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거짓말을 한다 - 구글 트렌트로 밝혀낸 충격적인 인간의 욕망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지음, 이영래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일단 엄청나게 재밌다는 사실을 밝히고 들어가야겠다. 

책 속에서 소개하는 조사 사례들을 조금만 뽑아보면,

     

남성이 포르노를 검색할 때 연령별로 가장 많이 찾는 여성 직업은 무엇일까?

가난한 가정 출신과 중산층 가정 출신 중 NBA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어느 쪽이 더 높을까?

슈퍼볼 광고는 진짜로 매출을 늘릴까?

명문고에 간발의 차이로 붙은 사람과 떨어진 사람은 이후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일까?

     

이런 이야기들을 도대체 어디 가서 들어볼 수 있겠는가. 

이런 사례들은 저자가 제시한 수많은 흥미로운 사례 중 극히 일부다.

     

설문조사를 비롯한 기존의 조사 방식에서 사람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하지만 빅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검색창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솔직해진다. 빅데이터 속에는 사람들의 진짜 마음이 들어있다. 그걸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의 제목에 대한 중요한 근거다.


(작가는 원래 제목을 《내 음경은 얼마나 큰가요? 구글 검색은 인간 본성에 관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로 하고 싶었단다. 하지만 편집자가 극구 반대했는데, 서점에서 그런 제목의 책을 쑥스러워서 누가 사겠냐는 이유였다. 우리는 책을 사면서도 완전히 솔직해지긴 힘들다. 전자책 소설 부문 1위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였던 해를 아직도 기억한다)

     

‘솔직한 조사 자료’로서의 장점을 어필하려다 보니 조사 사례 중에 섹스와 포르노에 대한 부분이 많다. (저자의 차기작은 ‘섹스’에 집중될 예정이라고 한다) 


검색 결과는 익명일 뿐 아니라 정확한 결과를 얻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솔직해진다. 이익을 보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솔직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네이버 영화 별점의 추락한 신뢰도와 영화 평점 사이트 ‘왓챠’가 내세우는 ‘클린한’ 영화 별점의 이유이기도 하다. 왓챠는 자신의 별점 평가를 토대로 취향에 맞는 영화를 추천해 준다. 

     

하지만 이 책이 단순하게 흥미로운 사례를 늘어놓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저자도 그것을 강조한다.

     

이 책에 특이한 사실이나 일회적인 연구가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단순히 그런 것들을 모아놓은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방법론은 대단히 새롭고 앞으로 계속 세력을 확장해나갈 것이기 때문에, 이 방법론이 어떻게 작용하고 무엇이 이를 그렇게나 획기적이게 하는지에 관한 아이디어를 소개할 것이다. p. 34

     

물론 사례는 중요하다. 사소한 포르노 검색에서부터 계층 간 이동이라던지, 어떤 광고 방식이 소비자에게 더 먹히는가, 아니면 선거에서 누가 이길 것인지, 어떻게 해야 이길 것인지 같은 굉장히 심각한 이슈들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무거운 주제들도 빠짐없이 재미있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1. 단순한 사례 모음. 혹은 

2. 그것을 통한 새로운 개념의 제시.

정확하게 말하면 저자의 아이디어는 그 사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여러 사례들과 함께 두루뭉술한 큰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가 제시한 ‘빅데이터 분석의 힘’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1. 새로운 유형의 데이터 제공

2. 솔직한 데이터 제공

3. 작은 집단도 클로즈업해서 볼 수 있는 것

4. 인과적 실험의 실행 가능성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기대한 구체적 방법론은 아니다. 

저자는 마지막까지 어떤 분명한 법칙이나 방식을 제시하지 못한다.

뭔가 그럴듯한 목표를 계속해서 장황하게 약속하긴 하는데, 끝까지 딱히 뭔가를 내놓는 건 아니다. 


엔딩에서도 계속 결론 내리기를 망설이다가 대충 얼버무리고 만다. 마지막 챕터의 제목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책을 끝까지 읽을까’인데, 경제학 분야 책은 보통 완독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면서 은근히 독자들 탓으로 돌린다. 마지막 문장이 참 걸작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을 적절한 방법으로 끝맺을 것이다. 데이터에 따라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행동에 따라서 말이다. 나는 친구들과 맥주를 한잔하고 이 망할 결론을 그만 쓸 것이다. 빅데이터가 말하길 여기까지 읽고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니까. p. 324

     

저자는 뭔가 대단한 개념을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만을 내보이다가 결국 도망쳐 버린다. 책의 완성도를 낮추는 치명적인 단점이다. 정말 아쉽다. 왜냐하면 이 책이 정말 재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법칙’이나 ‘개념’, 혹은 ‘방법론’을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에서만 벗어나면 긍정적인 결말도 쉽게 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데이터에는 이야기가 있다’(p. 236)라는 챕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빅데이터 분석이 인간 본성, 사회적 현상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지표들을 제시한다는 건 위에서도 이야기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왜 그런 지표들이 드러나는지에 대한 이유를 파고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저 그렇다는 것만 알고 그것을 이용하면 그만이다. 

     

예측을 할 때는 어떤 것이 효과가 있는지만 알면 되고 그 이유까지 알 필요는 없다. p. 92

     

그게 한계이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상상력이 자극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게 바로 내가 ‘데이터에는 이야기가 있다’라는 챕터에 주목하는 이유다.

     

조사대상인 개개인의 사람들은 모두 데이터 속으로 사라진다. 더 정확한 내 느낌은 데이터 속으로 ‘숨는다’. 모든 적나라한 욕망들이 숫자로만 드러난다. 그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혹은, 때때로 이해할 수 없기도 하다. 여기가 바로 상상력이 자극되는 부분이다. 알 것 같다가도 모를 그 부분.

     

그렇게 상상을 하다 보면 나조차도 데이터 앞에서 숨는 셈이 된다. 우리는 숨어서 남의 속마음 지켜보는 걸 즐긴다. 영화관에 앉아서 홍상수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키득거린다. 어떤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다. 작가도 분명 이 장점을 알고 있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여타의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이다. 그것은 데이터와 수치를 기반으로 한다. 생동감 있고 광범위하다. 데이터가 너무도 풍성해서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을 시각화 할 수 있을 정도다. 에드먼턴의 물 소비를 분단위로 확대하면 피리어드가 끝날 때 소파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필라델피아에서 마이애미로 이주해서 탈세를 시작한 사람들을 확대하면, 나는 이 사람들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세금을 덜 내는 방법을 배우는 장면을 그릴 수 있다. 연령별로 야구팬을 확대하면 나는 나의 어린 시절과 내 남동생의 어린 시절, 여덟 살 때 자신들을 끌어들인 팀을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성인 남성 수백만 명을 그릴 수 있다. p. 237

     

절대적인 다수에 대한 상상은 언제나 어렵다. 그 다수를 구성하는 개개인을 상상하는 건 더 어렵다. 일반인들이 가진 알량한 경험과 지식으로는 그 전체의 단 10퍼센트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은 더 복잡해지고 더 빠르게 변하고 있지 않은가. 


빅데이터의 활용 방안은 훨씬 더 광범위해질 것이고, 전문화될 테지만, 바로 이런 상상력 자극의 매체로서, 인간과 사회를 상상하는 아주 좋은 단서로서의 가치도 크다고 생각한다. 빅데이터는 아무도 해주지 않는 솔직한 속 얘기다.

     

모두 트럼프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뽑혔는가. 작가의 연구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나는 그것을 보고 박근혜가 당선됐을 당시 그것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던 국내 언론들이 생각났다. 


오바마를 뽑았던 사람과 트럼프를 뽑았던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람일까. 박근혜를 끌어내린 사람들과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일까.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내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의 사용자는 딱히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온라인에서 더 솔직하다. 겉으로 표방하는 정치적 입장과는 다르게 온라인에서는 그 높은 벽을 쉽게 넘나든다.


미국 내에 해결되지 않은 증오와 편견이 많이 숨어 있었던 것처럼 우리 사회도 그런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좀 더 솔직하게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좀 더 자주, 좀 더 구체적으로 서로의 속마음을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에게 빅데이터가 주는 가능성은 희망적이다.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빅데이터는 그 거짓말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가장 놀라운 부분이자, 가장 재밌고 흥미로운 부분이면서,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아쉬운 부분(실은 저자가 가장 아쉬워하고 있는)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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