다.

  

폴린은 그 희곡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고, 제프리에게 말했었다.

그가 말했다. “정말로요?” 그녀의 말은 그를 기쁘게 하지도, 놀라게 하지도 않았다―그는 그 말을 뻔하고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로 여기는 듯했다. 그라면 절대 희곡에 대해 그런 표현은 쓰지 않을 것이다. 그는 희곡을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처럼 말했다. 또한 여러 적들에게 던지는 도전장처럼 표현했다.

  

그럼 외리디스는 잘못이 없는 걸까? 아니다. 작가는 잔인할 정도로 정직하게, 외리디스의 잘못과 그 여파에 대해 조목조목 묘사한다. 그녀는 분명히 도덕적으로 당당하지 않다. 그런데 작가는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가 불륜을 저질렀건, 눈이 맞아 도망쳤건, 그녀 자신이 그것을 선택하고 그 결과를 책임져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불륜은, 안온한 가정을 박차고 나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그녀 스스로 해낸 일이다. 그게 전부이고, 그녀 스스로도 그 이상으로 평가받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전부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방에서 살지, 어떤 옷을 입을지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기 위해 그런 것들에 기대지는 않을 것이었다. 자기 스스로에게 알려준다는 명목으로도 안 될 것이었다. 그녀가 지금 한 행동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그게 전부가 될 테니까.

  

폴린은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돌파구를 스스로 찾은 외리디스다. 그리고 돌파구로 향하는 그녀를 다시 죽인 브라이언이 있고, 돌파구라고 생각한 제프리도 해결책은 아니었다. (‘그 사람하고 한동안 같이 살았지.’ p. 63) 이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오늘날 여자에게 남자가 어떤 의미인지를 명징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주 온건한 어투지만, 작가는 단호하다. 가정에 갇히지 말라. 남자는 여자를 동등하게 대하지 않는다. 결혼이나 남자를 해결책으로 생각하지 마라.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져라, 여자들아. 사회적으로 이미 죽어있는 여자들을 확인사살(말 그대로 ‘죽인다’)하는 이 세상에서, 오르페우스 같은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 문장은 그런 단호한 메시지다.

  

폴린이 말한다. “오르페가 아니었어.”

“오르페가 아니었다고요? 아빠는 그렇게 말했었는데요. ‘그때 너희 엄마는 오르페와 달아났어.’”

“그랬다면 아빠가 농담한 거야.” 폴린이 말한다.

“나는 그 사람이 늘 오르페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럼 다른 사람이었단 말이네요.”

“그 연극과 관련된 다른 사람이었어. 그 사람하고 한동안 같이 살았지.”

“오르페가 아니고요.”

“아니야. 절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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