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외모를 비롯해 바깥을 향한 사회적 자아는 소위 정상성에 저항하는 말과 글로 의식을 관리해왔다. 하지만 내 몸을 향한 사적 자아는 정상성에 발목 잡혀 65세 자신의 이빨 사정에 대해서는 흉측하다는 느낌을 냉큼 수용하며 투항해버리는 이율배반. 그 이율배반의 한편에서 의식 말고 감각은 자신의 흉측함을 놓고 슬픔과 자괴라는 자기 연민으로 흘러들지만, 타자의 흉측함을 놓고는 공포감에 몸 반응까지 동원해 멸과 해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보는 자기애. 그 자기애가 이타와 공존을 만나지 못하고 편향성을 띠다보면 이기를 넘어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 적자생존과 인종주의와 종 차별주의, 우생학과 파시즘과 전쟁 등 광기의 정치사회로 이어진다.
그러니 자기애에서 촉발된 두려움이나 공포감을 뒤늦게라도 늘 돌아보아야 한다. 흉측한 치아나 얼굴을 그대로 가지고 살 수밖에 없는 사유는 대부분 빈곤이다. 그 흉측함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빈곤으로 인한 생애 내력과 심리적이고 일상적인 사정들이다. 이를 반복해 돌아보고 가하며 뒤늦게라도 감수성과 태도를 거듭 계발한다면, 갓난아기 때부터 생긴 심리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에서 차차 벗어날 수 있다. 그 벗어남이야말로 나의 취약함에서 나아가 다양한 소수자들을 연결하는 끈을 만들고 잇는 일이며, 평화와 공존과 순환의 시작점이고, 우리의 불안과 고착된 감각과 고정관념을 이용해 돈을 갈취하고 권력을 확장하는 세력들에 대한 대항이다. - P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