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기술 - 최고의 승부사 트럼프의 이기는 전략
스콧 애덤스 지음, 고유라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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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의 여지가 많은 책이다. 저자는 트럼프의 대선 당선을 예측해서 유명해진 인터넷 ‘정치 논객’이다. (본업은 만화가) 그런 저자가 트럼프의 당선 전략을 분석한 책을 냈다는 것은 흥미를 끄는 요소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크게 두 가지 면에서 거부감이 든다. 

 

 우선 ‘객관적인 이론’과 ‘주관적인 해석’이 뒤섞여 있어서 신뢰감이 상당히 떨어진다. 저자도 그것을 의식해서 초반에 자신에 대한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고, 본인이 상당히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강조한다. 그런데 그 강조가 좀 지나쳐서 오히려 신뢰도가 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거기에 최면사이기도 한 저자는 최면과 과학을 같은 선상에 두고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나는 조금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그냥 독자를 대상으로 사기를 치려는 건가? 

 

 그리고 자기만의 이론과 도구를 가지고 분석을 하기 때문에 저자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 저자만의 용어와 개념을 익혀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의 모든 이론과 용어는 심리학과 과학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다시 재조합한 개념과 용어들을 익혀야 한다는 건 신뢰감의 문제와 함께 피로감을 동반한다. 이런 면들 때문에 초반에 읽기를 포기할 뻔도 했다. 

 

 하지만 논란이 될 부분은 따로 있다. 거부감이 드는 두 번째 이유는 저자의 인간에 대한 태도다.  

 

 저자는 인간이 세상을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각자 자기만의 ‘필터’(이것도 저자의 용어 사전에 포함된다)로 세상을 파악하고, 그대로 믿어버린다는 것이다. 그 필터는 무엇이 진리이고, 사실인지 판단하는 걸 돕지 않는다. 그저 복잡하고 파악하기 힘든 문제들을 알기 쉬운 단순한 상태로 만들어 줘서 마음의 평안을 주고, 미래를 예측하거나 즐거움을 주는데 유용할 뿐이다. 사람의 눈을 가려 실제 세계를 외면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왜곡된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고 만족하는 것이다. 생존에는 그게 더 유리하기 때문에 인간의 두뇌는 그렇게 진화해 왔다고 한다. 

 

 모두들의 머릿속에는 각자 다른 필터가 적용되고, 똑같은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모두의 머릿속에는 다른 영화가 상영 중이다. 그리고 그 세계관이 부서질 정도의 충격이 오지 않는다면 그 영화는 죽을 때까지 상영된다. 충격이 와서 더 이상 기존 영화를 상영할 수 없게 되면, 새로운 각본을 짜서 조금 변형된 영화가 상영되기를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바라게 된다. 어찌 됐건 객관적인 시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개념으로 시민사회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된다. 대중은 거의 ‘개돼지’ 수준으로 전락한다. 적당히 조작하면 우르르 표가 몰리는 멍청한 집단에 다름 아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트럼프의 성공 전략은 바로 그런 ‘우매한 시민들’을 조작하고 선동하는 탁월한 ‘설득 방법’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시민 의식’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이런 책이 나왔다는 건 상당히 시대를 역행하는 느낌이 있다. 시민들의 지적 무장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이 책의 존재는 용감해 보이기까지 한다. 출마를 선언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트럼프가 보여준 행보는 시민들에게 모욕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 책을 읽어보면 생각보다 더 큰 모욕이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트럼프의 전략을 파악해서 거기에 속지 않으려는 의도로 이 책을 읽을 수도 있겠다.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유명한 책 『프로파간다』가 떠오른다. 누군가에게 이 책은 훌륭한 마케팅 책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시민 의식을 높이기 위한 교양서일 수도 있다. 저자의 의도는 전자에 가깝다는 것도 비슷하다. 결국 이 책은 어떤 선택을 제시하고 있다. 트럼프의 전략을 배워서 나도 성공할 것인가, 트럼프의 전략을 파악해서 다시는 속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인가. 둘 다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긴 하겠지만, 시민 의식에 한정해서 생각해보면 양립은 불가능하다. 시민은 개, 돼지다. 시민은 개, 돼지가 아니다. 

 

 결국 결론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과연 인간이 세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뭐라고 판단할 것인가. 세상 파악하기를 포기하고 머릿속에 영화를 상영하는 존재. 아니면 영화 따위 집어치우고 진실이 뭔지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존재.  

 

 얼마 전에 읽었던 『과학 같은 소리하네』라는 책이 떠오른다. 이 책은 정치인들이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학적인 헛소리를 해대는 걸 과학적 근거를 들어 조목조목 지적한다. 『승리의 기술』과 정확하게 반대편에 서 있는 셈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신뢰한다. 지금은 모르더라도 언젠가는 밝혀질 거라는 믿음 없이 과학 연구는 불가능하다. 정치인들과 사업가들은 진리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사람을 움직여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기술에만 관심이 있다. (저자는 말한다. 트럼프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단지 트럼프의 설득 기술이 뛰어나서 감탄할 뿐이라고 말이다) 양쪽 저자에게 서로의 책을 권해주고 싶을 지경이다. 최소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두 책이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건 더 재밌는 사실이다. 출판사는 독자에게 두 책을 나란히 내놓으면서 어떤 맥락으로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걸까? 균형 잡힌 시각? 아니면 서로 다른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저자의 분석은 빛을 발한다. 아니면, 나 또한 저자의 설득에 넘어간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트럼프가 좋은 지도자로 보이는 건 아니다. <고수가 스캔들을 이겨내는 법>이라는 챕터는 명백하게 궤변으로만 이뤄져 있다. 스캔들로 비화됐던 트럼프의 추악한 행동들을 승리의 기술로 포장해주고 있는데, 이쯤 되면 저자가 자기주장을 비호하려는 건지 트럼프를 비호하려는 건지 구분조차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자신이 주장하는 세계관을 완벽하게 체화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당선을 일관성 있게 예측해 내고도 자신이 정확하게 예측한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쳐서 예측에 맞는 결과를 얻어낸 건지, 아니면 자기 분석을 트럼프 선거 캠프가 참고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 세계관에 의하면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구미에 맞는 필터를 독자 마음대로 고르라고 제시하는 꼴이다. 세상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고, 저자도 자기만의 필터에 맞춰서 확증편향을 겪을 뿐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다 보면 책 전체를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서두에 제시된 저자의 인상적인 구절이 어쩌면 대단한 통찰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여기게 된다. 

 

트럼프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 나는 어떤 조짐을 봤다. 우리가 편한 대로만 현실을 이해하던 부분이 크게 변하려는 조짐이었다. 후보자 트럼프의 설득 기술은, 눈으로 본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소멸 직전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대중들은 자신이 합리적인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봤다. 대중들은 (‘저 광대가 대통령이 될 리 없어’라는 완전한 확신을 바탕으로 한) 믿음을 포기하고 “안녕하세요, 트럼프 대통령”으로 가기 직전에 있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그들은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영화를 다시 제작해야 했다. 트럼프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유일했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의 진정한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틀렸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 

그리고 트럼프는 승리했다.  

이는 앞서 ‘현실에 구멍을 낸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다. 이제껏 지켜온 세계관이 단숨에 무너지고, 그 잔해를 통해 다시 세계관을 만들어야 하는 순간이었다. 숙련된 설득자인 나는 이 상황이 말할 수 없이 짜릿했다. p. 16

 

 저자는 지독하게 회의적일 뿐이지, 과학자들만큼 객관적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는 트럼프만큼 기인인 게 분명하지만, 그 또한 제대로 보고,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민주주의라는 개념, 정의라는 개념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시대가 열린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정치는 그런 것과는 연관이 없는, 전혀 엉뚱한 논리와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본 이면은 기존(트럼프 이전)의 우리가 너무 한쪽 면을 확고하게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했다는 반성을 하게 만든다. 우리나라는 가까스로 그 진실을 유지했지만, 미국은 유지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라고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고 외치던 그때의 우리가 순진하게 느껴진다. 그때 우리는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지금, 우리는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우리는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후로도 계속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박근혜를 당선 시킨 사람들과 끌어내린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사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발버둥 칠 것이다. 누군가는 원래부터 그랬다고 당연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둘은 절대로 화해가 안 될 것 같다. 결국 각자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모든 정치적 논쟁을 보면 이미 그게 진행 중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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