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는 어떻게 중국을 공략했는가 - 마테오 리치의 제국주의 기독교와 중국불교
심장섭 지음 / 자유문고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교개혁으로 위축되었던 캐톨릭은 반종교개혁의 일환으로 동양대륙으로의 선교를 추진한다. 명나라의 대선단으로 꾸려진 정화의 원정이 마무리 되는 그시기 유럽의 변방 포르투칼이 아프리카 연안으로 희망봉을 돌아 인도 고아항까지 이른다. 금, 은과 향신료 그리고 노예무역으로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이러한 포르투칼에 캐톨릭은 예수회 선교를 지원함과 아울러 항해의 독점권을 부여 한다. 이교에게 잔인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식민지와 무역을 확대하며 전설이된 동양의 기독교 왕국을 찾는다. 대포를 앞세운 선교는 폭력이며 독선이다. 예수회 마테오 리치는 중국에 선교를 위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한다. 기독교 신부로서 현지 종교인 불교의 승려복장으로 기독교를 알리려 하지만 명나라 말기 성리학 기반의 유학이 대세임을 알고 사서를 공부 하며 천주실의 등 한문으로된 여러권의 책을 집필한다.
개별 신도들에게는 우상파괴를 통하여 기독교신자가 되었음을 증명 할것을 요구하기도 하였지만 개인의 선교가 아닌 사회를 대상으로 변화를 모색 하었고 그것
을 위하여 서양의 선진문물을 알릴 수 있는 기기는 물론 선진의 지식을 알리려는 방법을 사용한다. 유신론의 기독교는 무신론의 불교나 현세의 문제에만 관심있는 이(理)학과는 다르지만 다른 의미를 같은 뜻으로 풀어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참신했던것 같다. 중용의 天命之謂性, 하늘의 뜻이 곳 참 마음이다라는 것은 당초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이 이학의 良知를 말함이고 동학의 人乃天사상으로 확대되었는데 기독교에서는 천은 천주이고 성은 성령이라는 것이라 해석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었던 기억이 있다. 조선에서는 주희와 다른 양명학 조차도 夷學으로 취급하였고 대깨주희 송시열은 정적이었던 윤휴가 감히 주희와 다른 章句를 사용했다고 사문난적 으로 몰아 죽였을 정도의 꽉 막혔던 당시에, 명리학적 논리보다도 황당했을 천주학을 의심없이 받아들였던 이익, 이승훈, 정약용 형제 등의 실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의아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구미 선진국에 대해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던것 같다.
너무도 다른 이문화를 가진 세상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종교를 접목한다는게 참으로 무모해 보이기에 생을 마감 할 때까지 수십년을 객지에서 미션을 수행했던 마테오 리치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중국에 기독교을 소개했던 것은 그 이전에도 몇차례 있었지만 지리상 발견이란 시대의 조류와 함께한 건 당연하게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던 것 같다. 종교에 앞서 유럽의 선진문물을 일찍이 접했으나 중일을 압도 할 수 있는 기회로 살리지 못한건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청나라 인질의 소현세자가 만났던 독일인 선교사 아담 샬은, 조선에 기회가 될 수 있었던 반면, 편협한 인종에 의해 소현세자 일족이 몰락되는 독이 되어 조선후기 역사가 크게 바뀌었다.
조선 오백년 최악의 군주로 전란을 불러온 선조와 인조가 있었고, 대한제국이 망한건 어쩔 수 없는 조류라 하더라도 민비에게 큰 책임을 묻고싶다. 일본놈에게 시해를 당했다고 자주적이었다거나 애국적 인물로 미화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4-07-16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渼沙_常水 2024-07-17 10:22   좋아요 0 | URL
핸폰으로 작성을하다보면 오탈자가 많이 생기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