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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1996년 12월
평점 :
절판
초반부에 페이지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할어버지가 손녀에게 해주는 옛날 이야기이긴한데 그 손녀는 지금 할아버지가 이 책에서 비판하시는 것들에 너무 익숙해져서일까.. 앞에 조금만 들어도 줄거리 대충 파악되는 이야기에 어릴적부터 지루한 교과서에도 나오는 교훈들까지, 그래서 손녀는 참다못해 "다른 이야기 해줘요"고 말씀드리면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에도 비슷한 교훈을 깔고 있는 이야기, 또 가끔 현대물질문명에 대해 비판적일때는 못내 답답하고 짜증도 났다.
어찌됐건 잠들기 전 침대위에 누운 채, 가끔 지루해도 하며 눈물도 흘려가며 그렇게 본의아니게 천천히 다 읽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가슴속 뭉클함이 강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이웃사랑 '이다.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내가 그들에게 도움주는 것보다 그들로 하여금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예전보다 조금 더 행복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아서 되려 고맙기도 하다.
이웃사랑. 나랑 가까우니까 언제든 할 수 있어서 쉬워보이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는 말이나 행동도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런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류가 빠른 시간안에 행복해지는 이렇게 효율성있는 방법도 없다. 내가 내 주의의 이웃을 챙기고 또 그 친구가 그들의 다른 이웃들을 사랑하면 전 세계사람들이 모두 한 이웃처럼 행복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20대 후반이 상상하기엔 좀 초딩스러운가... (초딩비하 아님ㅎㅎ)그런 생각도 하면서 잠들곤 했다.
"가끔씩 저는 누워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해서 의식을 지니고 이 광활한 우주 한 귀퉁이에 떠있는 지구라는 땅덩어리에 생겨났을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니면 기적인지 ,행인지 불행인지, 어쨌든 내가 있다는 것에 오싹한 두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이러다가 조금 안정이 되면 그래도 의식을 지닌 인간으로 태어나 웃고 울고,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잠깐이라도 '삶'이란 걸 맛본 것에 고마운 생각도 듭니다." -이 글은 다른 분이 권정생할아버지께 쓴 글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치 일기장 속을 들킨 것처럼 놀랬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대체 난 어디에서 왔으며 이 광활한 우주속 조그만 지구위에 살며 또 수만년을 거쳐 진화하면서 의식을 가진 생명체가 되었을까.. 그러다가도 현실이 너무 괴롭고 힘들면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다'.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으면 좋았을껄' 하는 생각도 수없이 한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을 향한 욕망, 자신에 대한 욕심을 좀 비워내서 일까 ㅎㅎ 죽어야 겠다는 극단적이 생각이 덜든다. 되려 '내가 왜 죽어? '이런 생각을 한다. ㅋㅋ정말 나로서는 감사하고 큰 발전이다. 그리고 요즘은 이글의 마지막 처럼 그런 '삶'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있는 한 행복하게 살자' 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챕터는 강한 여운을 남겼다. 전쟁속에서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사람들의 한. 먼 친적들이라도 이러한 비슷한 경험이라도 겪은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전쟁이야기가 나오면 들어도 별 느낌이 들지 않았고 그래서 읽고 싶지도 않았다. 가끔 어떤책들은 부러 읽은 이의 감정을 그렇게 만드는거같아서 기분나쁘기도 했다.'할매하고 손잡고'라는 글은 내가 그동안 이런 비슷한 이야기나 역사에 공감하지 못했던 나를 한껏 이끌어주는 그런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는 있지 않을까 감히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기존의 비슷한 글을 분명 여러번 접했을 텐데, 이 짧은 글 하나가 이렇게 느낌이 달라지게 만든다는 것, 독자로 하여금 그 깊은 세월로 돌아가 그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것에 다시한번 놀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