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륜선 타고 온 포크, 대동여지도 들고 조선을 기록하다 -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의 실존 인물 '조지 포크'의 조선 탐사 일기
조지 클레이튼 포크 지음, 사무엘 홀리 엮음, 조법종 외 옮김 / 알파미디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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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884년 선진 문명국 미국인으로서 아직
문명화 되지 못해 미개해 보였을 조선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수용적인 시각으로
바라봐 주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조차 드라마를 통해 세뇌된 시각으로만 이해하고있던 당시의 시대상황에 다름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서울, 경기, 충청, 전라, 경상도를 관통하는
그의 2차 여행기는 갑신정변이란 사건으로 44일만에 조기종료되었지만 당시는 물론 오늘날 어느 한국인보다도 우리나라의
모든 것들에 관심이 많았던듯 싶다.

미국 공사관 해군무관으로 임명되기전
중국어, 일본어를 통역 할정도로 익혔고
조선에 부임이래 조선말을 터득 할 만큼 총명함과 아울러 조선에 대한 깊은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44일간 1,440km에 달하는 거리를 가마를 타고 다녔다는 사실도 놀랍다. 산넘고 물건너
는 여행길을 하루에 90리(32km)씩 이동 하려면 4km/h속도로 하루 8시간씩의 고된 행군이 이루어 졌을 듯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있 듯이 가렴주구하는
부당한 조세제도를 지적 하였으나, 잘 정리된 경작지와 풍족한 물산 에 대한 내용이 많았던 것으로 보아 당시 식량이 절대적 으로 부족하지는 않았던 듯 싶다.

관리나 양반들이 일반인을 폭행하고 함부로 대했다는 사례가 많았으나, 이는 외국인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으로 곤란하였기 때문
이었고 오히려 감사나 군수와 같이 높은
관직의 관리와 함께하는 자리에 있을때 조차
백성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을 보았을 때 지방수령과 일반 백성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친화적이었던것 같다.

당시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서양에 소개하는 등 조선이란 나라의 풍물이 그들에게 신기한 이야기 거리였을 텐데, 역시 오늘날 우리에게도 지극히 객관적인 외계인(?)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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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레지스탕스의 두 얼굴 - 민족주의가 감춘 우리 영웅들의 화려한 흑역사
진명행 지음 / 양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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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이 옳고 타인은 그르다는 我是他非나 내로남불이 독립군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조직이나 지도자간에도 만연했을 것임은
너무도 당연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에 정당간은 물론 같은 이념을 공유하는 당내에서 조차 파벌을 만들어 이전투구를
하는 것은 국가 발전이나 민주주의를 위함이 아닌 공천이라는 이기적 탐욕 때문이란 것을
볼 때 100년전쯤의 상황은 미루어 짐작된다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고 국민의식이랄 것도 없었던,
삼정의 문란과 매관매직을 일삼았던 권신과 척신 그리고 가렴주구하는 수령이나 아전들의 횡포속에 살아온 백성들에게 민족의식이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당시에도 의병은 기득권 이나 재산을 지키려는 유생이나 재산가였을 뿐이었고,
왕이라는 자가 그런 의병은 물론 자기 아들조차 독살하며 지키려는 권력이 나라나 백성이 아니었음은 모두가 알고 있다.
백성들은 단지 착취를 할 대상이며 수단일 뿐 인간이라는 목적으로서 대우한 적이 전혀 없었던 조선의 위정자 들이 백성들에게 무조건적인 충효를 강요했던 것 자체가 사이코패스인 거다.

이렇듯 조선이란 나라로 부터 인간대접을 받지 못했기에 나름 선진제도를 가진 식민체제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합병 이후 세대는 그런 세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었을 것이다.
이는 일본 군사학교 입시 경쟁율이 50:1, 순사 경쟁율이 17:1일 정도였다는 것을 볼때 독립보다는 호구지책과 출세를 우선시 하는 보편적인 인식을 갖었던 듯 싶다.

피지배 식민지 국민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더 지독하게 악날했던 자들이 부지기수 었을 것임은 완장질, 갑질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은 추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고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시점이 아닌 당시 상황을 감안하여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사를 국민을 가르키려는 수단으로만 이용하려 할때 왜곡이 된다. 일본의 역사왜곡의 욕하기전에 자성의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우리가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로서 양면성을 지닌다는 것은 단지 일본의 강요에 의해 징용되었다는 불가피성으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 "전쟁범죄에 관한 한 조선인은 일본인 취급한다"라는 연합국의 결정은 우리를 일제의 식민지가 아니라 가해 전범국과 동일한 선상에서 판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에 의해 동원된 노무자나 위안부 그리고 군속을 피해자로 보지 않고 포로로 간주했다가 석방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평가를은 연합국이라는 제3자의 인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립운동가로 명망이 
있는 분들은 오늘날유공자로 훈장이 추서되고 존경받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숭고한 뜻과 정신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밝음의 이면에 희생된 피해자로서 존재했다.
는 사실을 부정하면 안된다. 머나먼 이역에서 동포들을 등쳐먹고 살던 사람들의 무장 투쟁이 ‘독립운동‘으로 
포장되는 일이나 자기들끼리 죽이고 죽고관헌에 밀고
하여 경쟁자들을 제거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비록 그 
기상이나목적이 훌륭했을지는 몰라도 그런 과정의 
흠결을 치유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차라리 독립운동을 하지 말든지, 일개 
범부(凡夫)로 살면서사회의 초석이 되는 편이 더 마땅
하지 않았겠는가? 대의를 위한 희생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들어, 목숨 걸고 독립운동하는데, 이름 없는 민초
들 돈 좀뺏을 수 있지, 인질 삼아 끌고 다니거나 협박 
좀 할 수 있지, 그렇게 관대하게 생각할 일인가 싶다. 
독립운동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생각이 다르다고, 돈과 식량을 내놓지 않았다고 독립운동가들 손에 죽은 
사람들의 영혼은 누구에게 위로를 받나? 추구하는 목적이 의롭다고 과정에 불의가 난무하면그 목적은 애당초 
존재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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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
대런 애쓰모글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그리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내용을 통합해서 정리한
듯 싶다. 그러면서도 또 새롭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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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란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허물없어 편하지만 때론 불편하지 않은척 좋은척
하는 가식의 관계가 고착 된다면 서로에게 낭비다

내게 도움이 되는 친구만을 찾는게 다소 이기적인 것 이라면, 상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친구관계를 유지하려는 것 또한 이기적인 거다

관계란 구속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전제되어야 한다
베스트프렌드가 구속이 된다면 그냥 친구이거나
일반적인 지인으로의 다운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베스트 프렌드는 사실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좋은 관계, 두려움이 없는 관계는 늘 일정한 ‘거리‘를 
담보로 한다는 것을 흥미롭고 활력 넘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가벼운 기회만 가져도 인간
관계는 충분하다는 것을.
일정한 거리를두어도 얼마든지 완벽한 친구 관계로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친구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을 인생의 
동행으로 삼아야 한다. 자신을 돌보고 성찰하는 일을 
우선순위 목록 맨위에 올려놓은 사람과 속 깊은 대화
를 나눠야 한다. 그렇지 않은 관계에는어김없이 부정
적 감정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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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적 정책는 이기적인 독재자의 정책이고 포용적 정책은 여민동락하려는 자유민주의 지도자의 소명이다.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은 두 가지 이유에서 
지속되지 못한다.
첫째, 지속적 성장은 혁신이 있어야 하는데, 
혁신은 반드시 창조적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창조적 파괴는 경제적인 면에서 옛것을 새로
운 것으로 갈아치울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기성 권력 기반을 뒤흔들기 마련이다. 착취적 
제도를 장악한 엘리트층은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한 나머지 이를 거부하기 때문에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은 어쩔수 없이 단기에 그친다. 
둘째, 착취적 제도를 장악한 이들이 사회 
전체를 희생시켜가며 자신들의 배를 채울 
수 있으므로 착취적 제도하의 정치권력을 
탐내는 이들이 많아져 수많은 집단과 개인이 
권력 투쟁을 벌이게 된다. 그 결과 착취적 
제도하의 사회에는 정치 불안을 초래할 
만한 강력한 요인이 많아진다.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는 시너지 효과를 
내므로 일단 뿌리내린 착취적 제도는 끈질
기게 거듭되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마찬가지로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에서는 
선순환이 비롯된다. 하지만 악순환이든 
선순환이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날 포용적 제도 속에서 사는 나라 
중에는 역사적으로 착취적 제도가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사회가 그 틀을 깨고 
포용적 제도로 이양한 사례도 더러 있다. 
우리는 이런 이양 사례를 역사를 통해 설명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적 숙명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 P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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