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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동력 -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는 힘
호리에 다카후미 지음, 김정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다동력이란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는 힘’을 말한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평생 한 가지 일만 하는 ‘한 우물 파기’식으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고, 다동력을 동원해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생존방식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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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을 대체할 사람이 있는 한 여러분의 몸값은 오르지 않는다.
복수의 직함을 곱해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존재가 되자.
온갖 산업의 ‘장벽’이 무너진 지금, 하나의 직함에 집착하면 안 된다. p.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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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터 파격적인 타이틀들이 이어진다.
기존 상식들을 뒤집는 반전의 연속이다.
<이제 ‘노하우’는 가치가 없다>
<성실함의 세뇌에서 벗어나라>
<‘적당히 해서는 안 돼’라는 선입견도 버려라>
<졸속 실행이 성공을 부른다>
눈이 번쩍 뜨이는 말들이다.
저자는 계속해서 패러다임을 바꾸라고 요구하며, 자신의 업무 스타일을 올바른 예로써 계속해서 나열한다.
이렇게 과감하게 말하는 저자는 어떤 사람인가 싶어서 검색해 보니 이런 기사가 뜬다.
[월드피플]히틀러 풍자? 또 논란 빚은 ‘호리에몬’ 호리에 다카후미 전 라이브도어 사장
(https://goo.gl/GtGv1B)
심상치 않은 타이틀이다. 이어지는 소개글이 대단하다.
“호리에는 2000년대 초반 일본 벤처신화의 총아였다. 1996년 도쿄대를 중퇴하고 벤처기업 ‘온 더 에지’를 세운 뒤 연이은 인수·합병으로 기업 규모를 키우고, 포털사이트 라이브도어를 출범시켰다. 이후 프로야구 구단 긴테스 버팔로와 민영방송 후지TV의 경영권 인수를 시도하면서 화제를 불러모았다. 그는 위계질서가 강한 일본의 틀을 깨는 파격의 대명사였다.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등장해 일본 사회의 폐쇄성을 질타하고, <돈 버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같은 책을 쓰기도 했다. 이 같은 점이 젊은이들로부터 갈채를 받으면서 일본의 국민적 만화 캐릭터인 도라에몬을 빗대 ‘호리에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일본에서도 파격으로 받아들여지는 사람 같았다. 이후에도 국회의원 출마라던가 징역을 살았다던가 하는 극단을 오가는 경력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마음 한구석에 ‘잘 나가는 저자나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라거나, 혹은 저자가 ‘실무자’라기 보다는 ‘기획자’에 가깝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성격 자체가 산만한 사람들에게 적합한 개념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다동력이라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라기보다는 원래 특정 성향의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능력에 가깝다. 하지만 이전까지 무시 돼 왔던(혹은 억압 돼 왔던) 그 능력이 이제 무시할 수 없는, 더 중요한 능력으로 부각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앞으로는 산만한 사람들이 유리한 시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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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다동력’이 부정적인 능력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다동력을 업무에 활용할 상황은 많지 않았고, 다동력을 지닌 사람은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앞으로의 시대에는 다동력이 가장 필요한 능력이 될 것이다. p.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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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은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명쾌하고 시원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창피당한 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다>라던가, ‘자식의 도시락을 정성들여 싸느니 돈을 주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던지, <회의의 99퍼센트는 필요없다>, ‘청소는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지 않기 때문에 인생에서 없애버렸다’라던지 하는 말들은 불필요한 강박과 겉치레, 의무감에 쌓여 있는 현대인들에게 일말의 해방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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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황하게 이야기해서는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으며, “그러면 내일 다시 회의를 계속하겠습니다”라는 식으로 회의가 길어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는 평생 가도 일이 끝나지 않는다. 3원칙을 철저히 지켜서 한 시간이 걸리던 회의를 30분으로, 그리고 15분으로 줄이자. p.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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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동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고,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처럼 ‘달달한’ 말들로 책을 시작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동력의 기본은 그런 파격이 아니다. 오히려 기본기와 거기서 오는 통찰력을 기반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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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액’이 되는, 시대를 한두 걸음 앞서 나가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시스템의 본질과 역사의 변천에 바탕을 둔 깊은 교양을 얻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교양이 없는 사람은 ‘지금’이라는 시대의 변화에 휘둘려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 톱니바퀴로 끝나고 만다. 반대로 ‘교양’이 있으면 장르를 횡단하는 ‘원액’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표면적인 정보나 노하우만 익히지 말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역사의 내면까지 깊게 파고들어 본질을 이해하자. p.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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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뒤로 갈수록 ‘교양을 쌓으라거나’, 여러가지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 가지에 몰입해야 한다거나,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나지 않고, 할 필요가 없는 일들은 안 해야 한다는, 이전에도 중요하게 생각됐던 기본적인 항목들이 달라붙는다.
파격으로 보이던 이유는 다동력이라는 개념을 실질적으로 적용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가 현재 우리의 모습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다동력을 이해하고 나면 그 파격은 자연스럽게 수긍하게 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현재 산업 전반과 기업문화에 만연한 쓸데없는 절차와 고정관념들을 지적하는 것에 더 가깝다. 어느 정도 막연하게나마 인지하고 있던 문제들이기에 수긍이 쉽다.
시대는 바뀌었고, 거기에 걸맞는 행동지침은 ‘다동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결국 궁극적으로 미래의 직업 개념이 바뀌어야 하고, 바뀔 수밖에 없음을 납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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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가야 한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야 한다.
자료는 종이에 작성해서 건네야 한다.
이런 아무 근거도 없는 생각을 바꾸기만 해도 단숨에 업무를 효율화할 수 있다. p.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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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보니 거꾸로 ‘다동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변화하는 시대에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이나 업무 방식이 무엇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기도 하다.
더더욱 빨라지고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그만큼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아졌고, 할 일이 많아진 만큼 본인의 흥미와 체력, 스트레스 관리는 더 중요해 진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가 체감하는 사회적 트렌드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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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많은 프로젝트를 끌어안고 있다 해도 수면 시간을 줄여서는 안 된다. 바꿔야 할 것은 일을 하는 방식이며 생산성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죽으면 끝이다. 다동력을 발휘해서 막대한 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언제까지라고 뛰어다닐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p.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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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살면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자고 싶은 만큼 잔다. p.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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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거창하지 않더라도 다동력은 내게 익숙한 개념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동시에 여러 권을 읽는다. 그편이 훨씬 덜 피곤하게 더 많이 읽을 수 있고, 전혀 다른 분야의 책들이 서로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연결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다동력의 장점과 정확하게 부합한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업무의 효율성 증가를 위한 방법들도 많이 제시하고 있긴 하지만 다동력은 경쟁력을 키우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그럼 무엇을 위해 다동력은 필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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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면 하와이에 별장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안전하고 쾌적하기는 하겠지만, 새로운 발견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다. p.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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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의하면 특별한 목표를 따로 두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다동력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동력을 발휘하는 그 순간이 중요한 것이다. 다동력을 발휘하는 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고, 충만한 몰입의 시간이 온다. 그리고 그렇게 인생 자체를 충만하게 채우는 것, 그것이 목표다. 다동력 자체가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최종적인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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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동력’은 대량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생명이 다할 때까지 1초도 낭비하지 않고 인생을 즐기기 위한 삶의 방식이다. p.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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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렇게 결말을 맺는다면 다시 처음에 들었던 ‘특정 성향의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다시금 떠오르기는 한다. 더 나아가서는 ‘저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저자는 계속해서 일본의 관습적 개념과 교육이 족쇄가 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다동력을 발휘 해야 한다는 또 다른 족쇄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산만한 사람이 유리해진 만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본성을 억압해야 하는 건 아닐까.
또 저자가 내세우는 지침들은 효율성을 극대화 하는 것들인데, 그런 효율성 안에 개인의 행복(개인적인 스트레스 관리를 포함한)은 있을지언정 타인과의 교류라거나 타인에게서 얻는 정서적인 면들은 철저하게 배제 되어 있다. 인간은 다동력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일까. 다동력이란 이름 아래 지워지거나 희생된 나머지 삶의 부분들은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관계를 배제한) 개인의 행복, 개인의 사회 활동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 미래가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왔다. 이 책이 그 확실한 증거 중 하나다.
어쨌거나 세상이 변하고 있고, 그 세상에서 다동력이 적합한 대응 중 하나라는 점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다동력은 습득해야 할 능력인 것이다. 일본과 흡사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의미심장한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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