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황태자> 시리즈의 1~3권을 읽은 것은 2011년 6월.

<마지막 황태자>의 대미를 찍은 4권을 읽은 것은 2013년 3월이었다.

 

<마지막 황태자> 시리즈는 마지막 황태자 이은을 중심으로 우리가 막연한 이미지만 품고 있던, 혹은 잘 몰랐던 조선 마지막 황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과거의 조각들을 찾아내어 촘촘히 꿰어가는 작가의 해석은, 그늘을 드리운 옛 시대를 돌아보게 한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독자였던 내가 막연히 품고 있던 의아함을 풀어주기도 했고, 본래 지니고 있던 생각과 정반대이기도 했다. 역사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지 혹은 터무니없는 가설에 지나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읽어보니, 어느 정도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기는 했다.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모처럼 한 권의 책을 읽고 흐뭇해하며 책이 지시하는 내용을 그대로 믿는 것은, 우연히 본 텔레비전에서 좋다고 방송한 식품을 우격다짐으로 먹고 질병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은 태도다. 그리고 책의 저자도 대학의 교수이거나 그와 비슷한 수준의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테마의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어라'고 한다. 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또는 인문학이든, 전문지식이나 상식이란 것은 어떤 객관적 진리 그 자체가 아니다. 아무리 전문 분야의 정설이라 하더라도 깊이 들어가면 거기엔 학설의 대립이나 의견의 충돌이 존재한다. 지식이란 진실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요 측면이다. 저자를 믿고 의지할 것이 아니라, 저자의 의견을 참고하여 스스로 판단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 p.26

 

 

 

 

 

 

 

 

 

 

 

 

 

 

 

 

그래서 읽게 되었다... 고 하기에는 시간차가 꽤 나지만.

비슷한 테마의, <나는 대한민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를 읽었다.

(실제로 읽은 책과는 표지가 다르지만 저자명 등을 봐서는 같은 책인 듯)

 

이 일로 해서 나도 일본의 잔학성을 드디어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아무리 인심이 흉흉하여도 이것이 일본인들이 하는 정치라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나의 입장에 대해 애매하게 평가하지만 나는 한·일간에 있었던 이러한 일들을 직접 체험하면서 일본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영원히 갚지 못할 빚이다. - p.129

 

 

일본에서 태어난 나시모토미야 마사코는 조선 왕세자 이은과 결혼하였다. 그들이 결혼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여러 관계가 얽혀 있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던 전쟁, 국제정세, 한일관계…… 그 중심에서 남편과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마사코의 마음이 생생하게 적혀 있다. 마사코의 눈으로 바라본 이은의 삶, 비극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 세월.

 

이미 관련 서적이랄 수 있는 <마지막 황태자> 시리즈를 읽었기에 아주 새로운 부분은 없었지만, 제목처럼 이방자 여사라는 한 사람의 시각으로 그려졌기에 자전적 느낌이다. 이은과 이방자, 순종 이후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까지. 나라가 해방된 뒤에도 조선 왕실의 후손들은 해방될 수 없었음을, 씁쓸한 생각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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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코를 읽고 2014-01-09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러게요 참 답답 한 이 나라도. . 비열한 일본 보다. .

더 비열한 나라팔아 먹은 대한 민국 종자들이 참. . 그러하네여. . .

근 대사에 대해 다시금 생각 하게 된 책들입니다. .

잘 못 알고 있던 제 자신이 좀 부끄럽네요. . .ㅠㅠ

 

 

 

 

 

 

 

 

 

 

 

 

 

 

 

 

 

 

 

 

 

 

 

 

 

 

 

 

 

 

 

근현대사. 시작으로는 세도정치를 종료시킨 흥선대원군, 외세들이 벌이는 각축전의 틈바구니에서 약소국으로 우리나라가 겪었던 슬픔은 책장을 넘기는 손을 무겁게 한다. 한 나라 국모의 신상에 일어난 믿을 수 없는 사건, 명성황후 시해나, 임금이 궁을 버리고 한 나라 공사관으로 몸을 피해야 했던 아관파천 등. 지금은 끝났기에 돌아볼 수 있지만,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을 일제강점기에 광복까지. <마지막 황태자>는 조선으로부터 일제강점기 사이에 존재하는 '대한제국'을, 정확히는 그 나라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이 은을 주인공으로 삼은 세 권의 역사소설이다.


당시 일본 지도자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웃 나라의 국모를 죽여 버리는 것을 할 만한 일로, 또 해야 할 일로 간주했다. 그 정신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자연인이든 국가이든 간에 마찬가지다. 실제 할 수 있는 일과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 자체를 잃는 것이고, 그것은 곧 모든 것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 상태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때 일본의 지도자들은 이미 그런 상태에 떨어져 있었고, 그런 자들의 주도로 일본이라는 나라는 그 추하게 일그러진 해외 침략의 길에 뛰어들어 참혹한 패망의 날까지 계속 그 길을 치달렸다. - 1권/p.112

 

1권 <못생긴 엄상궁의 천하>는 명성황후 사후 재입궁한 엄 상궁이 아관파천을 주도하며 아들을 낳고, 대한제국이 건국되어 그녀 자신이 황귀비라는 위치에 올라 영친왕비를 간택하는 때까지를 그리고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는 가운데 명성황후 못지않은 엄귀비의 정치적 궤적을 보면 엄귀비 역시 황후에까지 못 올랐을 뿐(숙종대 장희빈 이후 후궁이 중전이 되지 못하도록 되어있었으므로) 새 왕후의 입궁을 막고 그에 준하는 위치까지 오른데다 그에 걸맞는 활약을 했으니, 그럴 만한 여성이라고 느껴진다.


인질……. 인질이 대체 무엇인가. 어떤 존재인가. 누군가 인질이 되는 순간, 그는 곧 인간인 동시에 이미 인간임을 벗어난 어떤 특수한 존재가 된다. "나의 생명과 존재와 가치에 대한 처분권이 너희들의 손에 있음을 인정하겠다"는 약자의 비명과 슬픔이 사람의 형체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곧 인질이다. 이쪽과 저쪽이 지닌 권력 관계의 강약을 보여 주는 하나의 살아 있는 상징이요 기호가 되는 것이다. - 2권/p.173

 

2권 <황태자의 동경 인질살이>는 1권 이후, 해아밀사사건[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이 퇴위당하고 순종이 즉위하며, 영친왕이 황태자가 되어 동경으로 끌려가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될 때까지를 담고 있다. 1권에서 엄귀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면, 2권에서는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꼽을 수 있겠다. 일설에 이토 히로부미가 죽어 한일병합이 앞당겨졌다고 했는데 그것이 터무니없는 거짓이며, 이토 히로부미가 어떤 인물인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인질살이'중 우리나라 황태자를 회유하기 위해 일본 명치천황과 이등박문이 어떤 '독 묻은 사랑'을 주었는지, 어린 소년 이은이 어떻게 넘어가 세뇌된 채 평생을 살아가게 되었는가... 그리고 한일병합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제일 인상깊었던 것은, 실제로 내가 어렴풋하게 '이토 히로부미가 죽어서 한일병합이 앞당겨졌다, 그는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방향은 아니었겠지만 방법론적으로) 한일병합 반대파였다'라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면서 그게 절대 아니라는 걸 안 것이다. 사실 작중에서도 말하듯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말로는 전혀 한국을 침략할 뜻이 없다고 하면서, 그럴 생각은 전혀 없이 감언이설로 한국인을 속인 것이 그의 실체였기 때문이다(2권/p.312) 새삼 "자국을 위해서라면 이웃 나라의 국모를 죽여 버리는 것을 할 만한 일로, 해야 할 일로 간주한" 당시 일본 지도자들이 어떤 인간들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막내아들 부부가 신혼여행을 겸해 파리강화회의에 가서 일본 정부가 구사하는 정략의 도구가 되어 태황제 자신이 지금 혼신의 힘을 다해 추진하고 있는 생애 최후의 대계획을 망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일뿐이었다. 태황제의 죽음은 당시 절체절명의 곤경에 빠진 자로서의 스트레스와 고통을 견디지 못한 데서 온 비극이었다. - p.323

 

3권은 <왕세자 혼혈결혼의 비밀>. 2권의 '황태자'에 비해 한 격 내려선 '왕세자'라는 호칭처럼, 3권은 2권 못지않게 먹먹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2권에서 어머니와 억지로 떼어져 인질로 끌려온 황태자가 얼마나 다부졌나. 3권에서 왕세자가 된 이은은 학습원[일본의 귀족학교]에 입학해 연상의 학우들과 공부하며 우등생을 차지하나,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일본인들에 의해 육군중앙유년학교로 보내져 체격적으로 뒤져서 열등생이 될 수밖에 없는 군사교육을 받게 된다. 물론 이후로 우등생은 되지 못했다.

한편 나라가 멸망한데다 귀한 아들이 물 건너에서 군사훈련을 받으며 주먹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본 엄귀비는 충격으로 쓰러져 절명한다. 이어 순종은 억지로 끌려와 천기봉사[직접 일본에 와 일본황제에게 문안드림]를 하는 굴욕을 당하고, 이은은 조선에서 기다리고 있는 약혼녀 민갑완이 아니라 일본 황족 여자 이본궁 방자 여왕[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 왕녀]과 약혼한 것을 신문에서 보는 처지가 된다.

 

3권에서 등장한 새로운 인물, 혼혈결혼의 당사자 이방자는 자신을 정략결혼의 희생양으로 느꼈다고 작중에 인용된 여러 서적들에서 말한다. 하지만 작중에서는 사실 그 어머니 이도자비[나시모토노미야 이쓰코 비] 및 이본궁 측이 자청해 방자를 이은과 결혼시키려 했다고 하며 근거를 제시한다(3권/p.142). '나라를 위한 희생'이라던가 가장 유력한 황태자비 후보였는데 미미한 정치적 기반과 불임의 가능성 때문에~ 같은 것은 시기적으로 봐도, "방자는 황태자와 나이가 같았기 때문에, 나는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다-<삼대의 천황과 나> p.114"라는 이도자비의 말(3권/p.127)을 봐도 완전히 잘못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렇게 흔히 갖고 있던 선입관을 제외한 이방자는 (일본측이 인물상까지 따져 결혼을 결정했는지는 모를 노릇이지만) 곱고 명랑하며 사치를 즐기는 "와신상담의 고난을 잊지 말아야 할 처지였던 망국의 황태자 이은에게는 최악의 조합에 해당하는 배필"이었다(3권/p.297)


고종은 보통 독살되었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고종 독살설을 정면으로 부정한다.어떻게든 아들의 결혼을 막고, 만국강화회의의 기회를 노리려다, 신문을 통해 펼쳐지는 끊임없는 일본의 압박과 아들을 통해 펼쳐지려는 일본의 술수로 인해 원통하게 승하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종의 인산일을 이틀 앞둔 1919년 3월 1일, 저 유명한 삼일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다.

역사소설은 그저 역사의 일설을 채용해 진짜인 양 '소설'로 꾸며내는 재미로 읽는 종류도 있지만, 이 세 권의 책은 '역사'로서 읽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 을미사변 이후 엄상궁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부터 영친왕의 결혼을 앞두고 고종이 승하하며 벌어진 삼일독립만세운동까지, 역사적으로 큰 획을 그은 사건들뿐만 아니라 "조선왕실을 연관지어 당시의 상황을 좀 더 바르게" 알고 싶다면 주저없이 권하고 싶은 책이다.

/1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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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이 된 왕 이은의 천하 마지막 황태자 4
송우혜 지음 / 푸른역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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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태자 마지막 권을 읽었다. 3권이 1919년, 고종의 사망으로 끝났었는데 4권은 그 이후―이은의 약혼시절과 결혼부터 시작하여 8.15에 다달라 이윽고 현대에 이르기까지를 그리고 있다. 시대가 흐른 만큼 1권에서 막 태어났던 소년은 결혼을 하여 아이까지 낳았으며, 역사의 전면에 서 있는 것은 이은과 동년대의 조선 왕가 사람들, 고종의 딸 덕혜옹주와 의친왕 이강의 장남 이건·차남 이우(운현궁 흥왕 이희의 장남 이준의 양자로 입적) 등이 되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이은은 무사히 이방자와 결혼했고 그 아들 이진이 1921년 8월 18일 태어났다. 태어난 날 오후 조서가 내려져 황족으로 대우받으며 7일 만에 명명되는 등 일본이 이 아이에게 거는 기대를 알만하다. 그러나 한쪽에서 빛이 강한 만큼, 다른 쪽의 그림자도 짙었나 보다. 1922년 4월 근현식을 위해 세 가족이 조선을 방문했을 때 비극이 일어났다. 일본의 피가 섞인 왕자라 하여 아편을 탄 우유로 독살된 것이다(당시의 공식 사인은 소화불량이었다). 아이는 5월 11일 생후 8개월 만에 사망하였고, 5월 17일 장례가 치러졌다.

이진 사후 거듭 유산했던 이방자는 1931년 12월 29일 이구 왕세자를 낳았다. 이구가 14세이던 1945년 8월 일본제국이 멸망했고, 그 이후 미국으로 유학해 MIT를 졸업하고 줄리아 뮤록과 결혼했다.

 

 

덕혜옹주는 1912년 5월 5일 덕수궁에서 출생했다. 엄귀비가 별세한 지 꼭 10개월 만으로, 복령당 양씨 소생이다. 1914년과 15년에도 광화당 이씨가 이육, 보현당 정씨가 이우, 내안당 이씨가 옹주를 낳았으나 죽었다. - p.110

덕혜옹주는 만 네 살 때부터 덕수궁에 설립한 유치원에서 일본인 교사에게서 배웠고, 늘 일본인 가정교사가 있었으며, 소학교 2학년부터는 일본인 아이들이 다니는 일출소학교에 다니면서 일본인 교사에게서 일본어로 배웠다. 게다가 머리까지 좋았기 떄문에 덕혜옹주는 일본 유학 이전부터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잘했다. - p.173

 

 

이번 권에서 제일 기억에 남은 것은 덕혜옹주 이야기였다. 소설 등으로 지금까지 접해왔던 덕혜옹주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사실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일 정서에 감싸여 자라난 덕혜옹주는 일출소학교 시절 '일본어 동시 작가'로 명성이 높았고, 그녀의 동시에 일본인 작곡가들이 곡을 붙인 동요들은 일본 아이들에게까지 널리 불렸다고 한다. 일본유학 후에도 학업성적이 좋아 매스컴에서는 "화가와 동화에 천재가 계시며"라고 할 정도이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비운의 옹주'와는 퍽 떨어진 이미지다.

그런데 그녀에게 찾아든 비극은 대체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 책에서는 신문 등을 통한 당시의 정세와 증언의 행간을 읽어 '산계궁 등마왕(山階宮 藤麿王)과의 혼약설과 파혼'이라는 해석을 제시한다. 산계궁 등마왕은 1926년 만 14세가 된 덕혜옹주를 두고 궁내성이 혼사 문제를 다루기 시작할 당시 혼담 상대자로 거론되었고(p.181) 실제로 1927년 7월 조선에 건너와 창덕궁 윤비를 방문하고 조선 각지를 방문하는 등 행사를 치렀으나, 1928년 3월 신적 강하를 신청해 황족의 지위를 버리고 화족이 되면서 축파 등마(筑波 藤麿) 후작이 되었다(명치유신으로부터 60여년간, 황족이 신적강하로 화족이 된 사례는 겨우 5명이었다). 이로써 '덕혜옹주와 일본 황족과의 혼담'이 깨어지고, 1929년 늦가을 '조선 귀족과의 결혼설'이 보도되었다.

 

기정사실화되어 있던 황족과의 혼담이 깨지면 여성인 당사자로서는 심리적으로 매우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p.195). 실제로 방자의 여동생 이본궁 규자 여왕은 본인이 황족 여성인데도 황족 남성과 파혼하게 되자 부모도 없고 가난한 청년인 광교진광 백작과 서둘러 결혼한 바 있다. 덕혜옹주는 반일 정서에 노출된 적이 전혀 없었던 데다 조선 왕가의 유일한 옹주로서 떠받들리며 자라나 '일본 황족과의 결혼'을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결혼으로 받아들였는데도 일방적으로 파혼당한 것과 마찬가지가 되었으니, "학교 친구들로부터 들은 말을 감정적으로 강하게 받아들여 끙끙거리며 언제까지나 신경을 쓰거나 하며" 신경쇠약이 시작된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덕혜옹주가 학습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거나, "나도 대한제국의 황녀" 운운했다는 보편적인 상식은 개연성이 없다는 지적도 내친왕들과 얼굴을 마주칠 기회가 실제로 없었다거나 하는 근거가 확실하다. 혼담이 깨어지고 일본 황족, 조선 귀족, 일본 화족으로 상대가 자꾸 바뀌어 대마도 번주 가문의 종무지 백작과 결혼하기까지, 어디까지나 이해관계와 정략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덕혜옹주의 기구한 삶은 안타까우나 그녀가 이은이 그러했듯 어디까지나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친일로 물들어 있었음이 명확하기에 씁쓸하다.

 

이방자의 외사촌동생 송평가자와 결혼하였고 조선 공족으로 태어났으면서도 민족의식 같은 건 전혀 없이 완전한 일본인으로 살아간 이건과 달리 동생 이우는 아홉 살에 일본에 유학했으나 뚜렷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었다. 혼혈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박영효 후작의 손녀인 박찬주와 결혼했는데, 한일합방 이후 조선 왕공족 중 최초이자 최후의 동족결혼이다. 형제이면서도 완연히 다른 모습을 보인 이 둘은 인생의 끝에 이르러서도 정반대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건이 왕공족 폐지로 평민이 된 즉시 일본으로 귀화하고 이름도 일본식으로 개명하여 산 반면, 이우는 33세의 나이로 해방을 목전에 둔 8월 6일 광도(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희생된 것이다. 왕정복고는 이미 시대에서 먼 이야기이지만, 만약 이우가 살아 있었다면― 최소한 우리에게 남은 조선왕조의 마지막에 대한 기억이 좀 바뀌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해방 이후 어리석은 처신을 보여온 조선왕가는 마지막 후예, 이구가 줄리아와 이혼하고 후손을 남기지 않은 채 떠남으로써 "한 왕조가 그 문을 닫고 초라한 그늘과 못난 그림자까지 완전히 거두었다(p.396)."

 

"실제의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정도正道의 서술으로 / '우리의 진정한 역사'를 알리며 / 상상으로 꾸며진 역사소설보다 진짜 역사소설이 훨씬 재미있다" 는 작가의 의도를 이 책을 덮으면서 생생하게 느꼈다. 시대만을 빌려온 소설, 작가의 상상력을 담은 소설, 역사소설이면서도 실제 역사와 관계 없는 종류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역시 "어떤 역사적 인물과 그의 시대가 실제로 지녔던 함축과 격동의 폭과 의의는 대부분 인간의 보편적 상상을 크게 뛰어넘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 동의하게 된다.

 

/130309~130310

 

"내 지위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아무쪼록 지금까지와 마찬가지의 대우를 해줄 수 없습니까?" 라고 말한 것이다. (……)

그는 자신의 뿌리를 잃은 것이다. 뿌리 없는 자는 나약하고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뿌리 깊은 데서부터 치고 올라가서 줄기와 가지를 뻗고 잎과 꽃을 피우는 생명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뿌리 없는 나무와 같았던 이은에게는 조국이 독립했다는 사실과 그 조국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이나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진정한 인식이나 각오가 없었다. 그저 이전과 같이 일본에 살면서 융숭한 대우와 풍요로운 생활을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한 사람의 가엾은 퇴역 장군에 불과했다.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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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비로 살아가기 돌베개 왕실문화총서 5
심재우 외 지음 / 돌베개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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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비에 대한 책이다. 조선시대의 왕비 / 왕비 간택과 책봉 / 왕비의 출산 / 수렴청정 / 왕실 여성들의 독서와 글쓰기 / 왕비와 왕실의 외척 / 왕비와 궁중 여성들 등 여섯 가지 주제의 글이 실려 있다.

 

왕비 개인에 집중하여 관련된 에피소드나 야사를 다루기보다, 정사에 근거한 의례적인 면 등에 무게를 두어 다루었다.

후궁제도를 예로 들자면 후궁들이 초기에는 옹주, 궁주로 봉작되다가 조준·정도전이 상소문을 올려 내관 칭호(현의, 사식 등등)를 제안, 태종이 후궁제도를 공식화하였고(현의, 숙의, 찬덕, 순덕, 사의, 사침, 봉의, 봉선 등), 세종이 후궁을 내관·궁녀를 궁관으로 명확히 구분한 것 등...

후궁 제도의 변천(사실 '왕비'에 관한 것이니 후궁과 왕비의 관계성 쪽을 다룬 편), 왕비의 가례 절차가 자세히 나오고, 수렴청정의 사례를 대비와 왕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분석하였다.

 

부록이 알차다. 왕비 가계도, 왕비를 배출한 가문, 왕을 낳은 곳·낳은 날까지. 왕비 가계도는 왕비를 중심으로 한 가계도이니만큼 왕비의 자녀와 부모 뿐만 아니라 조부, 조모, 외조, 증조, 고조까지 성명·관직·추증을 자세히 기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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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 23권 (완결)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 23
조경래 / 휘슬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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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고 싶습니다.˝ 드디어 완결권이네요. 연재분으로 이미 봤지만, 이북으로 大尾라는 글자를 보니 또 뭉클해집니다. 23권까지 한 권 한 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차기작 <불꽃처럼>과 고려편도 어서 이북으로 만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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