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 - 금강요정 4대강 취재기
김종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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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학교에서 인간 삶의 기본 조건이 의식주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것은 그 밑에 더 기본적인 조건이 충족됐을 때의 말이다. 즉, 공기와 물이 깨끗하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지금 우리는 의식주 문제가 뒤로 밀려나는 역행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공기는 미세먼지와 황사로 오염됐고, 4대강 사업으로 식수도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옷, 더 좋은 먹을 것을 추구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삶의 질이 떨어지는 중이다. 우리는 이미 그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김종술 기자는 이런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책 한 권을 우리 앞에 내놓았다.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가 와도 반박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말이다. 저자는 4대강 사업의 폐해를 10년 동안 추적했고, 4대강에서 먹고 자며 ‘큰빗이끼벌레’의 등장 등 수많은 특종을 세상에 알린 일명 ‘금강 요정’이다. 이 책은 기자의 10년 동안의 취재 기록이다.  

 

 4대강 사업 10년의 기록은 부조리와 난장판으로 가득 차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과연 이 난장판의 원인이 뭘까,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세 가지 정도의 원인이 느껴진다.  

 

 첫 번째로는 자연과 과학에 대한 무지, 혹은 무시다(결국 둘 다이겠지만).  

 자연에 함부로 손을 대면 우리가 예상하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고, 그것을 함부로 수습하려다 보면 일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4대강 사업처럼 대규모로 자연을 조작하는 일은 면밀한 조사와 전문가와 과학자들의 조언을 수렴해서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큰돈이 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연은 한 번 망가지면 돌이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정치와 행정은 과학과 가장 거리가 먼 단어 같다. 과학자들을 물정 모르는 뜬구름 잡는 사람들로 치부하는 사회적 분위기나 국민적인 과학 교육이 부재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책에 소개된 4대강 사업의 여파를 보면 무식이 하늘을 찌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통령도 그렇지만 공무원은 과학자가 아니다. 그래서 사태가 걷잡을 수없이 커졌다. 

 

 두 번째는 ‘행정 편의적 일처리’를 들 수 있겠다. 물론 여기에는 윗선의 압력도 포함된다. 일명 ‘가카’로 불렸던 제왕적 대통령의 시대에는 더욱 상명하달이 중요해질 것이다. 일개 시민 기자에 불과한 저자에게는 견고한 바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나는 지난 10년간 강에서 살면서 물고기 떼죽음과 녹조, 큰빗이끼벌레, 실지렁이와 붉은깔따구 등이 발생할 때마다 환경부의 입장을 들으려고 수없이 전화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은 늘 이랬다.  


“(물고기 떼죽음) 조사중입니다.” 

“(녹조) 확인해보겠습니다.” 

“(큰빗이끼벌레) 확인하고 있습니다.” 

“(실지렁이·붉은깔따구) 연구용역중입니다.” p. 305-306

 

그리고 그런 태도는 정권이 바뀐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권이 바뀌고 수문이 조금 열렸으나 공직사회는 그대로다. 현장이 아니라 책상이 일터다. 환경부가 내놓은 수문개방 뒤 현장조사 결과가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오늘도 책상 앞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보고’만 받고 있다. 환경부는 4대강 수문개방에 따른 결과를 모니터링하려고 상황실을 운영한다. 하지만 현장조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이다. p. 304

 

 앞에서 말한 과학에 대한 무지에 더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공무원들이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정말 코미디다. 근시안적인 대책은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자연은 한번 망가지면 여파가 어디까지 향할지 정확히 예측하기가 어렵다. 황토를 뿌리고, 배를 띄워 녹조를 흩어놓고, 수차를 돌린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언제까지 해결하고 있다는 퍼포먼스만 보여줄 것인가.  

 

 현장을 모르는 공무원에 대한 질책은 저자의 자신감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과연 공무원들이 김종술 기자보다 4대강을 더 많이 돌아봤다고 할 수 있을까. 더 많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행정 편의적 일처리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돈은 계속 들어가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공무원들은 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마지막 세 번째는 역시 ‘지도자의 오만함’이다. 대통령 본인이 제왕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 그것은 국가와 국민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연과 과학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오만함 없이는 애초에 불가능한 사업이었다. (오만함이 아니라면 다시 ‘무지’뿐이다. 무책임한 무지) 청계천 복원을 비롯해 건축적인 성과로 대통령까지 오른 ‘그’의 눈에 자연 그대로인 4대강은 ‘미개척지’나 ‘전근대’로만 보였을 것이다. 그야말로 구시대적 발상이다. 

 

죽어가는 금강을 지켜보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의 얼굴. 그는 자기가 저지른 짓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회고록에 담긴 내용을 그는 정말로 믿었을까, 아니면 뻔뻔하게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오만과 탐욕에 눈이 멀어 진실을 보지 못한 것일까? p. 209

 

“(…) 하지만 지금은 댐을 짓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댐을 지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드물어요.(…)” p. 271, 캘리포니아 아메리칸 워터의 로버트 제임스 감독관

 

 이 사태의 밑바닥에는 자연을 향한 인간의 오만이 있었다. 이 책을 쓴 김종술 기자와 추천사를 쓴 이외수 작가는 그것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고발하고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을 진리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직 만물의 영장 자격이 없는 인간들도 적지 않습니다. p. 5, 이외수 작가의 추천의 글 중

 

 하지만 강은 ‘역습’(‘강의 역습’ p. 110)해 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것을 막아낼 능력이 없다. 자연 앞에서 우리는 무기력한 존재다. 우리는 누구도 신이 아니다.  

 

 지도자의 제왕적 오만함은 앞에서 얘기했듯이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국가와 국민, 다른 하나는 자연과 과학. 자연과 과학에 있어서 저자는 ‘자연 스스로 갖는 법적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국가는 미래세대를 위해 환경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자연에도 스스로 방어할 권리를 줘야 한다. p. 319

 

여기에 더 구체적으로 더해, 우리는 좀 더 과학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국가 권력에 의해 위협받지 않아야 한다. 저자인 김종술 기자는 말한다.  

 

돈은 어디선가 융통하면 된다고 쳐도, 연구기관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조사를 하지 않으려 했다. 단 한 번도 신뢰할 수 있는 수질분석을 해주는 곳이 없었다. p. 179-180

 

 국가와 국민에 대한 지도자의 오만에 대해서는 시스템에 대한 지적을 한다.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었지만, 언제 한번 제대로 고쳐진 적이 없는 바로 그 문제다. 미국 사례를 취재하러 갔을 때 현장 감독관은 말한다.  

 

“한국의 4대강 사업과 같은 일은 미국에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사전에 여러 전문가들이 긴밀하게 협의해 문제를 해결하니까요. 여러 기관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돼 있습니다. 아메리칸 워터는 21개 주에서 영업중인 큰 회사여서 각종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습니다.” p. 273

 

저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휘둘러 강행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그래도 어렵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거절하면 끝입니다. 한국의 4대강 사업은 여기서 결코 벌어질 가능성이 없습니다.” p. 274

 

 이 책에서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것을 제외하면, 수도승의 고행과도 같은 저자의 취재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전라도 새끼가 여기까지 굴러와서 반대만 하는 거야?” 

“오늘부터 우리 광고 끊어주세요…” 

“너무 강하면 부러집니다.” 

“청와대와 국정원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요즘 당신 얘기만 하던데 조심해요. 기사 좀 그만 쓰라고.” 

“요즘 중국 사람들한테 돈 300만 원만 주면 사람 하나 묻어버린다고 하던데….”

 

 모두 저자가 실제로 들은 욕설과 협박들이다. 현장에서 삽과 곡괭이로 위협 당하고, 쫓겨나는 과정을 보다 보면 도대체 이 사람은 왜 이러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렇게 개고생하며, 취재를 계속해야 하나?” 어느 날 울컥해서 눈물을 쏟았다. 홀로 빗물에 밥을 말아 먹었다. 물고기 주검들 사이에서 노숙을 했다. 뱀에 물리고 공사 인부한테 두드려 맞았다. 물길이 막히니 상식도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건, 사람들의 뇌리에서 그들이 저지른 일들이 사라진다는 거다. 누군가는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끝날 때까지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4대강 사업은 현재형이다.  (책날개 내용 중)

 

 강에서 노숙을 하고, 신발과 옷은 모두 헤지고, 큰빗이끼벌레를 먹고, 녹조 강물을 마시는 장면들은, 성경에 나오는 엘리야나 세례 요한 같은 선지자를 떠오르게 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에 집착하며 문제가 심각하다고 광야에서 외치는 선지자. 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환경과 자연을 위해서 저자와 같은 기자는 반드시 필요하다. 눈에 불을 켜고 강과 정부를 감시해줄 감시자가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미안해진다. 우리는 그들의 고행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고행의 현장에 한 수녀님이 찾아와 동참했다는 것은 그래서 뭔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수녀님이 끝내 수녀복을 벗고 사회운동에 참여했다는 말은 더더욱 이해가 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우리 삶을 이루는 기본 조건인 의식주를 생각해 봤을 때, 우리는 우리의 의식주를 위해서 김종술 기자의 의식주를 희생시킨 건지도 모르겠다. 집이 없는 것처럼 강변에서 노숙을 하고, 옷이 없는 사람처럼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처럼 큰빗이끼벌레를 먹고, 녹조 강물을 마시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이런 지킴이들을 지지하고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우리 일을 대신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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