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의 개구리가 보는 한국사 - 하버드대 출신 한국학 박사에게 듣는 우리가 몰랐던 우리 역사
마크 피터슨.신채용 지음, 홍석윤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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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당시 상황의 시점으로 평가 되어야 하며,
또한 객관적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즉 우리가 이해하고, 바라보고 싶은 방식의
해석이 아닌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 보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중국, 일본 이내의 지역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스스로 뿐만 아니라 중일 이외의 타국인
으로부터의 객관적 평가가 많이 부족 합니다.

문명을 전수해준 나라로 한수 아래라고 폄하해온 일본의 역사에서 조차 한반도에 대한 이야가는 배제된 듯합니다.

국뽕을 뺀 냉철한 판단을 위해 우리나라를 연구한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합니다. 듣기 좋은 말을 들으며 우쭐하기 보다는 장단점을 듣고 일신 우일신 해야
해야 합니다.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저자인 마크 피터슨의
우물 밖에서의 개관적 시점이 좋습니다.

미, 중, 러, 일의 틈바구니에 끼어있어 지정학적
으로 매우 위험하다는 것은 전쟁의 트리거가 될
수도 있지만, 그 많큼 확장의 기회가 많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지리상 발견과 자유항해를 통한 국제화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대륙의 땅끝나라 반도국이 오늘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블루오션의 다크호스가
되었습니다.
삼면의 큰 바다와 압록강과 대동강은 한반도를
지켜주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기에 고립된 은둔의 나라였습니다.
악플보다 무플의 무관심으로 평화로웠던....

668년 통일신라이후 침략을 많이 받지 않았다는
평가에 동의 합니다. 여진, 거란, 왜구의 노략질을
침략으로 셈한다면 분단 이후 휴전선의 작은 충돌
도 모두 가산되어야 할 것이며,
유럽의 종교, 가문, 왕위계승이나 스키타이, 훈족,
흉노, 몽골 등 유목민족의 침략, 알렉산더, 나폴레옹, 세계대전 등 끊임없이 일어난 전쟁을 본다면 우리
만 피해자였다는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국뽕도 피해의식도 초월한 단일문화와 문명을 지닌 민족이라는 자부심이과 타민족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해 보입니다.
단지 대한민국의 공익이 아닌 세계인의 이익을 생각
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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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인간관계론이 출판된지 80여년이 지났다
본 번역서는 아니지만 카네기 처세술이란 제목의 책을 읽었던게 40년 정도나 흘렀지만 새롭다.

몰랐거나 이해되는 않는 내용은 없지만
흔히 잊고 지내는 삶의 지혜와 같은 내용이다.

인간은 칭찬에 목마른 인정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절대로 비난하지 말고 칭찬을 하라는
것이 카네기의 조언이다.

己所不欲 勿施於人 _공자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바라지 마라
내가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하라_예수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_공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아내의 눈에 키스를 해주면 눈을 감아주고,
아내의 입에 키스를 해주면 잔소리를 멈춘다는
촌천살인의 지혜는 잠언과도 같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너무도 높은 잣대를
기준으로 보기 때문이다.
측은지심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공감력을
확장해보자.

혹시라도 아이를 야단치고 싶다면, 당신은 아마 내가 그러지 말라고 하는걸 상상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나는 야단을 치더라도 미국 저널리즘의 고전 중 하나인
「아들아, 아버지가 잠시 잊고 있었단다Father Forgets를 읽은 다음에 치라고 말하고 싶다.
이 글은 원래 『피플스 홈 저널People’s Home Journal』에 사설의 형태로 실렸다. 저자의
허락을 받아 여기서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가 압축한 글을 싣도록 하겠다.

「아들아, 아버지가 잠시 잊고 있었단다」는 감정이 고조된 순간에 써 내려간 글로,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세대를 건너 사랑받는 글이 되었다. 작가 W. 리빙스턴 라니드W. Livingston Larned는 말했다. "「아들아, 아버지가 잠시 잊고 있었단다」는 수백 권의 잡지와 사보에 실리고 미국 전역의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그만큼 많은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교회에서, 강단에서 이 글을 읽고 싶어 하는 수천 명에게 일일이 허락을 해 주었습니다. 이 글은 셀수
없이 많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방송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대학의 정기간행물이나 고등학교 잡지들도 이 글을 실었습니다. 때로는 사소한
글들이 커다란 인기를 얻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글이 분명 그런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들아, 아버지가 잠시 잊고 있었단다」
들어 보렴, 아들아. 내가 말을 하려는 지금 너는
잠들어 있구나. 조그만 팔 하나는 뺨 아래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있고, 금발머리는 촉촉한 이마에 붙어 있구나. 혼자서 네 방에 가만히 들어 왔단다. 조금 전, 서재에서 서류를 보고 있자니 견디기 힘든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들더구나. 죄책감에 마음이 아픈 채, 아빠는 지금 네 침대
곁에 앉아 있다.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있다. 아들아, 나는 네게 짜증을 부렸다.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수건에 얼굴을 대는 시늉만 한다고 야단쳤다. 신발을 깨끗이
닦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네가 물건들을 바닥에 던졌을 때는 흥분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잔소리를 했구나. 음식을 흘린다, 꼭꼭 씹어 먹지 않는다, 팔꿈치를 식탁에 올려놓는다, 빵에 버터를 너무 많이 바른다. 그런데도 내가 기차를 타러 나가는데 놀러 나가던 너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아빠! 안녕!" 하고 말했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곤 대답이랍시고,
"어깨 좀 쭉 펴!"라고 말했다.
오후 늦게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길을 걸어오다 보니, 네가 보였다. 무릎을 꿇고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다. 긴 양말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너를 앞세우고 집으로 향해서, 네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주었구나. "양말은 비싸다. 네가 사야 하는 처지
였다면, 좀 더 조심했을 테지." 아들아, 아빠가
그렇게 말했다!
기억하니, 아들아? 나중에 내가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네가 수줍은, 상처 입은 표정으로 들어왔던 걸? 일을 방해받은 게 짜증나서 서류 너머로 쳐다보니, 너는 문간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나는 으르렁댔지. "원하는 게 뭐야?"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폭풍처럼 서재를 가로질러 와서 두 팔로 내 목을 껴안고는 키스를 했다. 너의 작은 팔은 하느님이 네 마음속에 꽃피워 놓은 사랑으로 나를 꼭 안아 주고 있었다. 그 꽃은 아무리 무시해도 시들지 않을 꽃 같았다. 그리고 너는 타박타박 계단을 올라 네 방으로 갔다.
그리곤, 아들아,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손에서 서류가 스르르 미끄러져 떨어졌다. 갑자기 커다란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도대체 나는 습관적으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흠잡는 습관, 야단치는 습관.
이게 네가 어린아이인데 대한 나의 보상이었던 거야.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어린 네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고 있었던 거지. 나에게 적용해야 할 잣대를 가지고 너를 판단하고 있었던 거지.
네 성격에는 좋은 점도 많고, 훌륭하고 진실한 점도 많단다. 네 작은 마음은 저 높은 산을 뚫고 올라오는 새벽보다도 넓지. 내게 달려와 잘 자라고 입맞춰 주는 네 행동만 보아도 알 수 있어. 아들아, 오늘 밤엔 그 행동 말고는 내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난 어둠 속에서 네 옆에 이렇게 와 있다. 무릎도 꿇고 있다. 내가 부끄럽구나!
보잘것없는 사과라는 걸 안다. 네가 깨어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하지 못할 말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일부터 이 아빠는 진짜 아빠가 될 거야! 너와 친구가 될 거야. 네가 아프면 같이 아프고, 네가 웃으면 나도 웃을 거야. 짜증내는 말이 나오면 혀를 깨물고 참을 거야.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말할 거야. "아직 아이일 뿐이야, 아주 작은 아이!"
너를 어른처럼 생각하지는 않았나 두렵구나. 하지만 이렇게 작은 침대에 피곤해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너를 보니 넌 정말 여전히 아기구나. 바로 엊그제만 해도 넌 네 엄마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안겨 있었지.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랐구나.
너무 많은 것을 요구 했구나. - P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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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과학 공부 - 볼 것 많은 요즘 어른을 위해 핵심 요약한 과학 이야기
배대웅 지음 / 웨일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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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을 촉발한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시민혁명을 리드한 벤저민 프랭클린의 독립선언문
-경제학의 시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상기 사건들은 모두 1776년에 소개되거나
발표된 것으로 역사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인간을 노동으로 부터 자유롭게 해주었고,
개인의 인권은 존중되고 행복해야 할 존재이고, 인간의 이기심은 당연하다는 이해를 통해
오늘날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만들어 냈다
자본주의가 최상은 아닐지라도
각자에게 선택 할 자유가 보장되는 체제가
전체주의 보다는 낫다

사람의 본질은 자기중심적이며
인정욕구에 충동적이다라는 것을
전제해야만 측은지심을 가질 수 있다

친구의 슬픔을 같이 하기는 쉬우나,
친구의 기쁨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게 사람이다

순수한 기쁨이란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어려움을 겪을때
느끼는 사악한 마음이다_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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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이야기 - 물·불·흙·공기부터 우리의 몸과 문명까지 세상을 만들고 바꾼 118개 원소의 특별한 연대기
팀 제임스 지음, 김주희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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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인 고등학생 시절 화학시간에
주기율표를 외웠던기억이 난다. 거기까지 였다.
대입고시에 물리, 화학보다 생물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라는 통념에 따른 학교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화학˝과목은 강제로 거세 되었다.
물론 생물이 더 쉽고 재미도 있었지만, 화학시간
이면 각자 원하는 공부를 하도록 자습을 시키던,
화학 가르치기를 포기하고도 선생이란 직함을 유지했던 사명감 없던 월급쟁이 직장인은 그래도
성실한 가장었을 거다. * 아돌프 아이히만과 같은

지식수준의 평가를 위한 공부는 재미 없었지만,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공부는
참다운 흥미를 가지게 해준다.
원자의 구조가 우주와 닮았고, 인간이 티끌같이
작은 존재이고 인체가 불과 20여개 원소의 합성
일뿐 이지만,
음양의 조화로운 합성의 메카니즘이 무엇인지?
본능, 지식, 판단 그리고 각자가 세상를 인식하는 관념의 프레임은 어떻게 짜여지는지?
해답은 알수는 없겠지만, 작은 조각의 퍼즐을
맞춰 가는 재미가 있다.

그렇게 살다가 魂飛魄散하여 원초적 원소로
돌아 가는게 ˝원소 이야기˝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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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생활
모리스 메테를링크 지음, 김현영 옮김 / 이너북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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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이 사회적 동물은 아니지만, 가장 진화된
포유류나 그 중 유인원에서도 인간만큼 서로 협력 하며 조직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는 개체는 없다.
그러나 곤충인 개미나 꿀벌의 경우, 인간 공동체
를 훨씬 능가 할 정도로 조직적인사회를 운영
하고 있다는 점에 여러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인간들 간의 능력은 종이 한장 차이라는 말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편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공동체 내에서 생기는 양극화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되는 반면, 꿀벌의 경우 모든 개체는 표준화된 지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정말로 신비롭다
인간은 태어나 백일 정도를 지나야 자아인식이 가능하고, 더하여 2,30년은 키워져야 자생력을
가질 수 있는 반면에 꿀벌은 태어나는 즉시 어떤 학습도 없이 주어진 일을 수행한다.
* 인간은 초기화된 스마트폰과 같으므로 개인의
목적에 따라 재 구성하게 된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서는 생존하기 힘들기 때문에 사회를 구성하였으며,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일부 희생한다는 전제로 규율을 지키며 살아왔다.
사회는 수단이며, 공동체 목적은 개인이라는
것이 인간 사회의 본질이다.

권력과 명예 또는 행복 추구라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목표나 그 크기는 상이하다.
이는 이기적인 인간의 속성이 그러하므로 조직내 에서의 갈등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꿀벌의 세계에서는 여왕벌은 암수를 임의
로 선택하여 낳기도하고, 임의(?)로 선택된 일벌이
여왕으로 양육하거나 또는 분봉시에 남거나 떠나는 대상을 선택하는 모든 것들은 개체인 벌의 입장
에서 일생을 좌우하는 것임에도 어떠한 갈등도 투쟁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신비롭다.
또한 침입자가 있을 경우 공동체를 위해 꺼리낌
없이 자살공격하는 것을 이타적이라 볼 수 있을까?
여왕벌을 중심으로 가계가 꾸려지나, 상대적으로 지능이 떨어지는 여왕벌은 존경은 받지만 스스로 명령하고 지배하는 지도자는 아니다.
새로운 주거지를 찾고, 수십만년 내려온 표준대로 집을 지으며, 일벌들의 업무를 분장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지시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밝혀 지지 않았다.
벌집내에서 보이는 이타적인 행동이 밖에서는 동료의 죽음조차 무관심한 이기적인 행동의 기준이 무엇인지 미스터리 하다.

인간이 자아에 대한 인지력이 생기면 분리불안을 느끼게 된다. 자아는 세계가 아닌 내 중심의 사고를 하게 되므로 타인의 감정이나 의도를 자기 중심적 으로 느끼게 된다.
꿀벌의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지시하는 관리가가 없이도 한치 어긋나지 않는 신비로움을 다음의 두가지로 추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꿀벌은 사전에 해야 할 일이 프로그램되어 태어났다는 것이다.
마치 사전에 셋팅이 완료되어 조립된 로봇트와
같은 모습을 꿀벌들의 공동체에서 보인다.
둘째는 모든 개체의 두뇌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몸은 분리되어 있지만 정신은 하나인, 그래서 지시 하거나 지시를 받지 않아도 한몸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 추론해 본다. 즉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말을하고 때로 걷거나 뛰어갈 때 사전에
눈, 입, 손, 다리와 협의하지 않으며 뇌가 알아서 판단하고 지시를 한다. 수만마리의 꿀벌 집단이 하나의 몸체처럼 연결된 것이라면 집단의 생존을 위해 팔다리와 같은 개체들의 죽음을 이타적이라
하지 않는다.
그러한 가정이 아니라면 미물인 곤충집단이 인간의 사회보다 더욱 우월하게 조직을 운영한다는 것도 이해 할 수 없으며, 딱히 엄청난 권력을 누리는
특권 계층이 없음에도 전체주의적이고 전제주의
적인 통치가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이다

꿀벌의 정신이 꿀벌의 숙명인지 또는 사물, 생명, 본능, 지능, 이성, 영성을 갖게되는 생명체의 진화 과정인지 알 수 없지만 곤충의 세계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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