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 스토리콜렉터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롤 플레잉Role-Playing Game. 역할 연기가 부른 비극 이야기.


살인사건이 두 건 일어났다. 그 두 건의 관계성이 밝혀지고, 두 피해자의 관계자들이 용의자로 떠올라 그 속에서 범인을 찾게 된다. 피해자 중 한 명은 바람피는 것이 이미 일상이고 딸과는 냉전 중인 '아버지'로, 그는 인터넷상에서 이상적인 '아버지'를 연기하며 '가족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가상의 가족'들이 용의선상에 떠오르는데…… 


"도코로다 씨는 가즈미 양이 어떤 딸이 되기를 바랐을까?"

"저런 딸요. 진정한 나를 찾고 싶다느니, 사랑해달라느니, 이해해달라느니, 자기가 있을 자리가 필요하다느니, 그런소리만 주절대는 딸요. 혼자서는 불안해서 못 견디고, 애타게 매달리는 딸요. 하지만 공교롭게도 저는 그런 겁쟁이가 아니었어요. 저는 그 사람 자식이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 인생의 장식품이 될 수는 없어요. 그런 건 절대 못 참아요!" - p.158


이 소설을 덮고 떠오르는 키워드는 역시 '가족관계'와 '역할연기'다. 피해자의 가상의 가족 역할을 맡았던 용의자들이 차례차례 등장하고 그들을 취조하는 모습을 피해자의 진짜 가족이 바라본다는 구도는 흥미로웠고, 과연 어떤 결말이 나올까. 약간의 트릭이랄까 속임수가 있다면 있는데… 크게 속았다는 기분보다는 아, 역시- 하는 기분이 강했다. 엄청난 반전으로 흥분한다기보다는 담담하고 수수한 결말. 증거를 찾아 헤매는 현장감보다는, 수사에서 밀고 당기는 경찰과 용의자의 심리적인 갈등. 범인 체포는 퍽 쉽게, 어떻게 보면 싱겁게 끝났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아까의 '미안해'와 지금 이 말 중. - p.276


모방범과 크로스파이어의 두 형사가 등장한다는 선전문구를 보고 집어들긴 했지만, 두 작품과의 연관성은… 두 작품 중 하나밖에 안 본 입장으로 말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니까. 다만 크로스파이어에 관해 짤막한 언급이 있는데 (치카코가 그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을 다케가미는 처음 들었다 - p.276) 덕분에 크로스파이어를 읽어보고 싶어지긴 했다. :)



창백하게, 부서진

나비의 잔해를 꺼내리라.

그리하여 건네면서 말하리라.


일생을

아이처럼, 쓸쓸하게

이것을 쫓았노라고. - 사이조 야소


/1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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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집 - 갖고 싶은 나만의 공간, 책으로 꾸미는 집
데이미언 톰슨 지음, 정주연 옮김 / 오브제(다산북스) / 2011년 12월
절판


진정 위대한 책은 어려서 읽고, 커서 다시 읽고, 늙어서 또 읽어야 한다. 훌륭한 건물을 아침 햇살 속에 보고, 점심 때 보고, 달빛 아래 다시 봐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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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식여행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密室の鍵貸します (2002)


다만 동기 부분에서는 더 이상의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스나가와 경부의 견해가 정곡을 찌르고 있는지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게 됐다. - p.328


줄거리는 책 뒷표지로 갈음할 수 있겠다. 주인공 도무라 류헤이가 선배의 집에서 비디오를 보고 있던 날 밤 그의 헤어진 여자친구가 추락사하고, 선배 역시 밀실상태의 집에서 칼에 찔린 채 죽어 있었다. 주인공은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다며 누나의 헤어진 남편, 사립탐정 우카이 모리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경찰들은 류헤이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쫓게 되는데……


주인공의 행동이나 경찰들, 그리고 탐정, 주변 인물들까지 소소한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사건 자체는 그렇게 깊고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시점쯤 되면 트릭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개인 평가는 좀 짜다. 읽기에 나쁘지는 않지만 히가시가와 도쿠야라는 이름 때문에 기대치가 너무 컸단 느낌.「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나 「방과 후는 미스터리와 함께」가 더 취향이었다.


/1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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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는 미스터리와 함께 코이가쿠보가쿠엔 탐정부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放課後はミステリ-とともに


"조심하세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생명이 위험해요!"

"음."

할아버지는 나를 빤히 보았다.

"내 눈에는 자네가 훨씬 위험해 보이는데. 그나저나 그렇게 말하는 자네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나는 밧줄에 허리가 묶인 채로 빙글빙글 돌며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코이가쿠보가쿠엔의 키리가미네 료라고 합니다. 수상한 사람은 아니예요. 보시는 바와 같이 평범한 여고생이니까요,"

어차피 평범하게 보이지는 않을 테지만. - p.85


코이가쿠보가쿠엔의 탐정부 부부장이며 우투수 겸 우타자, 히로시마 카프의 팬인 평범한(?) 여고생, 키리가미네 료 16세.


「방과 후는 미스터리와 함께」는 이 소녀를 중심으로 일상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유머 미스테리 소설 단편선이다. 총 여덟 작품이 수록된 이 단편집은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이름을 보고 예상할 수 있듯 유쾌하다. 배경은 주인공이 다니는 코이가쿠보가쿠엔과 그 주변. 함께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같은 반 반장이나 같은 학교 학생, 교사, 학교 직원들, 교생 등 학원물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탐정임을 자인하는 천방지축 여고생이 가는 발길마다 사건이 꼬리를 무는 모양이 생각나지 않는가?


그 때문일까, 사건은 으레 추리소설 하면 떠올리는 피나 시체 같은 요소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도둑을 쫓아갔는데 홀연히 사라져 버린데다 2차 사건이 발생하지만 다행히 죽은 피해자는 없었다거나(키리가미네 료의 굴욕) 파파라치를 피해 도망간 연예인의 트릭을 밝혀냈는데 그게 실은…라거나(키리가미네 료의 역습) 가족들이 죽길 바라는 할아버지가 커피에 독이 들었다며 정말로 쓰러진다거나(키리가미네 료와 보이지 않는 독) 지구과학 선생님과 UFO를 쫓아갔다가 쓰러진 여성을 발견하거나(키리가미네 료와 X의 비극) 담배 찾기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범죄를 밝혀내거나(키리가미네 료의 방과 후) 함께 걷던 교생의 머리 위로 자살미수의 소녀가 떨어져 내리거나(키리가미네 료의 옥상 밀실) 멍청한 육상부 소년에게 일어난 사건에 말려들어가거나, 에어컨으로 불린 끝에 …라는 오해까지 받거나(키리가미네 료의 절규, 키리가미네 료의 두 번째 굴욕)

그러나 이 사건들 가운데 정말로 죽은 피해자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미스터리를 즐길 수 있다. 물론 '죽지 않았으니까' 하고 그냥 웃어넘길 일은 아니지만, 본래 유머 미스터리이고 여고생 탐정과 학원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인지 추리소설 하면 피할 수 없는 '피해자'가 겪는 위기가 그나마 가벼운 수준. 추리소설이 무겁고 잔인하게 느껴져 주저하는 사람에게는 꼭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


/120513


시리즈

學ばない探偵たちの學園

殺意は必ず三度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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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단지 그미가 남편과 더불어 나누어 가질 만한 화두가 있기나 했을지, 생의 근원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생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말과 말을 통하거나 시를 읊으며 소통이 가능했을지 그 답답했을 삶이 슬프다. - p.267


스물일곱 해, 비극의 여류시인 허난설헌. 조선시대 여류시인을 생각할 때 황진이, 신사임당과 더불어 떠오르게 되는 허난설헌. 황진이가 기생이지만 그 몸에 자유가 있었고 신사임당이 후대까지 귀감으로 칭해지는 그야말로 현모양처라면, 난설헌은 마치 조선조 여인이 지닌 불행의 상징 같았다.


여덟 살 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을 지음으로써 지금까지 전해지는 반짝이는 영명함. 딸이지만 여인의 굴레에 묶이지 않고 글을 공부했으며 시어를 다듬어낸 그 재능은 아버지의 그늘에서만 피어날 수 있었다. 소설「난설헌」은 초희 아씨, 자는 경번이고 당호는 난설헌인 '그미'가 혼례를 치르던 시기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버지에게, 남편에게, 아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여인으로서 남편의 그늘에 들어간 난설헌의 인생은 더 말할 것 없이 설움으로 가득했다.


시모 송씨는 재주 많은 며느리를 처음부터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고, 남편 김성립도 제 학문 얕음에 지레 겁먹고 아내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엄격한 시가와 정붙이지 않는 남편, 그미에게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딸에게 소헌이라 이름을 붙이니 멋대로 항렬자를 써 계집에게 이름을 붙였다 못마땅해했고, 아들 제헌을 낳고 돌아온 시집에서는 한 스승 아래 동문지간이라 할 만한 최순치와의 사이로 모함받아 아들을 빼앗기고 대문조차 넘지 못했다.


아들 버선도 제대로 못 말라 주었던 무관심한 어머니이며, 아들 급제에만 목매는 송씨는 난설헌에게 추문을 씌워 손녀손자를 앗아가고는 제대로 돌보지도 않아 둘 다 병들어 죽을지경에 되어서야 그미의 품에 안겨 주었다. 두 아이들이 차례로 싸늘하게 식어가고, 급기야는 본래 초희네가 부리던 종인 술집 여자 금실이 집안에 끌어들여지고 김성립의 아들을 낳아 기세등등한 것을 보았을 때는 이미 어이가 없었다. 끝무렵에 이르러 죽음을 준비하는 난설헌의 모습은 그저 눈물마저 말라 서러웠다. 시대가 얼마나 여인을 짓눌러, 아름다움과 재주가 흠이 되어버리는지...


소설 중간중간 등장하는 시들은 난설헌의 눈물이, 채 삼키고 흘리지도 못했던 서러움이 고여 반짝이는 양 아름다웠다. 그 괴롭고 서러운 인고의 시간을 지났기에, 그 시는 저렇게 눈부시려나.




해맑은 가을 호수 옥처럼 새파란데 秋淨長湖碧玉流

연꽃 우거진 곳에 목란배를 매었네 荷花深處繫蘭丹

물 건너 님을 만나 연꽃 따 던지고 熢郞隔水投蓮子

행여나 누가 봤을까 한나절 부끄러웠네 遙被人知半日差

(采蓮曲) - p.160


푸른 산과 붉은 집이 드높은 하늘에 잠겼는데 靑苑紅堂.沈.

학은 단시 구을 부엌에서 졸고 밤은 아득만 하다 鶴眠丹.夜..

늙은 신선이 새벽에 일어나 밝은 달을 부르고 仙翁曉起喚明月

바다 노을 자욱한 건너에서 퉁소소리 들린다 微隔海霞聞洞簫 - p.331


맑은 이슬 촉촉한데 계수나무 달이 밝다 露濕瑤空桂月明

꽃 지는 하늘에는 흥겨운 퉁소소리 九天花落紫簫聲

옥황님께 조회하는 금 호랑이 탄 동자 朝元使者騎金虎

붉은 깃의 깃대는 옥청궁으로 올라가네 赤羽麾幢上玉淸 - p.333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碧海浸瑤海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靑彎倚彩彎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芙蓉三九楹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紅隋月霜寒

夢遊廣桑山詩 - p.353


허난설헌연구 / 허미자 / 성신여자대학교출판부(1984)

태평광기太平廣記


/12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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