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같은 소리 하네 - 과학의 탈을 쓴 정치인들의 헛소리와 거짓말
데이브 레비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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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들이 자기의 발언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학적 헛소리를 하곤 하는데, 명쾌한 과학적 사실로 그 헛소리를 조목조목 따지는 통쾌한 책이다. 미국 사례뿐이어서 아쉽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사례로 나왔으면 훨씬 더 통쾌했을 것 같다.  

 

 총 열두 가지 유형으로 헛소리를 분석하고, 각 유형마다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정확한 과학적 사실을 짚어 헛소리의 정체를 밝혀낸다. 미국인들이 이 책을 통해 얼마나 속 시원했을지 짐작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과학적인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은 덤이다. 

 

 우리나라 사례가 아니다 보니까 확 와닿는 사례는 별로 없다. 대신에 기후 온난화에 대한 것 하나는 확실하게 알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온난화에 대한 과학적인 논쟁이 진행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지점이 있는가 보다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런 의문은 완전히 깨졌다. 지구 온난화가 ‘과학적인 논쟁 중에 있다’는 주장 자체가 헛소리였다. 온난화는 엄연한 증거가 있는 사실이다. 점점 더 확실한 증거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그 수준이 아주 심각한 상태다.  

 책에서 이 부분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자주, 자세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굉장히 많이 언급되는 이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미국 과학자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말이다.  

 

2009년 후반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21세기 첫 10년 동안 미국의 최고 기온 기록은 최저 기록을 2.04:1의 비율로 앞질렀다. 최저 기온이 한 번 경신될 때마다(예를 들어 특정 해의 11월 12일이 이 지역 관측 사상 가장 추운 11월 12일인 경우) 최고 기온 기록이 두 번 깨졌다는 뜻이다. 이 비율은 1990년대(1.36:1)와 1980년대(1.14:1)보다 높다. 

좀 더 최근 데이터를 봐도 이런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2010~2015년까지 최고 기온 기록은 여전히 최저 기온 기록을 2:1 정도로 앞서고 있다. 그리고 이 비율은 곧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 p. 49

 

 우리나라는 온난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확실히 구체적으로 뭔가 대처할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하는 것 같다. (‘북극곰이 살 곳이 없어요’ 라거나 ‘지구가 아파요’ 정도의 인정주의적 수준에 머문다.) 

 특히나 정치인들이 뭔가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정치인과 과학은 잘 맞지 않는 조합처럼 느껴진다. 정치인들은 대부분 법조인 출신이 많다. 아니면 인문학 계열의 학자 출신이거나. 아무래도 문인들을 중요하게 인용하던 과거 시대의 영향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고 미국 정치인들이 과학적 소양이 높다는 말은 아니다. 책을 읽어보면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다만 미국 정치인들은 과학적 근거를 자기 논거로 자주 사용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과학적인 언급 자체가 거의 없다. 

 책에서 지적하는 미국 정치인들의 나쁜 입버릇은 ‘내가 과학자는 아니지만’으로 시작하는 말이다. 과학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밑바탕에 깔고 나중에라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마음대로 무책임한 말을 지껄이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정치인들이 과학과 과학자, 전문가들을 대놓고 무시하는 태도에 은근히 분노를 나타낸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얼마 전에 유시민 작가가 비트코인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논란이 됐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것은 과학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존경심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소리다. 혹은 토론 문화가 어느 정도 익숙한 문화권에서나 하는 소리일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아예 그것조차 없는데, 나는 그 이유가 기본적으로 과학에 대한 존중과 존경심이 없고,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토론과 연설 자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예 언급조차 안 하는 것은 이 책에 소개된 열두 가지 유형 외에 ‘고의적인 침묵’이라는 유형에 속한다. 저자가 마지막에 따로 언급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가장 위험한 유형이다.  

 

중요한 사안들을 언급하지 않으면 그 사안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퍼뜨리는 꼴이 된다. 대통령을 포함한 공직자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 문제를 왜 국민이 걱정해야 하는가? p. 249

 

 우리나라는 도리어 정치인들이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 과학적 논쟁이 더 빈번히 일어난다. 천안함 폭침에 대한 수많은 ‘팩트’들을 우리는 모두 보지 않았던가. 세월호 때는 심지어 비밀을 모두 파헤쳤다는 아마추어 영화가 공개되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자칭 전문가들이 넘쳐나고 우리는 가짜·조작 뉴스와 음모론의 범람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알아내는 걸 쉽게 포기하고 만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개개인은 과학적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 이 책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면 바로 그런 점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열두 번째 유형인 ‘순수한 날조’에 대해 맺는말을 살펴보자. 

 

(…) 터무니 없는 얘기가 들리면 일단은 의심해봐야 한다. 그리고 백신 같은 쟁점을 둘러싼 꽤 그럴듯하고 합리적으로 들리는 주장들에 대해서는, 믿을 만한 출처를 찾아 스스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은 그걸 바라지 않겠지만,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도록 노력하자. p. 247

 

 책날개의 저자 소개에서도 그렇고, 서두에 저자가 직접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과학적으로 검증을 하되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지키겠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이런 것이 가능한가 싶기도 했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과학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을 벗어나서 객관적으로 그 주장이 옳은지 파악하는 게 먼저다.

 어쩌면 우리가 과학적 사고를 잘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인 지도 모르겠다. 진영 논리 앞에서 과학은 필요에 의해 언제든 가져다 끼워 맞춰진다. 저자가 가장 경계하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국민이 정부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 끊임없는 감시에 필요한 덕목 중에 과학이 추가된 기분이다. 국민은 정말 피곤한 위치다. 탄핵시키랴, 부패하지 못하게 감시하랴, 거짓말인지 아닌지 과학 공부하랴. 어쩌겠는가.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게 아닌 것을. 

 

 저자는 서두에 트럼프의 언사들을 사례에서 제외한 이유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트럼프가 과학적 쟁점과 관련해 내놓은 발언들은 너무 뻔뻔하고 조잡한 데다 물리학·생물학·화학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조차 부족하기 때문에, 크게 노력하지 않고도 쉽게 뒤집을 수 있다. p. 8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은 다양한 유형의 실수와 왜곡을 만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중 어느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다. 과학에 대한 그의 실책은 치밀하지 않다. 그러니 그가 ‘물대포 쏘기’라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하자. 실책이 한꺼번에 수십, 수백, 수천 개씩 쏟아지면 하나하나 거짓말이나 오류를 밝혀내기가 매우 어렵다. 그게 설령 ‘지구는 평평하다’와 같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해도 말이다. p. 9

 

 한 마디로 ‘클라스가 다르다’는 말인데, 거기에 비해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얼마나 더 나은지 자신할 수가 없다. 미국은 그나마 나사(NASA)에 호감을 갖고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국민이 과반 수 이상이다. 우리는 ‘4대강 개발’이라는 최악의 개발을 밀어붙인 전력이 있는 나라 아니겠는가.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는 식의 헛소리가 먹히던 시절은 지났다. 과학적이지 않은 논거는 과감하게 무시해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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