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레지스탕스의 두 얼굴 - 민족주의가 감춘 우리 영웅들의 화려한 흑역사
진명행 지음 / 양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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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이 옳고 타인은 그르다는 我是他非나 내로남불이
독립군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조직이나 지도자간에도
만연했을 것임은 너무도 당연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에 정당간은 물론 같은 이념을 공유하는 당내에서
조차 파벌을 만들어 이전투구를 하는 것은 국가 발전이나 민주주의를 위함이 아닌 공천이라는 이기적 탐욕 때문
이란 것을 볼 때 100년전쯤의 상황은 미루어 짐작된다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고 국민의식이랄 것도 없었던,
삼정의 문란과 매관매직을 일삼았던 권신과 척신
그리고 가렴주구하는 수령이나 아전들의 횡포속에 살아온 백성들에게 민족의식이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당시에도 의병은 기득권이나 재산을 지키려는 유생이나 재산가였을 뿐이었고,
왕이라는 자가 그런 의병은 물론 자기 아들조차 독살
하며 지키려는 권력이 나라나 백성이 아니었음은
모두가 알고 있다.
백성들은 단지 착취를 할 대상이며 수단일 뿐 인간이
라는 목적으로서 대우한 적이 전혀 없었던 조선의
위정자 들이 백성들에게 무조건적인 충효를 강요했던
것 자체가 사이코패스인거다.

이렇듯 조선이란 나라로 부터 인간대접을 받지 못했기에 나름 선진제도를 가진 식민체제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합병 이후 세대는 그런 세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었을 것이다.
이는 일본 군사학교 입시 경쟁율이 50:1, 순사 경쟁율이
17:1일 정도였다는 것을 볼때 독립보다는 호구지책과 출세를 우선시 하는 보편적인 인식을 갖었던 듯 싶다.

피지배 식민지 국민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더 지독하게
악날했던 자들이 부지기수 었을 것임은 완장질, 갑질
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은 추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고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시점이 아닌 당시 상황을 감안하여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사를 국민을 가르키려는 수단으로만 이용하려 할때
왜곡이 된다. 일본의 역사왜곡의 욕하기전에 자성의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우리가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로서 양면성을 지닌다는 것은 단지 일본의 강요에 의해 징용되었다는 불가피성으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 "전쟁범죄에 관한 한 조선인은 일본인 취급한다"라는 연합국의 결정은 우리를 일제의 식민지가 아니라 가해 전범국과 동일한 선상에서 판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에 의해 동원된 노무자나 위안부 그리고 군속을 피해자로 보지 않고 포로로 간주했다가 석방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평가를은 연합국이라는 제3자의 인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립운동가로 명망이 
있는 분들은 오늘날유공자로 훈장이 추서되고 존경받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숭고한 뜻과 정신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밝음의 이면에 희생된 피해자로서 존재했다.
는 사실을 부정하면 안된다. 머나먼 이역에서 동포들을 등쳐먹고 살던 사람들의 무장 투쟁이 ‘독립운동‘으로 
포장되는 일이나 자기들끼리 죽이고 죽고관헌에 밀고
하여 경쟁자들을 제거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비록 그 
기상이나목적이 훌륭했을지는 몰라도 그런 과정의 
흠결을 치유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차라리 독립운동을 하지 말든지, 일개 
범부(凡夫)로 살면서사회의 초석이 되는 편이 더 마땅
하지 않았겠는가? 대의를 위한 희생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들어, 목숨 걸고 독립운동하는데, 이름 없는 민초
들 돈 좀뺏을 수 있지, 인질 삼아 끌고 다니거나 협박 
좀 할 수 있지, 그렇게 관대하게 생각할 일인가 싶다. 
독립운동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생각이 다르다고, 돈과 식량을 내놓지 않았다고 독립운동가들 손에 죽은 
사람들의 영혼은 누구에게 위로를 받나? 추구하는 목적이 의롭다고 과정에 불의가 난무하면그 목적은 애당초 
존재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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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
대런 애쓰모글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그리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내용을 통합해서 정리한
듯 싶다. 그러면서도 또 새롭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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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란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허물없어 편하지만 때론 불편하지 않은척 좋은척
하는 가식의 관계가 고착 된다면 서로에게 낭비다

내게 도움이 되는 친구만을 찾는게 다소 이기적인 것 이라면, 상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친구관계를 유지하려는 것 또한 이기적인 거다

관계란 구속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전제되어야 한다
베스트프렌드가 구속이 된다면 그냥 친구이거나
일반적인 지인으로의 다운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베스트 프렌드는 사실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좋은 관계, 두려움이 없는 관계는 늘 일정한 ‘거리‘를 
담보로 한다는 것을 흥미롭고 활력 넘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가벼운 기회만 가져도 인간
관계는 충분하다는 것을.
일정한 거리를두어도 얼마든지 완벽한 친구 관계로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친구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을 인생의 
동행으로 삼아야 한다. 자신을 돌보고 성찰하는 일을 
우선순위 목록 맨위에 올려놓은 사람과 속 깊은 대화
를 나눠야 한다. 그렇지 않은 관계에는어김없이 부정
적 감정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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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적 정책는 이기적인 독재자의 정책이고 포용적 정책
은 여민동락하려는 자유민주의 지도자의 소명이다.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은 두 가지 이유에서 지속되지 
못한다.
첫째, 지속적 성장은 혁신이 있어야 하는데, 혁신은 
반드시 창조적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창조적 파괴는 경제적인 면에서 옛것을 새로운 것으로 
갈아치울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기성 권력 기반을 
뒤흔들기 마련이다. 착취적 제도를 장악한 엘리트층은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한 나머지 이를 거부하기 때문에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은 어쩔수 없이 단기에 그친다. 
둘째, 착취적 제도를 장악한 이들이 사회 전체를 희생
시켜가며 자신들의 배를 채울 수 있으므로 착취적 제도
하의 정치권력을 탐내는 이들이 많아져 수많은 집단과 
개인이 권력 투쟁을 벌이게 된다. 그 결과 착취적 제도
하의 사회에는 정치 불안을 초래할 만한 강력한 요인
이 많아진다.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는 시너지 효과를 내므로 일단 
뿌리내린 착취적 제도는 끈질기게 거듭되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마찬가지로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에서는 
선순환이 비롯된다. 하지만 악순환이든 선순환이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날 포용적 
제도 속에서사는 나라 중에는 역사적으로 착취적 제도
가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사회가 그 틀을
깨고 포용적 제도로 이양한 사례도 더러 있다. 
우리는 이런 이양 사례를 역사를 통해 설명하지만 
그렇다고 역사적 숙명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 P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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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소련 등 국가의 실패를 가져온 공산주의 독재국가 에서 소수 엘리트가 수탈적 제도를 고집하는 것은 경제 발전의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포용적 제도가 불러올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역동성을 불러오게 될 창조적 파괴는
부와 소득은 물론 정치권력의 분배마져 요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식민지로 부터의 수탈품을 왕가가 독점했던 스페인은
식민지 정책에서 거의 100년이나 늦었지만 혁신과
투자의 유인을 제공하여 산업혁명을 일으킨 영국과의 패권전쟁에서 크게 뒤쳐지게 되었음이 이를 실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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