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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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문화적 아비투스habitus 이자 습이 연출하는 몸은, 도달하거나 놓치지 않고 싶은 각종 ‘다음‘에 관한 욕망의 장이다. 돈 많은 노인에게는 더욱, 몸은 타인의 시선과 벌이는 각개전투에서 속 시끄러운 갈등과 분열의 장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시간과의 싸움에서 완패가 정해진, 모처럼 외롭고 공정한 전쟁터다. - P204

여성인 내가 생애 동안 일관되게 해온 돌봄노동들은 그 식모들의 노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가족 안이냐 바깥이냐에 따라 임금이 없거나 가장 싸구려 임금이었다. 한편, 저임금이나 일방적으로 특정 성별에게 요구된 것으로 인한 갖은 차별들을 떠나 생각하면, 돌봄노동은 좋은 노동이다. 상품(물신)을 생산하지 않는 노동이어서 신자유주의 강화와 생태파괴에서 비교적 죄가 적은 착한 노동이고, 사회적 약자들의 일상과 관계를 지원하는 살림 노동이며, 생애 내내 모두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상호적이고 공동체적인 호혜의 관계망이다. - P215

늙어 기운이 빠지면서 엄마는 "평생 미친년처럼 살아온거 같아"라는 말을 자주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는 열정적이고 똑똑한 여자야"라는 말로 받았다. 두 문장은 같은 의미다. 내가 한 구술생애사 작업 속 모든 주인공 여자들도 그랬다. 지지받지 못한 열정과 영리함 탓에 엄마들과 할머니들과 내 또래 여자들은 주변과 불화했고, 아픈 여자이자 미쳐버릴 것 같은 여자인 채로도 열나게 자신과 세상을 살아냈다. 물론 하나같이 분열적이었다. - P221

모든 다른 존재 간에는 잠재적이든 노골적이든 다양한 권력관계가 작동한다. ‘반려‘라는 말의 남발은 관계 속 소수자나 소수자성을 삭제한다. 또 바람직한 관계라고 퉁쳐버리거나 인정받고 싶은 기득권자의 발화일 수 있다.
물론 완벽한 건 없다. 나 자신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나는 완벽을 기대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늘 추구와 질문이 있을 뿐이다. 다른 계층과 다른 조건과 다른 설명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추구와 태도와 질문은 늘 날카롭고 새롭게 이어져야 하고, 또한 겸허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한계안에서 살아간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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