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붉은 손 -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위협하는 중국 공산당의 야욕
클라이브 해밀턴.머라이커 올버그 지음, 홍지수 옮김 / 실레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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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에 이어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으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하는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 민주화 투쟁으로 문민정부를 평화적 촛불시위로 정권을 교체한 가장 민주적인 나라인 우리나라 국민들은
우리나라가 민주적이냐는 설문에 약 65%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이는 서유럽의 선진민주국가 들도 비슷한 수준인데, 반면에 전체주의이고 전제주의적이라 평가받고 있는 공산국가인 중국민은 중국이 민주적이라는 답변이 75%이상이라 한다 

중국은 많은 정당이 있으나 사실은 공산당의 아류내지는 어용인 일당 독재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중국이 민주적이라니 이런 어처구니가 없는 중국인이 참 어이없다 생각이 들지만 또한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적으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부탄이라고 하는데, 그 행복한 사람들에게 너희가 얼마나  헐벗고 불행한 사람인지를 알려 줄 수도 없고 알려 줄 필요가 없듯이...
개인이 누려야 할 권리, 자유, 행복추구에 대한 여러 제약을 받고 있음에도 중국의 공산당이 잘하고 있고
자랑스럽고 민주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국인이  군집생활을 하는 일개미나 일벌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이기심이 아닌 공산당 조직을 위하여 당연히 한몸 희생하겠다는 신념을 가진 로보트와 같은 국민으로 양성 해낸 중국의 공산당은 소련과는 차원이 다른 듯 하다

우리나라가 미친듯이 성장했던 60~80년대 군사독재 체제하의 냉전의 상황에서 교육받은 세대들도  당연히 그런 행동을 해왔다는 점에서는 이해가 되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오늘날 같은 첨단시대에도
한결같은 애국심을 가진 좀비들을 경계해야 한다

아편전쟁으로 유럽국으로 부터 굴욕을 당해온 중국은 와신상담, 도광양회하여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해 전세계를 상대로 치밀한 전쟁을 버리고 있는 듯하다
미국, 유럽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 등 글로벌 전략을 수행하고 있다. 
정부, 기업, 국민은 물론 전세계 퍼저있는 화교 모두가 그들의 외교관이며 스파이이다

중국인들의 맹목적이고 국수주의적 애국심은 주위 국가 들을 경계하게 하곤한다
국가의 통제를 받고 있는 언론은 공산당을 대변함은 물론 국민들을 선동하고 팔랑개비 귀를 가진 중국 좀비들은 무조건 국가를 지지하고 그들이 지적한 적들을 성토한다

이런 행동은 자발적으로 수행함으로 총성을 강요받음으로써 한국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연예인들 조차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공산당의 정책을 지지하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개인의 자유의사인지 여부를 떠나 일치단결하는 그들의 저력은 뿔뿔이 제멋대로인 민주국가에게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임진왜란이나 과거 식민지의 원인을 조선의 당파분쟁과 모래알 같은 국민성때문 이라는 일본인들의 주장을 한낱 식민사관이라 무시해 왔지만 중국의 집단적인 히스테리를 보면 당리당략을 위해 이전투구하는 정치꾼들의 작태가 한심 스러울뿐이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정당정치가 필요하지만 이념적 논리를 벗어난 정권욕으로 싸우는 정당간의 갈등은
젠더, 진영, 가진자와 덜 가진자들, 노사간 화합 보다는 극단의 분열을 초래하는 민주주의의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반면, 공산당의 일사분란함은 민주국가가 체제경쟁에서 이긴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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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 시대 - 거짓 문화에 빠진 미국, 건국기에서 트럼프까지 질문의 책 32
수전 제이코비 지음, 박광호 옮김 / 오월의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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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란 어휘로 인해 반지성을 정의하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역설을 가진 말인듯하다.
반지성 주의자들이 무식 하거나 무조건적으로 지성적이지 않은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자들을 지성 유무도 범주화 할 수는 없지만 교활하고 지능적인 것은 분명하다.

반지성주의를 한마디로 정의 한다면 자기의 주장을 합리화 하기 위한 ˝지능적 프로파간다˝가 오히려 적합
할 듯 싶다.
세상사람들이 다알고 있는 상식적인 진화론이나 지동설 마저도 자신들의 도그마를 지키기 위해 너무도 자명한 과학을 부정하기도하고, 때로는 대중을 호도하기 위하여 과학으로 포장한 사회 다윈주의와 같은 용어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주장이 대단히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것으로 표현한다.

근현대 문명의 후발국인 한국은 미국, 일본이 걸어온 길을 답습하고 있다.
200년동안 걸어온 길을 70여년의 짧은 시간동안 압축하여 따라가고 있기에 그들의 시행 착오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당연한 학습 과정인양 잘못을 되풀이를 하고 있다.

매카시즘의 이념논쟁, 아베의 극우험한, 한국의 민족주의 근간의 토착왜구 프레임의 이분법적 옳고 그름은 끊임없이 서로를 반목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투쟁의 무용담인양 하고있다.

너무도 복잡하고 난해한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등의 문제는 일어 날 수 있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점검하고 분석해야 함에도 지나치게 단순화 시킨 진영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사고다.

깊이 생각하는 지성은 우유부단 하다고 폄하되고, 협상하고 타협하려는 시도를 수정 주의자나 회색분자 라는 누명을 씌워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가 반지성주의인 거다.
과감하게 행동하는 카리스마의 시원한 사이다 뒤면이 얼마나 구차하고 더러우며 임기웅변식 졸속의 대응 이었음은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알 수 있다.

좌우 또는 중도의 모든 생각이 어울어져야 한다. 극단적인 것은 무조건 위험하다. 중용이 필요하다.
與野의 협치란 제로썸이 아닌 조화가 되었을 때 시너지를 이룰 수 있다.
공자 曰 君子는 和而不同하고 小人은 同而不和하다
라고했다. 언론과 사상의 자유에 기반한 다양한 생각을 수용 할 수 있어야 더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동성보다는 이성이 더 조화롭다는게 만물의 이치인데 반지성주의자는 반대편측이 잘하는 일을 가장 경계하고 두려워 하니 소인인 거다.

상식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진리를 자기만의 논리로 부정하는 자들을 볼 때, 자신은 진정으로 믿어서 하는 말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자신도 거짓인줄 안다. 스스로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움추리지 않고 당당히 주장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거짓을 이야기하는 사깃꾼이 그처럼 당당하게 말하는게 이런이유이다. 말 잘하는 정치꾼이 사깃꾼일 가능성이 많은거다

정치꾼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사이다를 좋아하는 대중의 속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국민을 생각이 단순한 개돼지로 아는 정치꾼이 난무하게 되는 거다

정치꾼들에게 휘들리지 않는 지정주의 대중의 목소리를 더욱 키워야만 민의를 반영한 국민참여 정치가 된다

백성을 그들 맘대로 이용하기 위하여 만들어 내려는
新民이 아닌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함께 행복을 만들어 가기위해서는 親民의 정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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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준님이시다 2024-04-22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지성에도 약간의 머리는 있다 한들 그것의 정도가 커서 해당 논지를 대표하는 경우 반지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거고 님 같은 사람은 어떤것의 지칭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사람인 겁니다
 
연암평전
간호윤 지음 / 소명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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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거를 포기한 아니 거부했던 양반은 백수에 불과했기에 한평생 어려운 생활을 한듯하다. 명문가 할아버지의 뜻으로 글을 배우지 못했던, 그래서 16살 장가간 이후 장인과 처숙으로 부터 글공부를 하였다니 검정고시 출신의 천재인듯 하다. 특출한 재능에도 과거보기를 포기한 연암을 이해해준 장인이나 부인의 도량이 참으로 크다. 생업을 위한 직업이 관리라는 것에 한정되어 있던 시대기에 물려받은 재산도 없어 찢어지게 가난한 양반가의 가장으로서 그런 결심을 지금의 시점으로는 이해 할 수 없을 것 같다. 항산항심이라 했음에도 역시 연암은 군자라 안빈낙도가 가능했나보다.

논설, 소설, 기행문 그리고 세상살이 방법이나 비평가로 대단한 문장가임에도 돈이 되지 않는 필생의 작업을 보면, 평생 유화를 한점밖에 팔지 못해 동생 태오에게 재료비며 생활비를 받아 생활했던 고호와 유사하다.
고호 사후 그의 작품은 수조원의 가치로 평가 받고 있는 것 처럼 연암의 글 또한 귀하기가 이를데 없다. 연암은 고호와 같이 사적 욕심이 아닌 이 사회를 위한 자기 희생을 각오한 글이지 싶다. 연암은 동시대인으로 다산과 비견되곤 한다. 모두 이용후생에 관심을 가진 천재이며 저술가이나, 다산은 범같은 연암과 다른 범생이로 출세를 통해 가문과 사회를 잘되게 하겠다는 정치 지향의 선비 였다면, 연암은 프리랜서를 지향하는 재야의 실용주의자 였다. 시대의 프레임 속에 갖히지 않겠다는 강한 집념은 독불장군 이기 보다는 독야청정한 일송정과 같다.

양반으로서 양반을 희화하고 조롱했기에 내로남불의 비방이 아닌 자기를 포함된 양반으로서의 자기반성이머 기득권층이 스스로 계몽되기를 주문한 것으로 은근한 표현의 넛지라 본다.

가진것이 많은자는 지키기 어려우니 항상 노심초사하며 연암의 오지랍에 비난하고 음해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속좁은 자격지심으로 평생를 괴롭혔던 유한준 같은 자들을 적으로 만든 것은 꼬투리를 제공한 책임은 연암에게도 있다. 의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즉 불통으로 생긴 오해라면 시시비비를 설명하고 풀어 내어지 못한 게 아쉽다.

과거를 거부하니 생계가 어려웠고 적들의 모함 등으로 평생 우울증을 가지고 살았기에 힘들었으나 더 고민하고 더 심오한 철학적 사고에 큰 진보가 있었을 것이란 점이
니체의 삶과도 많이 비슷하다.
자신들을 품어주고 이해해 줄 만큼 성숙하지 않은 세대에 태어난 것이 그들 에게는 큰 불행 이었지만 그들 덕분에 세상은 그만큼은 나아졌을 것이다.

자유로운 생각은 자유로운 표현에서 나타난다. 중국의 고문체만을 고집하여 수필형식의 자유로운 연암체를 금지하고 반성문까지 제출을 강요했던 정조의 문체반정은 그만큼 창의적이고 개혁 할 수 있는 생각을 제한했던 암울한 세대였던 거다. 공맹과 주희가 말하지 않은 새로운 주장 하는 자는 사문난적으로 찍힐 수 있던 시절이기에 자유로운 영혼인 연암이라 더 어려웠을 것 같다.

신분이 아닌 사람을 사람으로 대했고 사랑했던 연암 이야말로 진정으로 인의를 실천한 자랑스러운 조선의 선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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渼沙_常水 2022-06-01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생각으로 각색된 내용이 아닌 당시를 살아낸 사람들의 생각을 알수 있아 좋았던것 같습니다. 노론의 벽파와 시파 그리고 남인 등 서로 다른 당파간 반목을하며 당리당략으로 반대만 일삼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나, 상것들 에게도 마음을 내주었던 양반이 있었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오는건 그간 너무도 획일적으로 각색된 사실만을 진실이라 믿었던 게지요. 조선이란 나라를 냉전시대에 북한에 대해 배웠 듯이 ㄹ아 숨쉬었던 삶의 역사가 아닌 죽은 역사만을 가르친 교육의 책임이 큽니다. 정권차원에서 만들어낸 국정교과서의 폐해일 수 있습니다.
우리역사지만 제 3자의 객관적 시점의 평가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어떻게 중국을 공략했는가 - 마테오 리치의 제국주의 기독교와 중국불교
심장섭 지음 / 자유문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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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으로 위축되었던 캐톨릭은 반종교개혁의 일환으로 동양대륙으로의 선교를 추진한다. 명나라의 대선단으로 꾸려진 정화의 원정이 마무리 되는 그시기 유럽의 변방 포르투칼이 아프리카 연안으로 희망봉을 돌아 인도 고아항까지 이른다. 금, 은과 향신료 그리고 노예무역으로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이러한 포르투칼에 캐톨릭은 예수회 선교를 지원함과 아울러 항해의 독점권을 부여 한다. 이교에게 잔인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식민지와 무역을 확대하며 전설이된 동양의 기독교 왕국을 찾는다. 대포를 앞세운 선교는 폭력이며 독선이다. 예수회 마테오 리치는 중국에 선교를 위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한다. 기독교 신부로서 현지 종교인 불교의 승려복장으로 기독교를 알리려 하지만 명나라 말기 성리학 기반의 유학이 대세임을 알고 사서를 공부 하며 천주실의 등 한문으로된 여러권의 책을 집필한다.
개별 신도들에게는 우상파괴를 통하여 기독교신자가 되었음을 증명 할것을 요구하기도 하였지만 개인의 선교가 아닌 사회를 대상으로 변화를 모색 하었고 그것
을 위하여 서양의 선진문물을 알릴 수 있는 기기는 물론 선진의 지식을 알리려는 방법을 사용한다. 유신론의 기독교는 무신론의 불교나 현세의 문제에만 관심있는 이(理)학과는 다르지만 다른 의미를 같은 뜻으로 풀어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참신했던것 같다. 중용의 天命之謂性, 하늘의 뜻이 곳 참 마음이다라는 것은 당초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이 이학의 良知를 말함이고 동학의 人乃天사상으로 확대되었는데 기독교에서는 천은 천주이고 성은 성령이라는 것이라 해석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었던 기억이 있다. 조선에서는 주희와 다른 양명학 조차도 夷學으로 취급하였고 대깨주희 송시열은 정적이었던 윤휴가 감히 주희와 다른 章句를 사용했다고 사문난적 으로 몰아 죽였을 정도의 꽉 막혔던 당시에, 명리학적 논리보다도 황당했을 천주학을 의심없이 받아들였던 이익, 이승훈, 정약용 형제 등의 실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의아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구미 선진국에 대해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던것 같다.
너무도 다른 이문화를 가진 세상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종교를 접목한다는게 참으로 무모해 보이기에 생을 마감 할 때까지 수십년을 객지에서 미션을 수행했던 마테오 리치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중국에 기독교을 소개했던 것은 그 이전에도 몇차례 있었지만 지리상 발견이란 시대의 조류와 함께한 건 당연하게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던 것 같다. 종교에 앞서 유럽의 선진문물을 일찍이 접했으나 중일을 압도 할 수 있는 기회로 살리지 못한건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청나라 인질의 소현세자가 만났던 독일인 선교사 아담 샬은, 조선에 기회가 될 수 있었던 반면, 편협한 인종에 의해 소현세자 일족이 몰락되는 독이 되어 조선후기 역사가 크게 바뀌었다.
조선 오백년 최악의 군주로 전란을 불러온 선조와 인조가 있었고, 대한제국이 망한건 어쩔 수 없는 조류라 하더라도 민비에게 큰 책임을 묻고싶다. 일본놈에게 시해를 당했다고 자주적이었다거나 애국적 인물로 미화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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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6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渼沙_常水 2024-07-17 10:22   좋아요 0 | URL
핸폰으로 작성을하다보면 오탈자가 많이 생기네요. 고맙습니다^^
 
난중일기 범우문고 239
이순신 지음, 이민수 옮김 / 범우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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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는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에 쓴 한문 종군실기로 전세계적으로도 전쟁 중 지휘관이 직접 기록물을 남긴 사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그중요성이 크다

원래는 제목이 없었으나 훗날 정조의 명으로 “이충무공 전서”를 편찬하면서 “난중일기”로 명명한 이후 현재까지 통용되고 있다

1592년 1.1일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하루전인 1598년 11월 17일까지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충무공에 대하여는 3자의 입장에서 사실을 근거로 또는 일부 각색된 많은 책과 드라마 영화에서 조명하고 있으나 직접 작성한 진중일기를 통하여 좀더 사실적인 접근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충무공과 관련된 이해관계자간의 역학관계에 대하여 당사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을 듯하다

이해관계자로는 유성룡, 이율곡, 원균, 선조, 권율, 배설, 히데요시, 고니시, 가토, 와키자키 등이 있으나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은 지원하고 천거한 유성룡이며 갈등관계에 있던 원균이라 할 수 있다

 원균은 이순신보다 5살 연상으로 일찍이 급제하여 벼슬길에 먼저나가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나 32살에 급제한 이순신은 주위의 시기와 모함이 끊이지 않아 미관말직으로 전전하였다
소시적부터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유성룡의 천거로 몇단계씩 진급기회가 있었으나 번번히 반대파의 반대로 무산되고 백의종군하기 까지 이른다

임진난 1년여전에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수사로 임명되고 전란을 대비한다
(일부 학계에선 유성룡의 많은 공적중 이순신을 발탁하고 그를 지켜준 공이 가장크다라는 평가됨)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동인(남인)이었던 유성룡으로 부터 천거되었으므로 동인으로 분류된다

동내 선배이며 상급자였던 원균은 이순신보다 늦은 임난 3개월전에 경상좌수사로 임명되나 전쟁발발 후 주력을 잃고 이순신과의 연합작전에서 지원하는 수준으로 전락한다

두사람이 편치않은 관계와 전략에 대한 상이한 스타일이 갈등을 키우는 동인이었던 것 같다

원균측의 주장을 보면 전쟁발발 후 전투에 나간 원균은 이순신에게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이를 묵살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합동작전을 했던 이순신의 1차 출정인 옥포해전의 승리로 공동으로 상소하자라는 원균의 의견에 전과가 미미하니 추후에 보고하자 라고하고 이순신이 단독으로 전공을 보고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다른 기록에 의하면 왜구방비가 목적인 조선 수군의 경우 경상도가 주력으로 좌우수사에 각각 판옥선이 75척씩 편제되어 있고 전라도에는 좌우수사에 각각 25척이 편제되어 있는 상황을 비추어 볼 때 주력이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선단을 운영하고 있는 전라 좌수사에 막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모두 죽으라는 것이며 왜군이 부산 동래로 진격 했을 때 경상도 수군이 방어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는 점에서 원균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두사람의 갈등을 묘사하는 내용이 난중일기에 많이 나와 있는데 한 사람만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 없고 인간 이순신 또한 어느 정도의 전공에 대한 욕심이나 미운놈에 대한 감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난중일기가 보통의 비밀일기가 아닌 어느정도는 후세 사람들에게 읽힐 것이라는 가정하에 주관적인 내용보다는 사실을 기록하는 실록의 성격이 강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에 원균을 비난하는 내용이 있다

21일(계유) 맑음~ 원수사가 하는 말이 몹시 흉측하고 거짓스럽다.  사람됨이 이와 같은데 같이 일을 하자니 어찌 뒷근심이 없겠는가
28일(경진) 맑음 ~ 그러나 원 수사의 흉칙함은 볼 수가 없다
2일(계미) 맑음~ 원 수사가 망령된 말을 하여 나에게도 무도한 일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망령된 일이니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6일(정해) 맑음. ~ 저녁에 원 수사가 오고, 이 억기, 정 수사가 와서 일을 의논하는 동안, 원 수사의 말은 걸핏하면 모순이 생겼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
7일(무자) ~ 저녁에 경상 수사의 군관 박 치공이 와서 적선이 물러갔다고 전하나, 원 수사와 그 군관은 본래 헛소리를 잘하는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
8일(기축) 맑음. ~ 우수사가 유포로 가서 원 수사와 만난다니 우스운 일이다.
9일(경인) 맑음. ~경상 수사는 군사를 일제히 내어 복병시키기로 해놓고 슬며시 혼자서만 먼저 보냈다고 하니 해괴한 일이다.
19일(경자) 맑음. ~ 말 가운데 원 수사의 음흉하고 고약한 것이 많으니, 그 허무맹랑한 꼴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원씨 형제가 옮아 간 후에 천천히 노를 저어 진으로 돌아와, 우수사, 정 수사와 함께 자세히 이야기했다.
28일(기유) 맑음. 원 수사가 와서 음흉하고 간휼한 말을 많이 했다. 몹시 해괴하다.
30일(신해) 맑음. 원 수사가 또 와서 영등으로 가자고 독촉한다. 참으로 음흉하다.

그가 거느린 25척의 배는 모두 내보내고 다만 7, 8척만 가지고 이런 말을 하니, 그 마음씨와 일하는 것이 모두 이런 따위다.
6일(정사) 맑음. ~거기서 원 수사의 음흉한 말을 듣고, 또 정 담수가 근거없는 거짓말을 만들어 낸다는 말을 들으니 우스웠다. 파선된 배의 재목을 여러 배가 끌어왔다.
12일(경신) 맑음. 순무 어사 서 성이 내 배에 와서 이야기했다. 우수사와 경상 수사, 충청 수사도 함께 와서 술 세 순배를 마셨다. 원 수사는 짐짓 취한 채 광증을 부리며 무리한 말을 함부로 뇌까리니 순무 어사도 괴이함을 금치 못한다. 하는 짓이 이렇게 몹시 흉악하다.
4일(신해) 맑음. ~ 저녁에 겸사복이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왔는데, 그 속에 말하기를, ˝수군 여러 장수들과 경주 여러 장수들이 서로 화목하지 못하다 하니 금후로는 전의 습관을 모두 고치도록 하라.˝ 했다. 통탄함을 금할 수가 없다. 이것은 곧 원 균이 술취해서 망녕된 짓을 한 때문이다.
20일(계해) 맑음. 우수사, 장흥, 신 조방장이 와서 이야기하는데, 원균의 고약한 짓을 많이 전했다.

참으로 놀랄 일이다.
24일(무자) 부사와 함께 가리포로 갔더니 우우후이 정충이 먼저 와 있다. 함께 남쪽 망대에 오르니, 좌우로 적들이 다니는 길과 여러 섬들을 역력히 알 수가 있다. 참으로 한 도의 요충지다. 병영으로 돌아왔다. 원공의 흉한 행동은 기록하지 않는다.
30일(을해) 맑고 바람도 없음. ~ 영의정의 편지와 심 충겸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분개한 뜻이 많다.

원 수사의 일은 몹시 해괴하다. 내가 머뭇거리고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니, 이것은 천고에 두고 두고 탄식할 일이다. 곤양이 병으로 돌아 갔는데, 보지도 못하고 보냈으니 더욱 한스러운 일이다. 밤 2시경이 지나도 심사가 산란해서 잠을 자지 못했다.
17일(신유) 맑음. 아침에 어사에게 사람을 보냈더니 어사는 식사 후에 오겠다고 한다. 늦게 우수사가 왔고
어사도 역시 왔다. 조용히 이야기하는데, 원 수사의 속이고 거짓말한 것을 많이 말했다.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원 수사도 또 왔는데, 그 흉악하고 거짓스런 꼴이란 말할 수가 없다.

 [조정에서는 바다상황을 잘몰라 부산으로의 출격강요를 고집하지 못하고있던차에 “지금 우리 수군은 강합니다. 당연히 부산 앞바다로 수시로 출격하여야 합니다. 그럼 적군은 두려워져 바다를 건너오는 일을 감히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라는 원균의 표문이 올라왔으며 가토군이 바다를 건너온다는 정보에 따라 출동을 명령한다. 그러나 이순신은 정보가 의심스럽고 복병이 있을 것임을 이유로 출격하지 않아 서울로 압송된다

이후 삼도수군통제사가된 원균도 부산공격이 불가함을 알고 주춤대자 도원수 권율이 곤장을 치고 출격을 독촉한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출격하나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하여 200척가까운 전함이 침몰되어 조선수군이 괴멸하게 된다 (이때 무단으로 이탈한 배설의 전함 12척이 명량해전때 쓰인다)

 21일(경자) 맑음. 일찍 떠나 곤양군에 이르니 군수 이천추도 고을에 있고, 백성들로 많이 제 고장에 있어 혹은 올벼를 거두기도 하고 혹은 밀보리밭을 갈기도 한다. 점심 후 노량에 이르니 거제 원 안 위와 영등 조 계종 등 10여인이 와서 통곡하고, 피해 나온 군사와 백성들도 울부짖지 않는 이가 없는데, 경상 수사 배 설은 도망가고 보이지 않는다. 우후 이 의득이 보러 왔기에 패하던 당시의 정황을 물었다.

모든 사람들이 울면서 말하기를, 대장 원균이 적을 보자 먼저 육지로 달아나고 여러 장수들도 모두 그같이 육지로 달아나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대장의 잘못을 말하는 것은 입으로 옮길 수가 없고, 그 살점이라고 뜯어 먹고 싶다고들 한다.

 2월 22일 [양력 3월 24일]<정미> 새벽에 구름이 검더니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경상좌위장과 우부장은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끝내 구하지 않았으니, 그 괘씸함을 이루 표현할 길이 없다.

참으로 통분하다. 이것을 경상도 우수사에게 파 물었다. 한심스럽다. 오늘의 통분함을 어찌 다 말하랴. 모두 경상우수사 (원균)의 탓이다.

 원균은 용맹한 장군임에는 틀림 없으나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원균은 성질이 몹시 억세어 윗사람이 공문을 보내어 지휘하면 반드시 다투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쟁에 임해서는 쓸만한 장수입니다. 그에게는 군사를 미리 주지 말고 전쟁에 임해서 군사를 주어 돌진케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의정 이원익. 선조 29년 10월 5일)

선조실록에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세운공으로 특진한바 있으나 그의 근무평정은 최하위였다고 하며 임란초기에 경상우수사로서 군령을 내렸으나 각진의 책임자들이 도망하여 100여척의 전선이 와해된 것은 리더십의 부재였으며 삼도수군통제사로 칠천량 해전에서 패전하여 수군이 괴멸하게 된 것은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선조와 도원수 권율의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이순신은 지는 싸움은 절대하지 않는 매우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자주 충돌했던 것은 당연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순신이 훈련원 봉사(종8품)시절 이조판서(종1품)인 이율곡의 면담요청에 같은 가문의 사람으로
부적절한 정실의 개입을 우려하여 거절하였다”라는 유성룡 징비록의 기록에도 있듯이 철저한 원칙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몸이 자주 아팠으며 모친이나 자손들을 걱정하는 가장으로서의 고충과 엄격한 군율을 적용하여 과감하게 참수하거나 곤장을 때렸던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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