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살원 - 밥만 먹여 돌려보내는 엉터리 의원 점선면 시리즈 3
안담.한유리.곽예인 지음 / 위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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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 생추어리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고 하는 운동이 아니잖아요. 먼저 해본 선배나 선생님이 있어서 뭔가 막힐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가끔은 그 안에 또래밖에 없다는 게 좀 답답할 것도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 같이 헤쳐나가는 것들이 지금 여기 모인 사람들을 얼마나 강하게 연결시키는지 느낄 때, 그런 과정을 미리 다 겪어봐서 사람이든 사안이든 좀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된 사람도 만나고 싶을 것 같아요. 어떤 때는서로 지금 상황을 너무 잘 알아서,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상대방의 어려움, 고통을 볼 때 오히려 위로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이걸 완충해줄 거리가 우리 사이에 조금도 없을 때, 정말 모두가 동시에 고통받고 있을 때.
유리 : (웃음) 맞아,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면 아무도 서로를 돌볼 수가 없고 그냥 각자의 부정적인 것들이 서로를 향할 수도 있죠. 나도 너랑 똑같이 아픈데, 이런 식으로요.
담 : 그래서 전화기 붙잡고 서로 "네가 여기로 와야 될 것같은데" 하는. (웃음)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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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원 - 밥만 먹여 돌려보내는 엉터리 의원 점선면 시리즈 3
안담.한유리.곽예인 지음 / 위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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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그 자체로 의미가 다 전달되는 게 아니잖아요. 말 안에 뭔가를 심어서 전할 수도 있죠. ‘예스‘지만 사실은 ‘노’인 경우도 있고요. 같은 사람에게 수없이 동의를 구하고 수락받고 거절당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진짜 ‘예스‘와 진짜 ‘노‘를 읽게 돼요. ‘이 사람은 나한테 진심이 아니구나’라든가, ‘아, 이 사람은 이제 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편안하구나‘라든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나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최초에 뭘 하고 싶었는지 잘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 행동의 동기를 잘 아는 거. 그러고 나면 나머지는 어차피 상대하고 같이 만드는 거니까. 경계 언저리에서 형태가 결정되고, 그것이 매우 편안하죠, 왜냐하면 공동의 책임이라서.
혜정하고 관계를 맺을 때 ’동의‘의 문제를 진짜 고민을 많이 했어요. 혜정이 2017년 여름에 탈시설하고 5년이 지났는데요. 그 사이에 어느 정도 답을 찾았죠. ’미안하지만 이런 언니를 둔 너의 죄다.‘ - P164

은빈 : 그러면 누군가를 계속 서운하게 만든다는 감각이 생기기도 하나요?
혜영 : 그럼요. 맞아요. 리더가 된다는 건 그런 거죠. 그러니까 리더는 결국은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얘기를 다 듣고 나서 어떤 방향으로든 최종 선택을 내리는 사람,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죠.
그 결과가 때로는 멤버의 서운함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어떤 손해를 감당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죠. 반대로 결과가 좋으면 또 영광을 누리게 되기도 하지만요. 리더는 선택에 책임을 지고 그 책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해야 하죠. 모든 의견의 평균을 내서 결정을 내리는 조직이 좋은 조직은 아니니까요. 대신 어떤 의견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려고 하죠. - P178

그렇게 헤매다가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신형철 평론가가 신긴 <인생의 역사>를 가지고 강의를 한다는 포스터를 봤어요. 제목이 ‘사랑과 애도의 노래‘인 거예요.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서 신형철 평론가가 그러시더라고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최대 애도다. 말하자면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애도, 할 수 있는 걸 다 하는 애도가 필요하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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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담.한유리.곽예인 지음 / 위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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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 나도 원하는 물건과 사게 되는 물건 간의 갭을 견디기가 어려울 때가 많았어. 어떤 밤에는 맘에 안 드는 물건 하나를 노려보면서 내가 저것 때문에 죽을 것같아… 그러느라 못 자는 거야.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거의 빈티지 옷을 사는데, 예전엔 가끔 새옷 입고 싶다, 새 헌 옷 말고, 그런 생각 했었어요. 비건 되고 나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이제 빈티지 옷으로 옷장이 가득 차 있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거야. 자랑스럽게까지 느껴져. 내가 가난해서 이런 게 아니라 윤리적이어서 그런 거라고 거창하게 의미 부여하고.

유리 : 그런 얘기 하잖아, 담이. "넝마주이 윤리의 시대가 올거다."

담 : 그러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 있어야 돼. 모두가 가난한 이들한테 배워야 하는 시대가 올 거야. - P83

고생하셨어요… 이런 걸 보면 급진적이고 화 많은 사람이 집단마다 꼭 필요하다니까!
한편으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현실 정치에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설득해야 돼, 그리고 설득이 성공하려면 중도적인 입장이 최고야. 근데 그 중도적인 입장, 타협안이라는 게 사실은 가장 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가장 변화하고 싶은 사람이 열심히 싸워서 찾아진 선이잖아요. 그런데도 결과만 보고 "그것 봐라, 극단은 안 먹히지?" 이런 말 들으면 좀 서운하죠. 누가 싸워서 여기까지 온 건데. - P114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양보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말이 사무쳐요. 내가 언제는 당사자이고 언제는 연대자인지 무 자르듯 경계를 그을 수 있는 것은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우리가 대부분의 상황에서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 연대자이고, 심지어는 가해자에 더 가까울 거라는 사실을 상기하려고 노력해요. 연대자의 위치에 선 사람은 ‘나는 내 일도 아닌데도 대의에 복무하고 있어‘라는 알량한 자기 만족감이나 시혜적인 태도를 경계하고 운동에 방해나 되지 않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하죠. 어떤 차원에서 구조적 폭력의 피해자였다 하더라도 그 위치가 영속적인 것도 아니고, 한 차원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다른 차원에서는 얼마든지 가해자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그런 날이 있는 것 같아요.
도저히 참아지지 않는 날. 언제까지 피해자의 자리에만 머무를 건데? 대체 어디까지 스스로의 사정을 봐줄 건데? 언제까지 우리가 힘을 가지지 못했음을 연민하기만 하고,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않을 작정인데? 그런 질문이 끓어오르는 날이요.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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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담.한유리.곽예인 지음 / 위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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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기돌봄이란 말을 보면, 살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자기돌봄을 잘 안 하는 타입이거든요. 죽음에 대한 열망과 거리두기를 실패한 삶을 살고있어서... 제 몸을 돌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해도 한때에 지나지 않고요. 자기 몸을 돌보고, 자신에게 좋은 것을 스스로 제공하고 싶은 마음과 노력을 놓치지 않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그런 걸 몰라도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죠? 저처럼. - P26

예를 들어 경계성 인격장애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BPD)의 경우, 저는 그 증상이 왔을 때 모두의 돌봄을 쳐냈어요. ‘어차피 이렇게 돌봐주다가 곧 나를 버리고 떠날 거면서 왜 돌봄을 제공하려고 드는 거지?‘ 하는 불신과 원망이 있었어요. 근데 최근에 BPD가 왔을 때는 ‘왜 사람들이 날 돌보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웃음) "나 같으면 그렇게 안 했어"라고 몰아붙이고, 그러면 상대는 "네가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하고, 저는 또 "그게 변명이야?" 하면서 분노를 하고. (웃음)

연대라는 건 아름답지 않은 거구나, 엄청 싸우면서 동행하는 거구나… - P39

모든 직업에 윤리관이 필요하지만, 활동가들은 유독 윤리적인 이상과 실천의 괴리에 더 많이 좌절하는 거 같아요. 실천이 어려운 데에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잖아요.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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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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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언니도 내가 걱정할까봐 자기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았어. 하지만 그게 그때 우리가 솔직하지 않았던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아.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두는 것. 모른 척하는 것.
그게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이었던 거야.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으로 힘이 되어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방식이기도 했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야. 다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들쑤셔봤자 문제만 더 커질 뿐이라고. -답신- - P150

내 마음 안에서 나는 판관이었으니까, 그게 내 직업이었으니까. 나는 언니를 내 마음의 피고인석에 자주 앉혔어. 언니를 내려다보며 언니의 죄를 묻고 언니를 내 마음에서 버리고자 했지. 그게 내가 나를 버리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 채로.
그때 내 마음에서 나는 옳고 언니는 그르고, 나는 맞고 언니는 틀리고, 나는 알고 언니는 모르고, 나는 할 수 있고 언니는 할 수없고, 나는 용감하고 언니는 비겁하고, 나는 독립적이고 언니는 의존적이고, 나는 떳떳하고 언니는 비굴하고, 나는 배려하고 언니는 이기적이고, 나는 언니를 지켰고 언니는 나를 버렸지. 모든 것이 분명해서 더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믿었어.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그중 어느 하나도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아. -답신-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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