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거짓말 - 아이가 아니라 부모가 거짓말을 한다
엄윤숙 지음 / 책구경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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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거짓말을 고발하고 있는 책이다.  

올바른 양육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읽다 보면  

부모에 대한 비판이 더 정확한 의도로 읽힌다. 

  

33가지 부모의 거짓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말 자체는 맞는데 본뜻을 잃어버린 경우와  

부모의 나쁜 욕망을 위해 그럴듯한 말을 빌려오는 경우.  

두 경우 모두 표면인 말과 내용물인 의도가 다르다는 공통점이 있다. 

 

거짓말이란 무엇인가? 말과 삶이 분리된 말, 말이 삶을 초과한 말은 필연적으로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다. 삶에 기반을 두지 않는 ‘좋은 말’은 그저 입으로만 하는 좋은 말일 뿐 진짜 말이 아니다.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말이 아니라, 말의 비듬이다. p. 6

 

먼저 본뜻을 잃은 말들을 살펴보면,  

그 상투적인 말대로만 한다면 아이는 물론이고  

어른들도 행복하고 올바로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관용적이고 상투적인 말들에는 오래된 진리가 들어있다.  

문제는 그 말이 제 뜻을 잃어버리고 엉뚱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부모의 말은 원래부터 거짓말이었던 것은 아니다.  

거짓말이라는 건 일종의 역설이다.  

말이라는 껍데기만 남고 속뜻이라는 알맹이는 사라져버렸으니까.  

근본을 지키자는 당부에 다름 아니다. 

 

두 번째로 ‘나쁜 가치관을 그럴듯하게 꾸며주는 말’들을 보면,  

부모가 무심코 하는 말들에 상당히 끔찍하고 천박한 가치관들이  

함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쁜(혹은 못된), 정의롭지 못한 욕망이 

좋은(혹은 선한), 정의로운 말로 포장되고 있다.  

이중의 거짓말이기 때문에 이런 거짓말들은 더 나쁘다.  

 

사랑, 건강, 꿈… 

부모가 날마다 주워섬기는 좋은 말, 맞는 말, 옳은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입에서 좋은 말이어서 더 나쁜 거짓말이다. 

시작은 늘 맞는 말이어서 더욱 질 나쁜 이중(二重) 거짓말이다. 

옳은 말에 살짝 자신의 변명을 섞고 뿌리고 얹어 아이를 속이기에 거짓말이다.  

p. 156

 

말을 꼼꼼히 살피고, 어떤 의미로 쓰이고 있는지,  

원래 뜻은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작가가 말이라는 것에 보여주는 재능이 느껴진다.  

그것은 시인에 가까운 감각이다. 

 

거짓말로 꼽은 33가지 말 자체가 작가의 ‘말에 대한 민감성’을 드러낸다.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고 단어들을 가지고 현란하게 놀기도 한다. 

 

‘그래도’는 ‘그대로’로 가는 도돌이표다. p. 127

부모의 이러한 자기 ‘확대’는 아동 ‘학대’의 징후다. p. 135

하지만, 

우리는 ‘하지만’을 신중한 거짓말을 위한 진중한 전주로 애용하고 있다. 우리는 ‘하지만’을 ‘하지 마’로 가는 징검다리쯤으로 치부해버렸다. p. 132


그렇게 민감하게 선택된 단어들은 

간결하고 명쾌하게, 읽는 이의 폐부를 찌른다.  

여백이 많고, 줄바꿈이 잦은 점도 ‘시’처럼 느껴지는 부분이다.  

모든 문장이 잘 다듬어진 ‘시구’다. 

 

자신의 재능을 기울여 어른들의 허위를 파고드는 데에는  

작가 자신의 반성이 바탕이 된다.  

작가는 같은 어른으로서 철저한 자기반성을 한다.  

작가가 비판하는 어른들에는 작가 자신도 포함되는 것이다. 

 

나는 부모의 거짓말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아이 때부터 질리도록 들어왔던 거짓말이고, 내가 오랫동안 아이에게 해왔던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거짓말』은 부모의 말과 삶을 관찰 기록한 보고서이다. 부모의 추악하고 처참한 거짓말을 채집한 녹취록이다. 또한 쓰리고 아픈 자기 고백이며, 미안하고 슬픈 반성문이다. p. 7

  

기본을 잃은 어른들이 많다. 뜨끔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뜨끔함의 핵심에는 ‘세월호’의 비극이 있다. 

 

큰일은 큰일이라 두려워서 가만히 

작은 일은 작은 일이라 시시해서 가만히 

남 일은 남 일이라 낯설어서 가만히 

내 일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가만히 있다 보니,  


기울어진 세상은 끊임없이 재탕되고, 

기울어진 하늘은 간단없이 반복되고, 

기어이 

기어이 

여리고 어린 진실은 검은 바다 속에 침몰하고 말았다. 


우리는 아이에게도 

‘가만히 있으라’를 금과옥조처럼 가르쳐왔다. 

p. 55-56


세월호 앞에서 대한민국의 모든 어른은 할 말을 잃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억울해 하는 어른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작가의 비판은 작정한 듯 매섭다.  

하지만 세월호가 그 비판의 근간에 깔린 것이라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거짓말쟁이가 된다.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비통함을 기억한다면,  

적어도 억울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작가를 철저하게 반성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부모의 거짓말’은 이상하고 나약한 몇몇 개인의 일시적인 일탈이나 실수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공동 창작물이다. 우리 모두가 관여한 거짓말이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그렇게 거짓말해도 괜찮은 사회, 그렇게 거짓말해야 살아남는 사회이기에 부모는 아이 앞에서 무시로 거짓말을 입에 올리는 것이다. p. 8


만약 그래도 억울한 마음이 든다면,  

부모들도 힘들다고 호소하고 싶다면,  

자식보다는 사회에 소리쳐야 할 것이다.  

자식이 아니라 사회를 바꿔야 한다.  

안 그러면 자식도 똑같은 부모가 되어 

똑같은 거짓말을 해야 할 테니 말이다.  

 

그것이 작가가 비판을 빙자해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절대로 아이들이 이런 세상에 살게 해선 안 된다.  

어른들도 이런 세상에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부모는 그렇게 잘 알아서 도대체 뭘 했나? 

‘알아서 기는’ 것뿐 아니었나. 

알아서 설설 기고, 샅샅이 알아서 기는 부모 덕분에 

‘뭣’ 같은 세상은 더욱 멋대로  

자신의 힘과 위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p. 105

 

작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누구나 하찮게 생각하고 함부로 하는   

한 마디의 ‘말’을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만큼 이 세상은 근간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 속에 뿌리박혀 있는 줄도 모를 그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전까지는 모든 말이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거짓말을 가르치고, 거짓말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말이 삶을 채운다. 

말이 삶을 지탱한다. 

말이 부모다. 

부모의 역할은 말이 시작이고 말이 끝이다. p. 102

(http://blog.naver.com/bouv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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