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애나의 기쁨놀이>의 속편, <폴리애나의 청춘>을 읽었다.

 

이 책은 말하자면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있다. 폴리애나가 보스턴에 가서 커루 부인과 함께 지내는 전반부, 스무 살이 되어 벨딩스빌로 돌아온 후반부.

 

폴리애나와 요양소에서 만났던 델라 웨더비는 잃어버린 조카 제이미를 그리워하며 날마다 눈물짓기만 하는 언니 커루 부인에게 '폴리애나 한 첩'을 지어줬으면 하고 바라는데, 칠턴 부부가 독일로 떠나 있는 동안, 실제로 폴리애나를 보스턴에서 맡을 수 있게 된다.

커루 부인은 유복하기 때문에, 폴리애나는 그녀에게는 "폴리애나의 기쁨 놀이"가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에서든 기쁨을 찾아내는 놀이 따위를 아주머니가 할 이유는 없어요. 굳이 찾지 않아도 기쁜 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p.50)." 하지만 커루 부인은 잃어버린 제이미를 생각하면 무슨 일에도 기뻐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친구라고 믿고 있는 이 유쾌한 아가씨는 여전히 '기쁨 놀이'를 시도하지만, 한편으로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고민을 보게 된다. 까다로운 손님들에게 리본이며 레이스를 판매하는 점원 아가씨, 명랑하지만 어렵게 살고 있는 신문 팔이 소년, 그와 함께 살고 있는 다리가 불편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소년들이 지닌 고민들에, 폴리애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그렇겠지. 자선사업에는 얼마든지 돈을 낼 테죠. 그런 사람들은 길을 잘못 들어 인생을 망쳐버린 사람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손을 내밀어 도와주지요. 그것도 물론 좋은 일이에요. 하지만 그만큼 친절하다면 어째서 젊은 아가씨들이 길을 잘못 들기 전에 도와주려 하지 않을까. 누가 상냥하게 보살펴주기만 한다면 모두들 그러게 길을 잘못 들지는 않을 거예요……. 내가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거지." - p.128

 

커루 부인은 점원 아가씨 세이디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자선사업을 구상하고, 잃어버린 조카 제이미와 똑같은 이름을 지닌 다리가 불편한 소년 제이미를 집으로 맞아들인다. '폴리애나 한 첩'이 톡톡히 효과를 본 셈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스무 살로 성장한 폴리애나는 이모부를 잃고 이모와 함께 벨딩스빌로 돌아온다. 폴리애나를 돌봐주던 낸시, 멋지게 성장한 지미 빈과 그의 양부이자 폴리애나의 어머니를 사랑했던 펜들턴 씨 등과 다시 만나게 된다.

 

슬프게도, 칠턴 씨가 돌아가시고 해링턴 가가 보유한 주식 수입도 줄어들면서 폴리애나와 이모는 생활고에 부딪치게 된다. 불평투성이인 이모와 달리, 폴리애나는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 한다. <폴리애나의 기쁨놀이>에서 마냥 천진한 아이의 감정적 회복이 주였다면, <폴리애나의 청춘>에서는 어른이 되어 현실과 마주해서 때로 좌절하고 때로 기운내려는 폴리애나가 나와, 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한편, 전반부에 등장했던 커루 부인 가족이 요양을 겸해 폴리애나의 집에 머물게 된다.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오해(사실 왜 이런 걸 오해하나, 싶은 부분은 시대적 차이일까;)가 잠시 초조하게 느껴지지만, 결국 오해는 풀린다. 폴리 이모의 반대가 잠깐 나오지만, 아마도 읽는 사람들 대부분이 예상했을 지미 빈의 과거가 밝혀지고, 두 사람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작위적으로 느껴질 만큼 완전한 행복의 형태. 결말 자체는... 여럿의 사랑이 이루어졌다지만, 그 사랑으로 인해 모든 고난이 해결된다는 것은 좀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폴리애나의 기쁨놀이>에서 마주한 폴리애나에 비해, <폴리애나의 청춘>은 조금 씁쓸하다. 폴리애나마저도 영원히 기쁨 놀이를 하는 아이일 수는 없을 테니까, 어쩔 수 없다. 다만, 기쁨놀이를 하던 그 긍정적인 마음씀을 되새겨 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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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는 것도 아니면서,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대한 책을 여전히 지나치지 못하고 있다. M.J. 애들러의 <독서의 기술>을 십대를 위해 고쳐쓴 책이라는 <독서의 기술, 책을 꿰뚫어보고 부리고 통합하라>를 펼치게 된 것도, 그런 독서방법론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먼저, 책의 수준을 단계별로 분류한다. 재미로 읽는 글 / 지식을 쌓기 위해서 읽는 책(교과서, 교양 서적, 자기계발서, 학교에서 필독서로 선정한 단편 소설) /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즐겨 찾는 분야-학교 추천도서(세계 명작, 장편 문학, 시집과 사회과학, 자연과학, 쉬운 고전) / 고전 사상서.

책의 수준 단계가 있는 것처럼, 책읽기의 수준 역시 있다. 제 1수준 : 기초적 읽기 / 제 2수준 : 중급 단계 / 제 3수준 : 분석하며 읽기.
살펴 읽고, 분석하며 읽고, 비판하며 읽고, 통합적으로 읽는다.

 

살펴읽기란, 15~30분 안에 책 한 권을 다 읽고 최대한 많은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다. 살펴읽음으로써 짧은 시간에 충분한 독서 효과를 얻고, 스스로 좋은 책을 선택하는 안목을 키우며, 좋은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이 목적이다. 1단계에서 시간을 투자할 만한지, 빠르게 핵심을 파악하고 / 2단계에서 책 전체의 구조를 파악하면서 일단 한 번 읽어 보는 것이다.

분석하며 읽기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며 읽는 것이다. 중심 생각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사회/과학/철학/역사 등의 주제를 가진 책을 꼼꼼하게 요약 정리(목차에 따라/장별, 소제목별, 문단별로 요약하고, 저자가 했음직한 질문/답변을 찾고 생각함) 하는 데 어울린다.
분석하며 읽기 1단계 : 책 전체를 간단히 한두 문장으로 정리, 책 전체를 세부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요약, 저자가 책에서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를 생각해 본다.
분석하며 읽기가 끝난 뒤 : 저자가 사용하는 핵심 개념을 정확하게 짚어냈는지 / 저자의 핵심 주장을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지 / 핵심 주장을 뒷받침할 논증을 재구성할 수 있는지 / 저자가 이 책에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드러냈고 그에 대한 해답도 제시했는지(p.81) 점검해 본다.

 

 

살펴읽기와 분석하며 읽기라는 개념도 흥미로웠지만, 내게 제일 실용적이었던 것은 늘 피해가는 과학분야 서적 읽기에 대해서다. 과학 서적을 읽을 때는 그 이론에 대해 전반적을 이해/그 이론이 왜 중요한지/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과학 서적을 읽을 때, 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쉽게 이해되는 것 위주로 읽으며, 분석하여 읽기(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대상으로 어떤 설명을 하는가? 정리하고,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읽는다)를 적용하며, 개념과 원리를 적용해 읽으라는 것이다. 반대로 수학 서적의 경우, 살펴 읽기로 전체를 다 읽고 내용의 80~90%를 이해했다는 느낌일 때 다음 장으로 넘어가라고 한다. 과학/수학 서적을 하나쯤 골라 직접 실천해 보려고 한다.

 

+ 철학서는 수학서처럼 두 번 이상 천천히 읽되, 처음에는 개념을 익히는 데 중점을 두고, 개념을 익히기 전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단락을 단숨에 읽은 후 다루어진 내용이 무엇인가, 스스로 요약/음미/생각한 뒤 한 구절 한 구절 꼼꼼히 읽는 것이다.
+ 사회과학서는 자신의 관점을 먼저 되짚어보고, 저자의 용어 사용과 개념 정의에 유의한다. 한 가지 주제를 알기 위해서는 상반된 의견을 담은 여러 권의 책을 함께 읽어본다.

 

 

통합적 읽기란, 하나의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여러 권의 책을 읽고 통합하는 것이다.
1. 주제를 정하고, 최대한 많은 자료를 구하고, 목록을 작성한다. 목록을 작성하는 동안에는 자료를 자세히 읽어서는 안 된다. 자료를 빠르게 훑어읽어 분석적을 읽어야 할 목록을 추려내며, 살펴읽기 할 때 간략하게 메모한다(분석읽기를 해선 안 된다). 읽기 목록을 정하면서 주제가 가진 문제의식을 신중하게 생각해본다.
2. 정해진 읽기 목록을 가지고 자신의 탐구 주제와 관련된 부분을 선택적으로 읽는다. 중요한 내용을 요약하고 메모하면서 책을 읽는다(p.229 정약용 선생의 '초서' - 연구할 분야의 체계를 세우고, 목차를 정리한 뒤, 읽어야 할 책을 정하고,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정리하며 읽는다). 저자의 개념을 해석할 때 자기만의 근거를 확보한다. 원래 단어를 사용하든 아니든 가급적 중립적인 용어를 정한다.
3. 저자들에게 던질 질문을 만들고 답을 찾는다. 쉽게 답을 찾지 못한다고 질문을 바꿔서는 안 되고, 포괄~세부적 질문까지 다양하게. 직접적인 답이 없으면 답을 추론하고 답의 근거를 정리한다.
4. 저자의 대답을 정리한다. 핵심 내용 요약처럼 주장+근거를 열 줄 정도로. 각각의 대답을 찬/반 논쟁적으로 재구성하고, 차이를 구분한다.

p.240 한 권의 책을 속단하지 말고, 여러 권을 읽어라. 가급적 시대순으로.
(플라톤 : 변명, 국가, 파이돈, 크리톤. 칸트 :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

 

p.107 선입견을 인한 감정적인 비난을 막고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한 다음 열린 마음으로 저자를 탐구하려는 노력이 비판하며 읽기의 기본 자세입니다.
p.109 책을 비판적으로 읽는 지침 네 가지 : 근거가 부족하다. 잘못 알고 있는 정보가 있다. 논리적이지 못하다. 완전하다고 할 수 없으니 좀 더 분석해 보라.
p.116 분석하며 읽기를 돕는 도구들 : 개념어는 네모, 정의에는 밑줄, 결론은 물결(~), 비교나 대조가 있는 부분은 앞뒤를 사선(/)으로 갈라놓고 화살표(↔). 앞뒤 내용이 상반되고 뒤의 내용이 강조되면 세모 표시를 하고 뒤에 밑줄. 내용의 연관성이 중요할 때는 곡선 화살표로 앞뒤 내용을 연결. 중요하지만 밑줄까지 칠 필요는 없다면 꺽쇠(<>).
철학사와 철학 이론을 소개하는 책은 이론서, 논리적 판단력과 가치 판단력을 길러 주는 책은 실용서로.
실용서를 읽을 때는 읽는 목적을 맞는 책/저자가 알려주는 활용법을 따른다/저자의 말에 무조건 설득되지 않도록 주의/저자 약력을 꼼꼼히 살핀다.

소설을 혼자서도 거뜬히 읽어 내려면 : 처음부터 (어려운 부분이 나와도 일단) 끝까지 읽는다. 두 번째로 읽으면서 정리할 내용(줄거리/주요 등장인물의 성격/중심 사건과 갈등의 이유/해결 과정/주제/마음에 와 닿는 내용 등) 을 생각해 본다. 장마다 제목을 붙이고, 제목에 맞게 두세 문장의 해설을 쓰는 연습을 한다. 세 번째로 '작가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끝으로 자신과의 연관성, 인물 유형에 대한 평가, 작가와 시대에 대한 탐구, 주제의 식의 타당성, 소설의 미적 구성에 대해 평가해 본다. 인물을 통해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일어나는 사건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시대는 어떠한지...
p.152 소설의 장르별 독법 : 단편은 한 번에 한 편씩, 의미를 곱씹으며. 장편은 가급적 앉은 자리에서 다, 장별로 요약하면 더 좋다. 대하소설은 인물의 관계도를 그리거나 특징을 정리해 많은 인물들에 익숙하게. 고전은 원전에 가까운 것을 읽되 축약본을 참고하여. 전작주의 읽기는 관심 있는 작가의 작품을 4~5권 잇달아 읽기.

 

 

 

+ 추천도서 목록

1.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2. 성경

3. 그리스 비극 -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4. 역사 - 헤로도토스

5.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투키디테스

6. 희극 - 아리스토파네스

7. 국가, 향연, 파이돈, 소크라테스의 변명, 파이드로스, 프로타고라스 - 플라톤

8. 형이상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시학 - 아리스토텔레스

9. 영웅전 - 플루타르코스

10. 신곡 - 단테

11. 군주론 - 마키아벨리

12. 유토피아 - 토마스 모어

13.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 라블레

14. 돈키호테 - 세르반테스

15. 햄릿, 베니스의 상인, 한여름 밤의 꿈, 로미오와 줄리엣 등 - 셰익스피어

16. 리바이어던 - 홉스

17. 방법서설, 성찰, 철학적 원리 - 데카르트

18. 에티카 - 스피노자

19. 걸리버 여행기 - 스위프트

20. 에밀, 인간불평등 기원론, 사회계약론 - 루소

21. 국부론 - 애덤 스미스

22.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도덕 형이상학의 원리 - 칸트

23. 파우스트 - 괴테

24. 자유론 - 밀

25. 종의 기원,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자서전) - 다윈

26. 시민 불복종, 월든 - 소로우

27. 자본론, 공산당 선언 - 마르크스

28. 모비딕 - 멜빌

29.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도스토예프스키

30. 전쟁과 평화, 단편들 - 톨스토이

31. 허클베리 핀의 모험 - 마크 트웨인

3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

33. 꿈의 해석 - 프로이드

34. 심판, 성, 변신 - 카프카

 

35. 논어

36. 맹자

37. 대학

38. 중용

39. 노자

40. 장자

41. 사기 - 사마천

42. 아함경

43. 우파니샤드

44. 삼국유사 - 일연

45. 삼국사기 - 김부식

46. 구운몽 - 김만중

47. 춘향전

48. 열하일기 - 박지원

49. 정지용 시집

50. 백석 시집

51. 토지 - 박경리

52. 간디 자서전

53. 루쉰 소설집

54. 과학혁명의 구조 - 쿤

55. 엔트로피 - 리프킨

56. 이기적 유전자 - 도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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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는 우울한 아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는 일찍 재혼하고, 혼자 살면서 아이들과도 좀체 어울리지 못한다. 그에게 다가왔던 목사의 딸 소망이가 그나마 하나 있는 친구지만, 둘 사이의 관계는 친구라고 부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소망이를 따라 대학교까지 진학하지만, 소망이와 멀어지고 과 생활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한 데다 금전적인 어려움까지 겹친 성우가 휴학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오후 다섯 시의 외계인>은 명랑한 외계인과 성우가 함께 잃어버린 것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며, 성우는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에는 훌쩍 자라나 있다.

 

착한 사람이라며 성우를 대뜸 고용하는 FBI 사장님과 카페를 핸드백 가게라고 말하는 사장님의 동생 사모님, 투덜거리면서 사모님의 시중을 드는 집사, 옆 가게의 주인과 알바생이며 커피를 내리고 초콜릿을 팔고 타로점을 치는 점쟁이와 영희, 남쪽으로 오는 북극곰, 명랑한 외계인 용관이. 유쾌한 캐릭터들의 대사에 깃든 개그며,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어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초반에는 엄청난 적인 듯 보이던 FBI조차 나중에는 외계인과 교류하게 되는 것이나(이 부분은 좀 뜬금없는 느낌. 무거운 현실이 갑작스레 가벼운 환상으로 끌려내려졌다고 해야 하나. 지속적이지 않는 잠시의 환상이면 나중에는 더 무거운 짐으로 되돌아 올텐데?) 눈물이 전염되고, 눈물로 체내의 수분을 다 흘려냈다간 생명이 위험해져서 울면 안 된다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답게 '그리고 모두 행복해졌습니다'라는 엔딩이 잘 어울리는 책이다.

 

멀리 일억 년 후에는 지금의 힘겨움은 존재하지도 않은 가벼움이 될 것이다……라는 말은 멋지지만, 환상적이랄 수 있는 분위기와 맞물려 자칫 현실에서 등돌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에필로그 같은 '포크의 사용법'에서 나온 이야기도 성우가 발 디딘 장소는 현실이 아니라 환상이고. 반대로 환상을 꿈꾸지 않으면 현실은 마냥 무겁고 힘들기만 한 것인가? 라는 생각도 슬쩍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은 던져두고, 재미있었다. 성우는 이제 오후 다섯 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나는 슬픈 일이 있으면 일억 년 후의 바다를 상상해요."
벌써 효과가 있는지 용관이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지구는 일억 년이 지나도 지금이랑 기후가 비슷할 거래. 여전히 생물이 살기 좋고 물도 많을 거래요. 하지만 지금 있는 동물들이 일억 년 후에도 남을지는 모른대. 사람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일억 년 후에는 지구만 있고 나머지는 다 바뀌는 거예요."
"그래?"
외계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다니 신기한 일이다. 용관이는 어디서 들었을까?
"해도 똑같이 뜨고 지고 하늘도 파랗고 바다도 똑같은데 다른 건 모두 처음 보는 신기한 거로 바뀌는 거예요. 내가 보여 줄게."
용관이는 제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얹었다.
(중략)
일억 년 후의 바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지구에서 인간은 사라지고 인간이 만든 문명도 사라진 후다. 나를 미워한 사람, 내가 미워한 사람, 우리가 주고받은 슬픈 말, 눈물, 한숨, 분노까지 모든 것이 사라진 후다.
나는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놓인 돌멩이다.
나는 슬픔도 기쁨도 느끼지 않는다. 따뜻한 바닷물이 가끔 나를 적셔 주지만 돌멩이인 나는 느끼지 못한다. 그 자리에서 조용히 바다를 바라볼 뿐이다. 바다에서 반복되는 일출과 일몰을 바라볼 뿐이다.
나는 혼자지만 외롭지 않다.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이 혼자니까.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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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포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우열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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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창옌은 빅 포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생각할 수 있다. 리창옌은 전체를 통제하고 움직이는 존재다. 그러므로 나는 리창옌을 1인자라고 지칭했다. 2인자는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를 상징하는 것은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두 선이 있는 S모양, 즉 달러를 나타내는 모양이다. 또 두 줄과 별 하나도 그를 상징한다. 따라서 2인자는 미국인이라고 추정할 수 있고, 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3인자가 여성이고 프랑스인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상류층 요부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도 있으나, 어떤 것도 분명치는 않다. 4인자는……."
"파괴자." - p.19

"이건 생사를 건 싸움이라고, 몬 아미. 너와 내가 한쪽에, 빅 포가 다른 한쪽에 서 있어. 첫 번째 계락에서는 그자들이 이겼지만, 나를 쫓아내겠다는 계획은 실패했으니 앞으로는 에르퀼 푸아로를 염두에 둬야 할 거야!" - p.29

"몬 아미, 그자는 에르퀼 푸아로의 작은 회색 뇌세포를 간과했어."
푸아로에겐 장점이 여럿 있었지만, 겸손만큼은 해당사항이 없었다. - p.155

 

제목 그대로 빅 포라는 의문의 세력과 에르퀼 푸아로가 대결하는 이야기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까지 읽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가운데 제일 재미없었다; 푸아로며 헤이스팅스, 주변 인물들, 그들의 실마리를 가진 자들이 차차 죽어가는 등 생명의 위협을 받는 긴박한 전개이긴 한데, 너무 음모론적인 내용이라 그런가 좀 뜬구름 잡는 기분도 없지 않았고... 암살자에게 쫓기고 암살자를 쫓는다는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았는데 갑자기 국가적인 규모로 스케일이 커지는 것 등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다. 파괴자의 캐릭터 자체는 괜찮았는데 소설이 전체적으로 마음에 차지 않아서 안타깝다.

 

/1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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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 네버랜드 클래식 11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타샤 투더 그림, 공경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비밀의 화원 /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타샤 튜더 / 시공주니어

 

인도에서 자라난 메리 레녹스라는 소녀가 부모님을 잃고 요크셔 황무지 너머에 있는 미셀스와이트 장원으로 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메리는 고모가 세상을 떠난 뒤 폐쇄되었다고 하는 비밀의 화원을 찾아내고, 밤중의 울음소리를 따라가 그녀 못지않게 신경질적인 사촌 콜린을 만난다. 홀로 제멋대로 자라난 두 어린아이는 서로를 만남으로써 몰랐던 것을 알아가고 부족한 것을 채워나간다.
그리고 그들과 곁에, 메리를 돌보는 하녀 마사의 동생 니콘이 함께한다. 마사와 니콘의 모친 소어비 부인은 평범한 주부이지만 아이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콜린과 메리를 도와준다. 크레이븐 씨에게 아이들에 대해 조언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변화를 들키지 않기 위해 식사를 남기면서 한편으로 배고파하는 아이들에게 갓 구운 빵이며 우유, 달걀과 감자 등이 든 바구니를 들려 보내는 센스도 있다. 자신들만의 비밀에 흥겨워하며, 자연에 함빡 잠겨 활기를 찾은 아이들은 마침내 주변 사람들마저 변화시켜 해피 엔드를 맞이한다.

 

 

비밀의 화원이 읽고싶어져서 네버랜드 클래식에서 나온 책을 구입했다. 어릴 때 읽었던 책과는 달리, 마사와 소어비 부인, 디콘 등이 사투리를 쓴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나쁘지 않게 읽혔다. 타샤 튜더의 삽화도 좋았다. 책을 읽어보니 비밀의 화원은 1910년 나온 책인데, 지금은 2010년. 백 년이나 된 글은 어린 시절 처음 읽었을 때와 다름없이 황무지로 나를 인도했다. 비밀의 화원에서 세 아이들이 흙을 파고 즐겁게 뛰어놀고 맛있는 음식을 정말로 맛나게 먹을 때, 읽는 사람도 마치 그들 곁에 함께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아프게 했던 콜린이 '긍정적이게 되면서 변화해가는 마법'은 다시 읽어도 멋졌다. 동물과 친하며 누구 앞에서도 반듯한 태도를 견지하는 니콘, 무엇보다 글 초반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으리만큼 변해가는 메리의 모습은 정말로 '마법'이었다. 정말로 이런 책이 '명작동화'이구나-라고 느꼈다. 화원을 꾸미지는 못하겠지만, 표지의 메리처럼 줄넘기라도 들고 새 공기를 쐬러 나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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