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기담
전건우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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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나 제목만 보고는 상당히 오싹하고 고요한 공포를 예상했다. 일본 공포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서늘한 공포 말이다. ‘기담’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도 그런 예상에 한몫한 것 같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상당히 자유분방(?) 한 이야기였다. 심지어는 공포가 아닐 수도 있겠다. 공포의 탈을 쓴 복합장르라고 해야 할까.   

 

《고시원 기담》은 장르를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인데,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이 각자 생각하는 장르를 붙여줬으면 하는 마음에 이런 구성으로 글을 썼다. p. 427, 작가 후기

 

 되게 새로운 걸 만들어 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 전에 없던 새로운 장르를 창조해낸 건 아니다. 정확히는 작가가 해보고 싶은 장르를 다 욱여넣은 느낌? 코믹함을 바탕으로 추리(그냥 흉내만 내고 있지만), 초능력, 무협, 도시괴담, 킬러라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단편집처럼 엮였다. 굉장히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고 장르가 서로 너무 달라서 옴니버스 이야기 같다. 모든 이야기가 마지막에 공포로 묶이기는 하지만, 각 편의 아이디어들이 많이 휘발되고 있어서 결말의 필연적인 느낌은 덜하다. 

 

 결과적으로 상당히 애매해졌다. 공포인가 싶으면 다른 장르의 비중이 훨씬 많고, 사회풍자극인가 싶으면 그런 것치고는 장난스럽다. 생각 없이 웃기에는 불편한 지점이 많고. 가볍게 시간 때울 킬링 타임용 장르소설? 그 정도가 적당한 분류 같다. 

 

 

 전작인 <소용돌이>는 스티븐 킹의 <그것>에서 큰 틀을 거의 그대로 옮겨 오는 한계를 보였었다. 이번에 <고시원 기담>까지 보고 나니, 작가는 장르소설의 큰 구조를 짜는 데 아직 자신이 없는 것 같다. 일종의 단편집 같은 구성으로 이뤄진 장편소설을 선택했는데, 어쩌면 단편에 더 강한 장점을 살리면서 장편을 쓰기에 최적화된 구조를 찾아낸 건지도 모른다. 물론 구조를 그대로 베껴 온 전작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를 보여준다. 돌파구를 찾아내려는 작가의 노력이 느껴졌다. 

 

 

 본문으로 들어가 보면 상당히 촌스러운 느낌이 있다. ‘다방 아가씨’라든지, ‘커피숍’이라든지, 고전 탐정소설과 무협소설 속 인물과 어휘들이 난무하고, ‘책 대여점’까지 등장한다. 물론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굳이 저런 어휘를 써야 했을까 싶은 느낌은 있다. 현재라는 생각보다는 과거의 어떤 지점에 멈춰진 시간대 같았다. 어쩌면 변두리 서울에 대한 편견 같기도 하고. 

 

 어휘에 대한 문제는 첫 챕터인 ‘고문 고시원’에서 도드라지는데, 어휘나 표현에 있어서 상당히 저열한 느낌이다. 작가의 야심찬 기획임을 감안했을 때 오프닝의 문장들이 너무 성의 없다. 

 

 ‘브라자나 빤스’(p. 9)라는 어휘 선택이나, ‘산타 모자를 쓰고 비키니를 입은 여자의 가슴 부위가 동그랗게 타 들어간다 싶더니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p. 11) 같은 묘사는 불쾌하라고 쓴 것 같다. ‘즉사(卽死). 방금 전까지 철권의 연속기를 외우고 있었을 소년의 머리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p. 18), 그리고 가스 마시던 양아치가 옥상에서 떨어지는 부분(“사이어인이 쳐들어왔다!" 양아치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무공을 할 수 없었던 그는 무릎으로 착지했고, 척추가 파열되는 동시에 혀를 깨물어 평생 앉은뱅이와 벙어리로 지내게 되었다. p. 19)은 죽음에 대한 지나친 장난스러움이 느껴져서 거북했다. ‘김치는 중국산으로, 발로 담근 듯한 맛이 난다.’(p. 23) 같은 표현은 프로 작가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발로 쓴 것 같은’ 문장이었다. 

 

 한결같이 일부러 불쾌하게 만들려고 작정해서 쓴 느낌이다.  

 

 이것은 먼저 말했던 장르적인 애매함이 불러일으킨 문제가 아닐까 싶다. 사회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공포이면서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유머러스한 잡탕 장르물을 한 작품에 넣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예 ‘펄프 픽션’같은 싸구려 장르 소설을 지향했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훨씬 노골적이어야 했겠지만. 

 

 오프닝에서 이렇게 광선동 사람들을 아무렇게나 굴려놓고 엔딩에서 그들을 보듬는 것처럼 매듭짓는다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마지막까지 장르적으로 애매한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작가 후기에서 작가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도 같다. 

 

그러니까 이건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위해서 다양한 장르를 빌려 왔을 뿐이다. 

p. 427, 작가 후기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로 장르적 문제를 어물쩍 넘어가는 건 아닐까. 일정한 톤으로 장르들을 엮어내지 못한 것을 변명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저열한 어휘와 묘사들이 분위기 조성을 하고 있기도 하다. 저열함이 공포라는 장르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다른 장르였다면 단점으로 불거져 나왔겠지만-전체적인 분위기 속에 묻혀 눈에 띄지 않는 편이다.(물론 공포 소설을 저열한 어휘로 써야만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봐도 처음 책을 펼친 독자 입장에서는 첫인상이 굉장히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작품에 대한 선입견에 앞서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다양한 사회적 단면들을 코믹하게 다루고 있어 사회 풍자적인 성격도 엿보인다. 단지 그 모습이 상당히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편이다. 치밀한 취재를 통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그냥 그렇다고들 알려져 있는 통념들을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하는 수준이다. 

 

 ‘오케이맨’ 챕터에 나오는 보수 기독교 층을 비롯한 언론의 반응들이 그렇고, 인터넷 방송을 하는 젊은이들이 그렇다. 깜이라는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도 굉장히 상투적이다. 고시생이나 취준생의 고통도 딱 일반적으로 알려진 수준이고, 정치인들이나 조폭들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 

 

 생각해 보면 고시원에 대한 기담이라는 발상도 그 정도 발상에 머문다. 낡디낡은 시설,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성원들에 대한 공포, 벽을 통과해 그대로 전해지는 옆방의 소음… 작가 후기에 보면 실제로 고시원에서 살았던 생활을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 의외로 상당히 외부적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순간의 연출에 있어서 공포감을 주는 능력은 확실해 보인다. 단지 긴 이야기 속에서 그런 순간이 너무 짧고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게 일어난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확실히 공포 장르와 단편소설에 최적화된 작가 같다.  

 

 그 공포 연출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스펙터클로 채워져 있다. 전작인 『소용돌이』와 마찬가지로, 멤버 모두의 능력을 합친 사건 해결 방식이 스펙터클하게 엔딩을 향해 치닫는데, 이것이 과연 공포에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스펙터클한 엔딩에 대한 강박이 느껴지기도 한다. 주로 할리우드 공포영화에서 익숙한 방식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나 토브 후퍼 감독의 <폴터가이스트>의 엔딩을 보면 집이 땅으로 꺼지거나 오그라들어 다른 차원으로 사라진다. 에드거 앨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에 영향을 받은 듯한 이런 엔딩은 해결 단계의 확실한 비주얼을 보여주며 개운함을 선사하지만, 공포의 여운은 남기기 힘들다. 전건우 작가가 선호하는 이런 엔딩 방식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좀 뻔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가족과의 관계, 특히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연속적인 존재로 정체성을 얻는 데 반해, ‘괴물’은 부모와의 연계성 없이 단독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이 재밌었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정확한 지적 같기도 했지만, 타인과의 의사소통 없이는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목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결국 괴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옆방 사람들과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연대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서로의 이름을 밝히고,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 전부다. 지구라는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이상,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웃의 집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서로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괴물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서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고시원의 얇은 벽이 서로를 나누고 고립시키기도 하지만, 옆방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일종의 희망처럼 느껴진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도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다음 작품에서도 고뇌가 느껴지는, 한층 발전된 모습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제 책장을 덮고 어둠 속에서 빛으로 걸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사람이 사는 곳으로. 

찬란한 그곳으로. 

p. 428, 작가 후기

(http://blog.naver.com/bouv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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