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촛불이다 - 광장에서 함께한 1700만의 목소리
장윤선 지음 / 창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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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촛불집회에 대한 기록물이다. 그런데 촛불집회가 애당초 박근혜 정부에 대한 울분이 터져 나온 사건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록일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촛불집회를 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잊고 있던 진기록들을 다시 접하니 말문이 막힌다. 대통령 지지율 20대 ‘0%’. 스무 차례나 연속으로 계속된 촛불집회. 전국 1700만 명의 촛불집회 참가자. 등등. 이런 나라를 잘 살아냈구나 싶어서 가슴이 철렁해진다.

  

“(…) 우리 사회 기득권세력이 이렇게 부도덕하고 이렇게 천박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정말 상상 그 이상이군요. 이런 수준의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휘두르는 동안 우리가 살아낸 세월이 참 억울해요. (…)” p. 166-167, 배우 문성근

  

요즘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면 벌써 격세지감이 느껴지고, 촛불 국면 당시가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잊고 있던 한탄이 떠오른다. ‘이게 나라냐?’ 

남북정상회담이 너무 쉽게 이뤄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쉽게 서로의 경계를 넘는 남북 정상의 모습을 보면서, 진작 이러면 될 것을 이게 뭐가 그렇게 어려웠던가, 헛웃음만 나온다. 그렇다. 지금, 이게 나라다.

  

‘이게 나라냐?’라는 한탄을 통해서 알 수 있지만, 촛불집회는 이 나라가 아직 나라임을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그래서 자원봉사가 넘쳐 났고, 비폭력을 그렇게도 외쳤고, 친절하려고 노력했고 웃으며 즐거우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적폐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그렇게 음흉하고 악독하고 이기적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증명해야 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숨이 막히도록 꽉 조여드는 상황에도 화내는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대개 이런 상황이 되면 누군가 먼저 꼭 신경질을 내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 만원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한둘은 꼭 짜증을 낸다. 짜증은 바이러스처럼 퍼져 전염이 되고 급기야 싸움으로 불붙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광화문광장 촛불 주변에는 미소뿐이었다. 어린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 아빠를 먼저 배려하고, 내 아이 남의 아이 구분하지 않고 애들을 먼저 살폈다. “괜찮으세요?” “미안합니다.” 배려도 많았다. 불의한 권력,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정치집회였지만 현장은 거칠지 않았고 정치적이지도 않았으며 소박하고 매우 따뜻했다. p. 52-53

  

“제가요, 집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제 일흔셋입니다. 그런데 왜 꼭 여기를 왔느냐, 이유가 있지요. 역사의 이 현장에서 그들과 같은 공범이 되지 않으려고 왔습니다. 그러려면 이 광장에 나와 함께 외쳐야만 공범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p. 158

  

이 나라는 위기가 있을 때마다 정부는 무능하고 국민들이 나서서 일을 해결한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억울함을, 우리의 결백함을 거듭 증명해 보여야 했다. 정말 피곤한 나라다.

  

돌이켜보건대, 촛불집회가 계속해서 국민들에게 외쳤던 것은 ‘국민이 곧 국가권력’이라는 아주 당연하고 기본적인 사실이다. 그래서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부 청사 건물 외벽에 레이저로 구호를 쏘는 것이었고, 청와대 앞 100미터까지 행진할 수 있는 것이고,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한 출판사에서 헌법 책을 무료로 나눠줬고, 10분 만에 동이 났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 살벌한 ‘갑의 나라’에서, 갑질의 극단인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앞에서, 그 당연한 사실, 국민이 곧 국가라는 사실을 되찾는 것은 중요했다.

그래서 의외로 시민들의 인터뷰 중에는 적폐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부분이 많았다. 국민들에게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켜줬다는 것이다.

  

“(…)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할 때에도 시민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때가 5000명 정도 돼요. 그러니 이번에 그 4배가 더 나온 겁니다. 2만 춘천 시민들이 김진태 의원 사무실 앞 6차선 도로에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하여간에 이렇게 많은 춘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게 한 건 김진태 의원 공이 커요. 김진태 의원이 춘천 시민을 촛불로 단결하게 해줬어요.” p. 158

  

(김진태 의원은 당시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말로 촛불집회에 기름을 부었다)


확실히 대한민국은 촛불집회 이후로 더 용기 있어졌다. 적폐를 적폐라 말하고, 부정을 부정이라 말하며 여기저기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촛불집회 때도 그랬다. 적폐들은 박근혜와 최순실만이 아니었다. 재벌 문제, 노동문제, 위안부 문제 모든 약자들이 입을 열었고, 모든 폐부가 터져 나왔다. 촛불이 끝났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 적폐 청산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계속해서 촛불을 들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이제는 걷잡을 수 없다. 시대는 변했고 국민도 변했다.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는 촛불집회 연설의 마지막을 ‘모두 조심하십시오.’라는 말로 맺었다. 우리가 촛불을 잊고 지낸다면 적폐는 다시 우리를 옥죄어올 것이다. 2016년의 촛불은 미래의 우리에게 계속해서 경고한다. 모두 조심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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