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노블이 벌써 1주년이 되었다고 한다.

기념차 나비노블에서 지금까지 나온 책들을 정리해봤다.

(13/11/27 현재 예약중인 책 2종까지 도합 13권.)

 

 

 

 

 

 

 

 

 

 

 

 

 

 

 

 

<여라의 잿빛 늑대>. 나비노블 초기작이지만 출간되었던 <타임리스 타임>이 4권까지 발매된 것에 비하면 뒷권이 감감 무소식...ㅠㅠ 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듯. 2014년에는 뒷권을 만나볼 수 있을까.

 

 

 

 

 

 

 

 

 

 

 

 

 

 

 

 

 

 

 

 

 

 

 

 

 

 

 

 

 

 

<타임리스 타임>. <낙신부>, <메르헨>, <에튀드> 등을 출간하신 박미정 작가님의 현대 판타지 소설이다. 시간계 사신 이안,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죽게 된 스무 살 여성 유진이 인간 아닌 종속망량으로서 이안과 함께하며 사건들이 벌어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1~4권까지 출간되었고 2014년에도 다음권이 쭉 발매되어주길 기대하고 있는 작품.

 

 

 

 

 

 

 

 

 

 

 

 

 

 

 

 

 

 

 

 

 

 

 

 

 

 

 

 

 

<병아리>. <러브리스> 등을 출간하신 권새나 작가님의 판타지 소설이다. 봄과 겨울 형제가 이세계로 넘어가는 이세계 트립물이며, 겨울이 소녀가 되는 TS물. 취향 퍽 타게 생겼지만.. 웹연재 당시 읽어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손 안 댔던 전작 러브리스까지 읽게 되었던 작품이다. 4권은 12월 발매로 현재 예약중(당연히 주문한 상태). <타임리스 타임>과 함께 신간이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구매하고 있는 나비노블 최고 기대작 중 하나.

 

 

 

 

 

 

 

 

 

 

 

 

 

 

 

<메마른 빛, 이슬 한 방울>. 2권이 발매되었을 때 1~2권 표지가 이어지는 센스에 감탄했지만! ....아쉽게도 미묘하게 취향이 아니었던 작품. 조아라 프리미엄 연재 당시부터 앞부분은 몇 번 읽으며 이북을 살까말까, 고민했는데... 마침 나비노블에서 종이책이 나와주어서 1권을 읽었지만, 여전히 결정적인 뭔가가 부족해서;; 갸우뚱 하고 있다.

 

 

 

 

 

 

 

 

 

 

 

 

 

 

 

 

2013년 마지막 나비노블 발매작 <카르페디엠>. 추억의 프린세스 메이커를 떠올리게 하는 흥미로운 소재와 미려한 일러스트다. 현재 나비노블 1주년을 맞이하여 나비노블 두 권 이상 주문시 카르페디엠 포스트잇을 주는 이벤트를 하는데...보고 싶은 작품을 쌓아두기보다 나오자마자 꼬박꼬박 주문해와서 두 권 사기가 애매하다.

 

나비노블 작품들은 웹연재 당시 접한 것들이 대부분이라, 완전히 처음 보는 작가+처음 보는 내용..! 하고 구입을 고민하게 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웹연재 때 책 나오면 꼭 삽니다! 였거나 읽어보고 손 안 간다...; 하고 갈렸기 때문에 책 구입 여부를 두고 고민한 건 웹연재 공개분이 짧은 <메마른 빛, 이슬 한 방울> 밖에 없었던 듯.

 

나비노블 1주년을 축하하며, 오래오래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와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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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으로 시작하는 스무 살
차병직 지음 / 홍익 / 2012년 6월
절판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모처럼 한 권의 책을 읽고 흐뭇해하며 책이 지시하는 내용을 그대로 믿는 것은, 우연히 본 텔레비전에서 좋다고 방송한 식품을 우격다짐으로 먹고 질병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은 태도다. 그리고 책의 저자도 대학의 교수이거나 그와 비슷한 수준의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테마의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어라'고 한다. 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또는 인문학이든, 전문지식이나 상식이란 것은 어떤 객관적 진리 그 자체가 아니다. 아무리 전문 분야의 정설이라 하더라도 깊이 들어가면 거기엔 학설의 대립이나 의견의 충돌이 존재한다. 지식이란 진실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요 측면이다. 저자를 믿고 의지할 것이 아니라, 저자의 의견을 참고하여 스스로 판단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26쪽

이렇게 출발한 비코의 결론을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은 알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직접 만든 것은 그 근원까지 따지고 들어갈 수 있기에 철저히 알 수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것을 '원인에 의한' 지식이라 불렀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수학을 꼽았다. 비코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기하학을 증명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계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세계를 완전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로지코믹스> 랜덤하우스-172쪽

<일상이 아름다운 음악>이란 책이 있다. 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작은 책자로, 84곡의 음악을 선곡하여 간단한 해설을 붙인 것이다. 이 책에는 부록이 있는데, 바로 84곡을 모두 담은 CD 14장이다.
...
"덜 깬 잠을 음악으로 적셔 깨어날 수 있다면, 깨어남은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음악을 통해 하루의 피로를 생명의 활력으로 뒤바꿀 수 있다면 시간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커튼처럼 드리워진 음악이 인생의 의미를 속살거리는 그 속으로 잠들 수 있다면, 잠과 꿈은 얼마나 안온할 것인가."

<논어> 홍익출판사-210쪽

이야기로 읽든 역사로 읽든 <로마제국 쇠망사>는 독자의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 방대한 양이 의욕을 사그라들게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여섯 권의 완역본 중에서 3권이나 4권까지만 읽는 방법이다. 동로마제국에 관한 후반부 1000년이 그리도 궁금하다면, 요약본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 <그림과 함께 읽는 로마제국 쇠망사>(청미래)다. 최근에는 번역가 이종인이 직접 축약한 <로마제국 쇠망사>(책과함께)도 나왔다.-234쪽

역사를 읽는 것이 재미있는 것은 그것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마치 소설이 이야기인 것처럼. 구체적인 이야기일수록 과거를 촬영한 다큐멘터리 필름같이 흥미롭다. 하지만 그 과거의 사실은 역사가의 해석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해석은 세 단계에 걸쳐 이루어진다. 사실의 선택, 기술, 결론의 단계에서 해석이 끼어든다.(……) 관심 있는 역사의 독자는 자신이 지닌 비판의 눈을 감지 않고 역사책을 읽기 때문이다. 역사는 역사가의 창조물이고, 독자는 자기 방식으로 읽으면서 재창조한다.-234쪽

역사를 해석하거나 읽을 때 미래지향적 목적성도 빠뜨릴 수 없는 요소이다. 카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강조하듯, 과거를 통해 지금의 우리가 있고 동시에 그것은 미래로 향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매번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하면서도, 과거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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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후
박승현 / 북스(VOOXS)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조선, 혹은 대한제국의 황후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는 것은 명성황후이다. 시아버지 흥선대원군을 밀어내고 지아비 고종과 함께 권력을 차지하여, 쇄국을 끝내고 개화하며 격동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조선을 지키고자 하였으나, 이웃나라 정치가들의 비인간적인 판단과 그를 실행한 무도한 낭인들의 검에 의해 살해당한 비운의 여인.

 

마지막 황후는 그 명성황후의 아들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 윤씨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훗날의 순정효황후, 막 어머니를 잃은 열세 살 소녀 증순은 권력을 노리는 백부 윤덕영과 빚투성이 망나니인 부친 윤택영에 의해 팔리듯이 황태자비가 된다.

 

당당한 증순에게서 명성황후를 연상하여 기를 꺾고자 하는 이토 히로부미와 그 뜻을 받아 움직이는 상궁들. 이미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한일합방이 눈앞에 있는, 바람 앞 등불 같은 처지의 왕실에서 새 황태자비는 전혀 존중받지 못한다. 아군이라고는 증순과 기묘한 인연을 맺게 되어 시종무관으로 함께 궁에 들어오게 된 나석중, 힘없는 일개 나인이지만 최선을 다하여 증순을 돕는 나인 성옥염 뿐.

 

"나, 나도 훌륭한 왕이 되고 싶었소. 하, 하지만 그때는 이미 국운이 쇠잔할 대로 쇠잔하였소."

"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욕을 참고 왕실을 보, 보존하는 것 뿐이었소. 일본으로부터, 친일파로부터, 왕실을 잊어 가는 백성들로부터 온갖 모욕을 참으며 나무처럼…… 뿌리를 깊이 내린 채 겨울을 견디는 나무처럼 그렇게……." - p.294

 

사실 읽다 보면 비중 자체는 석중이 더 많지만^^; 마지막 황제로서 옅은 족적을 남긴 황태자 이척도 인상적이다. 순종은 윤덕영에 대한 반감으로 증순을 아내로 받아들이지 않고 싸늘하게 대하였지만, 증순이 생명의 위협에 처하자 발빠른 행동력을 보였다. 겉으로는 냉대했지만, 순종은 증순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러나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고 늘 빼앗겨 왔기에, 황후마저 빼앗길까 두려워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이윽고 서로에게 차근히 마음을 열어간다. 망국의 왕이란, 얼마나 서글픈 존재인지. 없어진 나라의 그림자 속, 한때는 그 나라 자체였던 사람 역시 말라죽어갔던 것이다. 그럼에도 속에 맺힌 억울함과 분노마저 토해내지 못한 인생, 순종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공화정이란 이름의 새 왕국을 세우려는 것 같군요. 웬만하면 그만두세요. 사욕으로 세워진 왕조가 얼마나 가겠어요?" - p.284

 

단편적으로,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비중으로 등장하는 이승만. 실제로 대한민국의 첫 번째 대통령이며 왕실과의 관계에서도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는, 극렬 공화주의자이지만 공화국의 탈을 쓴 자신의 왕국을 꿈꾼다.

석중은 승만을 스승으로 모시고 어버이처럼 따랐으며 그에 의해 승만과 증순 사이에도 교류가 있었지만, 승만과 증순은 결국 결별하게 되고 잊혀진 황후 증순과 달리 화려한 권좌에 오른 승만은 이후 자신의 욕심을 위해 증순의 목숨을 노리기까지 하는 관계가 된다.

 

"사람들이 또 강물이 되어 흐르는구나. 나는 저 도저한 물결을 예전에도 본 적이 있다. 누군가가 총을 쏘고, 누군가가 피를 흘려도 저 푸른 물결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 p.326

 

되새겨보니 그녀야말로 시대의 격동을 겪으며 굴곡어린 인생을 살아왔다. 조선왕조가 종지부를 찍고 치욕의 시간을 지나 이윽고 해방, 그리고 전쟁, 혁명에 이르기까지……. 이름은 화려한 황후였지만 인고의 삶이었다. 눈물어린 세월의 그림자 속, 이러한 사람도 이러한 인생도 있었구나 하고 새삼 되새겨 본다.

 

/131120 읽고 13112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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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태자> 시리즈의 1~3권을 읽은 것은 2011년 6월.

<마지막 황태자>의 대미를 찍은 4권을 읽은 것은 2013년 3월이었다.

 

<마지막 황태자> 시리즈는 마지막 황태자 이은을 중심으로 우리가 막연한 이미지만 품고 있던, 혹은 잘 몰랐던 조선 마지막 황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과거의 조각들을 찾아내어 촘촘히 꿰어가는 작가의 해석은, 그늘을 드리운 옛 시대를 돌아보게 한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독자였던 내가 막연히 품고 있던 의아함을 풀어주기도 했고, 본래 지니고 있던 생각과 정반대이기도 했다. 역사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지 혹은 터무니없는 가설에 지나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읽어보니, 어느 정도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기는 했다.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모처럼 한 권의 책을 읽고 흐뭇해하며 책이 지시하는 내용을 그대로 믿는 것은, 우연히 본 텔레비전에서 좋다고 방송한 식품을 우격다짐으로 먹고 질병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은 태도다. 그리고 책의 저자도 대학의 교수이거나 그와 비슷한 수준의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테마의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어라'고 한다. 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또는 인문학이든, 전문지식이나 상식이란 것은 어떤 객관적 진리 그 자체가 아니다. 아무리 전문 분야의 정설이라 하더라도 깊이 들어가면 거기엔 학설의 대립이나 의견의 충돌이 존재한다. 지식이란 진실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요 측면이다. 저자를 믿고 의지할 것이 아니라, 저자의 의견을 참고하여 스스로 판단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 p.26

 

 

 

 

 

 

 

 

 

 

 

 

 

 

 

 

그래서 읽게 되었다... 고 하기에는 시간차가 꽤 나지만.

비슷한 테마의, <나는 대한민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를 읽었다.

(실제로 읽은 책과는 표지가 다르지만 저자명 등을 봐서는 같은 책인 듯)

 

이 일로 해서 나도 일본의 잔학성을 드디어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아무리 인심이 흉흉하여도 이것이 일본인들이 하는 정치라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나의 입장에 대해 애매하게 평가하지만 나는 한·일간에 있었던 이러한 일들을 직접 체험하면서 일본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영원히 갚지 못할 빚이다. - p.129

 

 

일본에서 태어난 나시모토미야 마사코는 조선 왕세자 이은과 결혼하였다. 그들이 결혼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여러 관계가 얽혀 있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던 전쟁, 국제정세, 한일관계…… 그 중심에서 남편과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마사코의 마음이 생생하게 적혀 있다. 마사코의 눈으로 바라본 이은의 삶, 비극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 세월.

 

이미 관련 서적이랄 수 있는 <마지막 황태자> 시리즈를 읽었기에 아주 새로운 부분은 없었지만, 제목처럼 이방자 여사라는 한 사람의 시각으로 그려졌기에 자전적 느낌이다. 이은과 이방자, 순종 이후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까지. 나라가 해방된 뒤에도 조선 왕실의 후손들은 해방될 수 없었음을, 씁쓸한 생각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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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코를 읽고 2014-01-09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러게요 참 답답 한 이 나라도. . 비열한 일본 보다. .

더 비열한 나라팔아 먹은 대한 민국 종자들이 참. . 그러하네여. . .

근 대사에 대해 다시금 생각 하게 된 책들입니다. .

잘 못 알고 있던 제 자신이 좀 부끄럽네요. . .ㅠㅠ

 

 

 

 

 

 

 

 

 

 

 

 

 

 

 

 

 

 

 

 

 

 

 

 

 

 

 

 

 

 

 

근현대사. 시작으로는 세도정치를 종료시킨 흥선대원군, 외세들이 벌이는 각축전의 틈바구니에서 약소국으로 우리나라가 겪었던 슬픔은 책장을 넘기는 손을 무겁게 한다. 한 나라 국모의 신상에 일어난 믿을 수 없는 사건, 명성황후 시해나, 임금이 궁을 버리고 한 나라 공사관으로 몸을 피해야 했던 아관파천 등. 지금은 끝났기에 돌아볼 수 있지만,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을 일제강점기에 광복까지. <마지막 황태자>는 조선으로부터 일제강점기 사이에 존재하는 '대한제국'을, 정확히는 그 나라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이 은을 주인공으로 삼은 세 권의 역사소설이다.


당시 일본 지도자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웃 나라의 국모를 죽여 버리는 것을 할 만한 일로, 또 해야 할 일로 간주했다. 그 정신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자연인이든 국가이든 간에 마찬가지다. 실제 할 수 있는 일과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 자체를 잃는 것이고, 그것은 곧 모든 것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 상태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때 일본의 지도자들은 이미 그런 상태에 떨어져 있었고, 그런 자들의 주도로 일본이라는 나라는 그 추하게 일그러진 해외 침략의 길에 뛰어들어 참혹한 패망의 날까지 계속 그 길을 치달렸다. - 1권/p.112

 

1권 <못생긴 엄상궁의 천하>는 명성황후 사후 재입궁한 엄 상궁이 아관파천을 주도하며 아들을 낳고, 대한제국이 건국되어 그녀 자신이 황귀비라는 위치에 올라 영친왕비를 간택하는 때까지를 그리고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는 가운데 명성황후 못지않은 엄귀비의 정치적 궤적을 보면 엄귀비 역시 황후에까지 못 올랐을 뿐(숙종대 장희빈 이후 후궁이 중전이 되지 못하도록 되어있었으므로) 새 왕후의 입궁을 막고 그에 준하는 위치까지 오른데다 그에 걸맞는 활약을 했으니, 그럴 만한 여성이라고 느껴진다.


인질……. 인질이 대체 무엇인가. 어떤 존재인가. 누군가 인질이 되는 순간, 그는 곧 인간인 동시에 이미 인간임을 벗어난 어떤 특수한 존재가 된다. "나의 생명과 존재와 가치에 대한 처분권이 너희들의 손에 있음을 인정하겠다"는 약자의 비명과 슬픔이 사람의 형체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곧 인질이다. 이쪽과 저쪽이 지닌 권력 관계의 강약을 보여 주는 하나의 살아 있는 상징이요 기호가 되는 것이다. - 2권/p.173

 

2권 <황태자의 동경 인질살이>는 1권 이후, 해아밀사사건[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이 퇴위당하고 순종이 즉위하며, 영친왕이 황태자가 되어 동경으로 끌려가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될 때까지를 담고 있다. 1권에서 엄귀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면, 2권에서는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꼽을 수 있겠다. 일설에 이토 히로부미가 죽어 한일병합이 앞당겨졌다고 했는데 그것이 터무니없는 거짓이며, 이토 히로부미가 어떤 인물인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인질살이'중 우리나라 황태자를 회유하기 위해 일본 명치천황과 이등박문이 어떤 '독 묻은 사랑'을 주었는지, 어린 소년 이은이 어떻게 넘어가 세뇌된 채 평생을 살아가게 되었는가... 그리고 한일병합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제일 인상깊었던 것은, 실제로 내가 어렴풋하게 '이토 히로부미가 죽어서 한일병합이 앞당겨졌다, 그는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방향은 아니었겠지만 방법론적으로) 한일병합 반대파였다'라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면서 그게 절대 아니라는 걸 안 것이다. 사실 작중에서도 말하듯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말로는 전혀 한국을 침략할 뜻이 없다고 하면서, 그럴 생각은 전혀 없이 감언이설로 한국인을 속인 것이 그의 실체였기 때문이다(2권/p.312) 새삼 "자국을 위해서라면 이웃 나라의 국모를 죽여 버리는 것을 할 만한 일로, 해야 할 일로 간주한" 당시 일본 지도자들이 어떤 인간들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막내아들 부부가 신혼여행을 겸해 파리강화회의에 가서 일본 정부가 구사하는 정략의 도구가 되어 태황제 자신이 지금 혼신의 힘을 다해 추진하고 있는 생애 최후의 대계획을 망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일뿐이었다. 태황제의 죽음은 당시 절체절명의 곤경에 빠진 자로서의 스트레스와 고통을 견디지 못한 데서 온 비극이었다. - p.323

 

3권은 <왕세자 혼혈결혼의 비밀>. 2권의 '황태자'에 비해 한 격 내려선 '왕세자'라는 호칭처럼, 3권은 2권 못지않게 먹먹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2권에서 어머니와 억지로 떼어져 인질로 끌려온 황태자가 얼마나 다부졌나. 3권에서 왕세자가 된 이은은 학습원[일본의 귀족학교]에 입학해 연상의 학우들과 공부하며 우등생을 차지하나,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일본인들에 의해 육군중앙유년학교로 보내져 체격적으로 뒤져서 열등생이 될 수밖에 없는 군사교육을 받게 된다. 물론 이후로 우등생은 되지 못했다.

한편 나라가 멸망한데다 귀한 아들이 물 건너에서 군사훈련을 받으며 주먹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본 엄귀비는 충격으로 쓰러져 절명한다. 이어 순종은 억지로 끌려와 천기봉사[직접 일본에 와 일본황제에게 문안드림]를 하는 굴욕을 당하고, 이은은 조선에서 기다리고 있는 약혼녀 민갑완이 아니라 일본 황족 여자 이본궁 방자 여왕[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 왕녀]과 약혼한 것을 신문에서 보는 처지가 된다.

 

3권에서 등장한 새로운 인물, 혼혈결혼의 당사자 이방자는 자신을 정략결혼의 희생양으로 느꼈다고 작중에 인용된 여러 서적들에서 말한다. 하지만 작중에서는 사실 그 어머니 이도자비[나시모토노미야 이쓰코 비] 및 이본궁 측이 자청해 방자를 이은과 결혼시키려 했다고 하며 근거를 제시한다(3권/p.142). '나라를 위한 희생'이라던가 가장 유력한 황태자비 후보였는데 미미한 정치적 기반과 불임의 가능성 때문에~ 같은 것은 시기적으로 봐도, "방자는 황태자와 나이가 같았기 때문에, 나는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다-<삼대의 천황과 나> p.114"라는 이도자비의 말(3권/p.127)을 봐도 완전히 잘못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렇게 흔히 갖고 있던 선입관을 제외한 이방자는 (일본측이 인물상까지 따져 결혼을 결정했는지는 모를 노릇이지만) 곱고 명랑하며 사치를 즐기는 "와신상담의 고난을 잊지 말아야 할 처지였던 망국의 황태자 이은에게는 최악의 조합에 해당하는 배필"이었다(3권/p.297)


고종은 보통 독살되었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고종 독살설을 정면으로 부정한다.어떻게든 아들의 결혼을 막고, 만국강화회의의 기회를 노리려다, 신문을 통해 펼쳐지는 끊임없는 일본의 압박과 아들을 통해 펼쳐지려는 일본의 술수로 인해 원통하게 승하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종의 인산일을 이틀 앞둔 1919년 3월 1일, 저 유명한 삼일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다.

역사소설은 그저 역사의 일설을 채용해 진짜인 양 '소설'로 꾸며내는 재미로 읽는 종류도 있지만, 이 세 권의 책은 '역사'로서 읽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 을미사변 이후 엄상궁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부터 영친왕의 결혼을 앞두고 고종이 승하하며 벌어진 삼일독립만세운동까지, 역사적으로 큰 획을 그은 사건들뿐만 아니라 "조선왕실을 연관지어 당시의 상황을 좀 더 바르게" 알고 싶다면 주저없이 권하고 싶은 책이다.

/1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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