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3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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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겪은 것이 아니다. 선택적인 기억이다. 경험은 철저히 정치적인 것이다. 무엇을 잊고, 무엇을 의미화하는가, 내가 겪은 일은 어떤 것인가. 경험은 저절로 기억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각이 생길 때 비로소 ‘떠오르고‘ 인지되고 해석된다. - P102

거듭 강조하건대 모든 생물체는 문화와 환경에 따라 자신의 몸을 변형하며 그 변화는 다시 자연상태에 영향을 끼친다. 이것이 생물학이다. 생물학과 생물학적 사고(생물학적 본질주의)는 반대말이다. 젠더, 퀴어, 섹슈얼리티 문제가 정치학으로 간주되기 가장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연화(化) 때문이다.
가장 사회적인 구성물을 자연의 법칙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이 세상 어디에도 자연의 법칙은 없다. 자연의 법칙이라고 간주되는 인간의 사고방식이 있을 뿐이다. 언제나 문제는 ‘무엇을 자연이라고 보는가‘, ‘자연의 범주는 누가 정하는가‘이다. 그것이 권력이고 지식이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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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3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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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지녀야 한다.", "실력을 키워야 한다.", "억울하면 출세해라."…… 어느 시대에나 나타나는 지배 세력의 지상 명령이고, 비극의 씨앗이다. 인간의 모든 소유욕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물리적 자원, 능력, 관계, 힘, 사랑………… 이 모든 것은 영향력으로서 권력이다. 이러한 권력 개념에서 갈등과 분쟁, 전쟁, 부패는 필연적이다. 현실 정치에 대한 혐오는 여기서 나온다. 집권(執權), 권력 투쟁, 권불십년,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 같은 표현은 모두 권력을 구체적인 영향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결국 권력의 최종은 무기(폭력)이고, 이 개념 앞에서 인간의 모든 지성과 윤리는 중단된다. - P73

권력이 힘과 영향력과 통제력이 아니라 책임감과 보살핌 노동이라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권력을 원하겠는가. 이때 권력은 ‘귀찮은 노동‘이다. 권력을 책임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리를 고사한다. 책임감으로서 권력일 때 우리는 그것을 소명, 사명감이라고 부른다. - P80

나는 인간과 사회의 ‘질‘은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마음과 지성의 용량(capacity)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 P85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각자의 몸이다.
이 모순, 아니 양면을 잊으면 안 된다. 이것은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 데서 영원히 이슈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아무리 아파도 내 고통을 대신할 사람은 없다.",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길"…………. 미국 정신의학자 어빈 얄롬은 이렇게 위로한다(그가 실존주의자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모든 이들은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는다. 그러나 배에 혼자 타고 있더라도 다른 배들의 불빛을 가까이 할 수 있다면 한결 안심이 된다." 조금 다르게 쓰면 삶의 유일한 위안은 우리 모두 비록 깜깜하고추운 밤바다를 혼자 표류하고 있지만, 반짝이는 등대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나마 소통하고 있다는 데 있다. - P86

이 책의 부제는 ‘고통과 함께함에 대한 성찰‘이다. 나는 성찰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단어 자체가 남발되는 것도 문제지만 ‘아름다운 다짐‘으로 읽히는 어감이 강하기 때문이다.
영어 ‘reflexive‘의 번역어인 성찰(省察)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반성(反省)이 아니다. 자신에게로 끊임없이 되돌아옴(그리고 다시 출발), 재귀(再)의 연속을 말한다. 영어의 ’self‘로 끝나는 ‘재귀대명사‘의 ‘재귀‘가 그것이다. 재귀가 반복될 때 우리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의 상태를 산다. 즉 삶은 항상적인 상태가 없다(無常). 언제나 갱신 중이라는 의미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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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3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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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는 육체적, 정치적 차이가 있다. 그것은 위계이다. 모든 고통은 같지 않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자기 상처가 제일 큰법이다. 나도 내 상처가 제일 크다. 나는 다음과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 내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 나는 ‘사회 정의‘나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는다는 생각에서 그들의 요구에 응한다. → 오해받거나 배신을 당한다. 시간, 돈, 평판 등에서 ‘큰 손해를 본다. → 배신감, 상처, 자책감에 시달린다. → 분노로 시간을 낭비한다. → 복수할 방법에 골몰한다. → 해결 방안이 없음을 깨닫는다.→ 이 과정에서 일상생활의 붕괴가 지속된다. → 어쩔 수 없이 생활전선에 복귀한다. → 몸에 부상을 입은 채 잊는다, 잊게 된다, 잊힌다.
내게 용서는 저절로 잊히는 것이지, 용서를 위해 고민하거나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내겐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스트레스고 참을 수 없는 부정의다. 내가 생각하는 용서는 관련된 사건을 잊는 것이다. 사건을 무시한다(ignore). 살기 위해 나 자신에게 몰두하고, 그 일을 잊는다. 물론 가해자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다시는 접촉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가 일반 법칙이 될 수는 없다. 나의 완벽주의 성향, 결벽증, 비사회성에 상응하는 능력은 없지만, 일중독과 자기 몰입성향이 ‘용서‘ 따위를 잊게 해주는 것 같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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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 P32

메스꺼움이 가시자 어쩐지 무척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감정이나 생각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곁에 있는 유나에 대한 사랑이 쿵쿵거리는 내 심장 소리와 함께 피부로 느껴졌다. 평생을 함께한 쑥스러움과 부끄러움이 힘을 잃었고 알 수 없는 용기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올랐다. 내가 늘 꿈꾸던 내 모습, 우물쭈물하지 않고 하고 싶은말을 하는 용기 있는 모습이 겨우 소주 몇 모금에 이렇게 쉽게 주어지는 것이었나. - P21

솔직함도 마음이 강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태도인 것 같아. 내가 강한 사람이었다면 너의 눈을 보고 말했을 거야. 지호야, 너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한 친구야. 너는 나를 판단하지 않았어. 너와 함께 있으면 온전해지는 기분이 들었어. 나도 너와 함께 헬싱키로 가고 싶지만 우리 식구들은 곧 쫓겨나듯 한국으로 가야 할 거고 나는 홀로 이 나라에 남아서 모든 일을 잘 해결할 자신이 없어. 이곳은 2년 가까운 시간을 살아도 내게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너를 잃는 것이 아파. 나의 무능력과 약함 때문에 이곳에 홀로 설 수 없는 내가 밉고 부끄러워.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마치 한국이 이곳보다 내게 훨씬 더 좋은 곳이고, 너 정도는 대체할 친구들이 많다는 식으로 허세를 부렸어. 그리고 다시 겨울이 시작되던 때에 우리 가족의 한국행이 정해졌지. 막막하고 답답했지만 그때는 그게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변화를 거부하며 사는 것이 겁이 많고 불안이 많은 나에게는 안전한 선택지였으니까.
지호야, 나는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어느 시점까지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었어. 큰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덜 상처받고, 덜 위험한 길만을 골라서 갔지. 그리고 그건 언제나 내 마음속 욕구와는 다른 길이었던 것 같아. 계속 그런 식으로만 살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게 되더라. - P82

하지만 자신의 내면만큼은 그분들의 간섭이 미치지 않는다는 걸 해주는 믿음을 얻으며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도 내면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곳에서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해주는 조용한 성전에 앉아서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채반 같은 마음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를 인정하게 된 것도 아무리 바가지로 물을 떠서 담으려고 해도 채반 같은 마음에는 조금의 물도 머무를 수 없었다. 신을 받아들였다는 건………… 무려 신의 사랑을 체험했다는건 채반에 더는 물을 붓지 않고 깊은 물속에 채반을 던지는 일 같았다. 그건 입을 열어서 누구와 나누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소중한 경험이었다. 설명할 수도, 묘사할 수고 없는 일이기도 했다. 적어도 해주에게 믿음이라는 건 누군가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은 가장 사적인 영역이었다. - P107

현주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미리는 벽에 부딪힌 기분을 느꼈다. 왜 자신의 마음을 현주가 정확히 알아주기를 바랐던 걸까. 왜 그토록 현주에게 이해받고 싶었던 걸까. 그러면서도 미리는 한 번씩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고 현주는 그런 미리의 이야기를 어린애의 투정처럼 받아들였다. 그래서 미리는 어느 순간 현주로부터 자신의 한 부분을 이해받는 것을 포기했다. 최악의 인정 욕구는 자기 아픔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일지도 몰랐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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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영 지음,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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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꺼움이 가시자 어쩐지 무척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감정이나 생각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곁에 있는 유나에 대한 사랑이 쿵쿵거리는 내 심장 소리와 함께 피부로 느껴졌다. 평생을 함께한 쑥스러움과 부끄러움이 힘을 잃었고 알 수 없는 용기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올랐다. 내가 늘 꿈꾸던 내 모습, 우물쭈물하지 않고 하고 싶은말을 하는 용기 있는 모습이 겨우 소주 몇 모금에 이렇게 쉽게 주어지는 것이었나.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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