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할 거예요, 어디서든
멍작가(강지명) 지음 / 북스토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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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역시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이다.  

5년 차 회사 생활에 대한 회의감과 오랫동안 미뤄온 자아실현에 대한 열망.  

그리고 해외 생활에 대한 동경 약간.  

20대 후반, 전체적으로 검토가 필요한 시간이 온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작가는 저질러버린다. 

 

언젠가 한 외국인 친구가 불쑥 나에게 던진 말이 기억난다. 


“그거 알아? 한국 유학생들은 

이십 대 후반이랑 삼십 대 학생이 유독 많은 거.  

내 생각인데 말이야. 한국에서는 어렸을 땐 명문대 입학, 

이십 대 때는 대기업 취업 같은  

똑같은 목표만 보고 공부하다가  

막상 회사에 들어가면 그제야 뒤늦게 

사춘기를 겪게 되는 거 아닐까?” p. 18

 

그렇게 시작된 외국생활. 새로운 장소에 대한 흥분은 분명 달콤하고 짜릿하지만 그것은 또한 쉽게 익숙함으로 대체되기 마련이다.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 같았던 두근대는 설렘과 기대감, 그리고 순간마다 벅차오르던 감정들을 비워내기 시작하고 서서히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연애 초기에 그렇게도 뜨겁던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하게 되는 느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p. 97

 

그렇게 객관적으로 그곳을 바라보게 되면서, 멍작가는 반대로 자기 모습을 보게 된다. 

회사 다닐 때는 잘 모르던 자기 자신을 일을 그만두고야 발견하듯이, 

해외에 나가고 나서야 그때까지 파악하지 못했던 한국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래서 특히나 외국에서 회상하는 한국 회사의 모습은 촌철살인이 빛난다. 불합리한 근무형태,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하는 사람들과 벌이는 신경전. 그중에서도 최고는 역시 회사를 그만두기 2주 전 벌어진 송별회 장면이다. 예기치 못하게 머리를 다친 멍작가에게 다음 날 팀장이 한 말은 회사 생활을 접기에 충분했다고 멍작가는 말한다. 

 

설마… 

이제 회사도 관두는 마당에  

일을 복잡하게 만들려는 건 

아니겠지? p. 63

 

외국이 더 이상 새롭지 않고, 한국 사회를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나자,  

작가의 결론은 의외의 종착지로 향한다. 어느 곳에도 나에게 완벽한 낙원이 없다는 것. 

 

외국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한국의 장점과 단점 모두가 나란히 같은 선상에 올라간다.  

작가는 한국 회사에서의 회식문화를 그리워하다가도, 독일 회사에서의 점심시간을 마음에 들어 한다. 한국에 들어오면 밤 문화와 익숙한 음식들, 배달 문화에 만족하면서도, 수영복 차림으로 해변에 누워있을 때 중년 아저씨들의 시선에 불편해 한다. 

 

이 평등해진 외국과 국내의 조건들 속에서, 작가는 모든 곳에서 자국인처럼 살 수도 있고, 국내라고 해도 이방인처럼 살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내가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단절시킨다면 여기가 어디든지 간에 나는 영원한 이방인일 테니까. p. 247

 

그래서 책 전체에 걸친 저자의 가치 판단은 언제나 중립적이고 양립적이다. 오래 된 인간관계만이 결속력이 강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으면서도, 오래 된 관계에 대한 미련까지 버리지는 못한다. (p. 196) 

 

자신의 예민한 성격을 단점으로 꼽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얼마든지 긍정적인 성향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균형을 잡는다. (p. 225) 

 

외국 생활 중에 작가는 국내 회사에 있을 적 알았던 직장 선배를 떠올린다. 항상 예의 바르고 상대를 배려했던 사람. 너무 지나치다고 치부했던 그 사람의 가치가 해외에 나와서 보니 재평가 된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얼마 전 무슨 서류를 찾다가 한 편지봉투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 선배가 선물이라며 준 책 사이에 있던 하늘을 닮은 색상의 편지지. 

길지는 않지만 정성스레 한 자씩 꾹꾹 눌러쓴 그 선배의 편지였다. 


‘잘 할 거예요, 어디서든…….’ 


군더더기 없이 짧은 그 말 한마디가 

한 번씩 하던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나에게 얼마나 커다란 위로가 되었는지 

아마 그 선배는 모를 것이다. 

그 선배의 유난히 예의 바른 존댓말과 따뜻한 마음씨가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p. 181

 

선배의 편지는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적인 면을 드러낸다.  

 

‘잘 할 거예요, 어디서든…….’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이 말은 자기에게 맞는 환경과 생활을 찾아 떠난 멍작가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저 편지의 말에는 생략된 부분이 있는 것이다. ‘좋은 사람과 환경만 있다면 말이죠’ 선배는 ‘나쁜 환경’ 속에서 선한 배려를 실천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모두가 그 선배와 같았다면, 멍작가는 해외로 떠날 필요가 있었을까. 

 

우리는 꼭 해외에 나가야만 행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국내에 사는 사람이 모두 불행한 것도 아니다. 단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살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마음 안 맞는 사람들과 마음에 들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만 하는데, 그나마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도 부족한 편이다. 이것이 20대 후반의 청년들을 계속해서 다른 환경을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핵심적인 이유다.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자신의 저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일본의 불경기 속에서도 젊은이들이 행복한 이유에 대해서 친한 친구들과 지내는 자기만의 작은 우주가 유지만 된다면 어찌됐든 젊은이들은 행복해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그마저도 용납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도 그것을 깨달았기에 외국으로 나갔던 것이고, 거기서 한국도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인정한다. 그리고 국내와 해외의 장단점을 오가던 작가는 결국 양자택일의 선택을 유예한다.  

 

외국에서 한국을 그리워하는 것과 한국에서 다시금 외국 생활을 동경하게 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p. 244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외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국내에 마련되어 있는 인프라(가족, 고향, 국적 등)는 그것대로 가치가 있고 유리한 면이 있다. 하지만 독일이라는 또 다른 삶의 터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도 그만큼 많다. 그래서 둘을 오가면서 장점을 취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반칙이다. 일종의 편법이고 나쁘게 말하면 꼼수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될 건 또 뭔가? 어디에도 나를 위한 완벽한 장소가 없다면 모든 장소의 장점만을 취하며 돌아다니는 것은 그야말로 최고의 선택지 아닌가. 우리 모두가 항상 꿈꾸는 게 사실 바로 그것이 아닌가.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을 우리는 질투에 못 이겨 손가락질 하고 욕하지 않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재촉하면서. 

 

작가가 해외로 나선 이유 중에 하나가 ‘자신의 미뤄뒀던 꿈을 위해서’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내와 해외 사이에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그 장점들만을 취하려고 했듯이, 작가는 자기만의 신념과 타인의 시선 사이에서도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한국 사회에서 타인의 시선은 절대적이다. 때로는 숨통을 막히게 하고 심하게는 자살로 내몰 정도다. 하지만 해외에서 모든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크나 큰 이득이다. 그렇다. 진정한 자유다.  

 

“사람들이 너한테 뭐 하냐고 물어보면 처음엔 적응이 안 될 수도 있어. 아마도 너도 모르게 넌 전에 일하던 데가 어디고 거기서 뭘 했는지에 대해 주절주절 설명하고 있을지도 몰라. 첨엔 나도 그랬으니까.”  p. 258

 

“근데 있잖아, 그렇게 계속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지금이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어쩌면 내 인생에서 다시 못 올지도 모를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자고. 물어보지도 궁금해 하지도 않을 옛날얘기 따윈 나중에 이력서에나 다시 늘어놓고 지금은 그 대신 한 번 더 마주한 사람의 눈을 마주치고 다정한 인사를 건네자고.” p. 259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을 방황하는 존재, 이쪽과 저쪽 사이를 오가는 어리석은 존재로 그리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놓고 봤을 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작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자기만을 위한 틈을 찾아내려 노력하고 그것을 지켜내려고 발버둥치는 투사에 가깝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것을 위해 싸우는 사람을 비겁자라고 욕하고 그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이다. 자기 불안감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작가는 거창한 속뜻은 없다는 듯 담담하게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놨을 뿐이지만, 그 장난스러운 그림과 글 속에서 그의 처절한 투쟁이 느껴진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위해, 자기만의 작은 틈을 위해 투쟁했으면 하고 바란다. 그것이 꼭 회사를 때려치우고, 해외로 넘어가서 외국어를 배우고, 예술을 하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멍작가는 자기가 시도했던 자기의 방법을 풀어놓았다. 당신만의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말 듣고 싶다. 

 

너무 조급해할 필요 없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반드시 꼭 뭔가 이뤄야 행복해지는 건 아니니깐.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 이야기를 온전히 했다면,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p.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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