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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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책임지려는 사람에겐 권위를 인정해줘야 한다. - P135

그들 역시 나를 저렇게 사랑했겠구나. 딸이어서 홀대받았다는 내 평생의 예민한 차별의 기억과 인식과는 별개로, 첫 아이로 아들을 얻은 그들에게 둘째 아기로 얻은 딸인 나는 참 반갑고 예쁜 아가였겠구나. - P140

외부의 무엇을 주시하는 일은, 내 안을 형한 주시와 동시에 진행된다. 혹시라도 부당한 혐오가 묻어 있나 내 속과 시선을 거듭 의심하고 단속한다. - P163

다시 정리하자. 가난은 사람을 흉측하게 ‘보이게‘ 만든다. 이 정리에 머물지 말자. 흉측하다는 문구와 그 표현에 대한 내 심리적 정상성을 계속 더 붙들고 노려보자. 나는 왜 내면이 아닌 외양의 어떠함을 놓고 감히 흉측하다는 혐오의 표현을 사용하는가. - P190

타자의 외모를 비롯해 바깥을 향한 사회적 자아는 소위 정상성에 저항하는 말과 글로 의식을 관리해왔다. 하지만 내 몸을 향한 사적 자아는 정상성에 발목 잡혀 65세 자신의 이빨 사정에 대해서는 흉측하다는 느낌을 냉큼 수용하며 투항해버리는 이율배반. 그 이율배반의 한편에서 의식 말고 감각은 자신의 흉측함을 놓고 슬픔과 자괴라는 자기 연민으로 흘러들지만, 타자의 흉측함을 놓고는 공포감에 몸 반응까지 동원해 멸과 해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보는 자기애. 그 자기애가 이타와 공존을 만나지 못하고 편향성을 띠다보면 이기를 넘어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 적자생존과 인종주의와 종 차별주의, 우생학과 파시즘과 전쟁 등 광기의 정치사회로 이어진다.
그러니 자기애에서 촉발된 두려움이나 공포감을 뒤늦게라도 늘 돌아보아야 한다. 흉측한 치아나 얼굴을 그대로 가지고 살 수밖에 없는 사유는 대부분 빈곤이다. 그 흉측함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빈곤으로 인한 생애 내력과 심리적이고 일상적인 사정들이다. 이를 반복해 돌아보고 가하며 뒤늦게라도 감수성과 태도를 거듭 계발한다면, 갓난아기 때부터 생긴 심리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에서 차차 벗어날 수 있다. 그 벗어남이야말로 나의 취약함에서 나아가 다양한 소수자들을 연결하는 끈을 만들고 잇는 일이며, 평화와 공존과 순환의 시작점이고, 우리의 불안과 고착된 감각과 고정관념을 이용해 돈을 갈취하고 권력을 확장하는 세력들에 대한 대항이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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