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지식백과] 제러미 벤담 [Jeremy Bentham]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800820&cid=41978&categoryId=41982


'러셀 서양철학사'(버트런드 러셀)를 다시 펼친다. 오늘은 3월3일, 3월 하고도 사흘째 되는 날이다.

1829 etching by G.W. Appleton (위키미디어커먼즈)






벤담의 이상은 에피쿠로스와 마찬가지로 자유가 아니라 안전이었다. "전쟁과 폭풍은 충분히 관찰하고 해석해야 하지만, 평화와 고요함을 견디기는 훨씬 수월하다."

벤담이 점차 급진주의로 기운 원천은 두 가지다. 하나는 쾌락과 고통의 계산에서 연역적으로 추론되는 평등의 신념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일을 그가 이해한 이성의 중재에 맡기려는 불굴의 결심이다. 평등을 찬미하는 벤담은 일찍이 재산을 자손에게 평등하게 분배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하고, 유언의 자유에 따른 재산 분할에 반대했다. 나중에 군주제와 세습귀족정치에 반대하고, 여성의 투표권까지 인정하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주창했다. 이성적 근거가 없다면 믿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신에 대한 믿음을 포함한 종교 자체를 거부했다. 또 유서 깊은 역사적 기원을 가진 법의 부조리한 조항과 변칙 조항을 찾아내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무엇이든 전통에 따른다는 근거로는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일찍이 청년 시절부터 영국이 미국에서 영토를 확장하든 다른 나라가 영토를 확장하든 제국주의에 반대하면서 식민지 건설을 바보짓으로 여겼다.

벤담의 체계에는 명백한 결함이 하나 있다. 사람들이 언제나 제각기 자신의 쾌락을 추구한다면, 입법자가 모든 인간의 쾌락을 추구한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벤담은 본능적 자비심(자신의 심리 이론으로 인해 이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때문에 이 문제를 드러내지 못했다.

벤담은 적절한 감시와 결합한 민주정치를 통해, 입법자들이 일반 대중에게 유용한 사익만 증진하도록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민주 제도의 운영과 효력을 판단할 자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벤담의 낙관론을 못 본 척 넘겨버릴 수도 있겠지만, 착각에서 벗어난 우리 시대에서 보면 다소 소박해 보인다. - 26. 공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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